2005년 8월 13일 토요일

2005년 8월 12일 금요일 : SICAF 2005 - 심야상영 1

저녁에 SICAF 심야상영을 보기로 해서, 레슨 시간을 오전 11시로 옮겼다. 12시에 제니스 카페테리아로 가서 며칠 전 휴가에서 돌아오신 동진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선물로 린트 85% 초콜릿을 가져오셨다. 이히히.

날이 흐려서인지, 밤샘 할 생각에 긴장해서인지 오후 내내 마치 이미 심야상영을 보고 돌아온 것처럼 졸렸다.

원군님과 오랜만에 만나 SICAF 심야상영을 함께 보았다. 일단 여덟 시에 강남역 근처에 있는 롤집 니코니코 (Niko Niko)에서 저녁을 먹었다. 금요일 저녁이라서인지 꽤 오래 기다렸으나, 다행히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이었다.

식후에는 코엑스로 이동, 애플센터와 반디앤루니스에 가서 이것 저것 구경한 다음 별다방에 잠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 무스 케익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원군님 회사 일 얘기를 좀 듣고, 전공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라 내 생각을 얘기했는데 뜻밖에(으응?) 도움이 된 것 같아 기뻤다.

심야 상영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머시네마 특별전 1- 아나크로녹스
제이크 휴즈 (Jake Hughes), 2002

도대체 이 영화를 시카프 상영작으로 선정한 자가 누구냐! 게다가 심야 상영 첫 작품으로 틀다니! 처음 시카프 사이트에 올라왔던 영화 소개에는 러닝타임이 2분 27초라고 되어 있어 RPG 게임의 오프닝 화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장장 두 시간에 달하는 보기 괴로운 게임 장면 모음이었다. 나름대로 줄거리란 것이 있기는 하나 용서하기 힘들 만큼 서투른 클리셰 덩어리였고, 전개 자체가 영화라고 보기 민망할 만큼 뒤죽박죽이었다. 어떻게 진행되는 게임인지는 알겠지만,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도저히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다. 한 시간 동안 끙끙거리다가 간신히 '게임 하는 심정'에 몰입하나 했더니 마지막에 반전 아닌 반전까지 등장. 게다가 남자 주인공(?)의 건달 말투는 또 어찌나 거슬리는지, 이런 거 하다 보면 게임이 애 망친단 소리가 나오겠단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원군님이 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재작년 즈음에 문을 닫았다고 알려 주셨다. 전혀 놀랍지 않았다. 보면서 90년대 후반 작일 줄 알았는데, 02년 작이라니......21세기에 뭘 하고 있었던 것이냐! (버럭버럭)

원군님께 송구스러웠다. --;

애니메이션의 신물결

단편 모음은 기대했던 대로 무척 좋았다. 짧은 시간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양하게 표현해낸 흥미로운 영상물은 즐겁기도 하고 자극이 되어 좋다.

1. 러시아의 미국인 (The Offshore Reserves)
제이미 브래드쇼 (Jamy Bradshaw), 알렉산더 듈레인 (Alexander Doulerain), Russia/USA , 2004
2. 말벌들 (Wasps, Gees, Peer-Tree)
스카키 라즐로 (Csaki Laszlo), Hungary, 2004
3. 뷰 (A Vue)
죠수아 모슬리 (Joshua Mosley), USA, 2004
4. 시티 파라다이스 (City Paradise)
가엘리 데니스 (Gaelle Denis), UK, 2004
5. 기억 속의 어제 (Yesterday...I think)
베킬레리스 브로드스키 (Becalelis Brodskis), UK, 2004
6. 피스타치오 (Pistache)
발레리 피르송 (Valerie Pirson), France, 2004
7. 벤트 (Vent)
에릭 반 샤이크 (Erik Van Shaaik), Netherlands, 2004
8. 호신술 배우기 (Learn Self Defence)
크리스 하딩 (Chris Harding), USA, 2004
9. 통지 (Notice)
로엘로프 반 덴 베르그 (Roelof Van den Bergh), Netherlands, 2004
10. 생일잔치 (Pinata)
마이크 홀랜즈 (Mike Hollands), Austrailia, 2005
11. 둘 사이의 대화 (Dialogue Between Two)
세이케 미카 (Seike Mika), Japan, 2004

모두 기억할 만한 작품이었지만, 매주 교회에 나가는 평범한 남자 조지를 내세워 미국의 최근 행태를 비꼰 크리스 하딩의 '호신술 배우기'와,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는 것을 지상에 앉은 남자와 물 속에 앉은 여자의 모습을 통해 잔잔하게 그린 '둘 사이의 대화' (특히 남자가 여자에게 내려 보낸 알에서, 여자가 예전에 올려 보냈던 물고기의 뼈가 나오는 장면이 인상깊고 가슴아팠다.), 그림판 미국인을 러시아 복판에 등장시켜 '변화'의 이면을 개성있게 표현한 '러시아의 미국인', 한 여성의 혼돈된 생각을 표현한 '피스타치오'(여기선 특히 주기율표로 표현한 생각의 단편이) 등이 특히 인상깊었다. 바람에 맞서는 한 남자의 모습을 흑백으로 표현한 '벤트'는 꽤 씁쓸했는데, 웃는 관객들이 많아서 좀 의아했다.

애니테크

애니테크는 3D 애니 등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기법에 중점을 둔 단편 묶음이었다.

1. 사랑스런 엠마 (Dear, Sweet Emma)
존 세르낙 (John Cernak), USA, 2003
2. 비행 (Fly Away)
존 세르낙 (John Cernak), USA, 2003
3. 햇살 좋은 날 (On the Suuny Side of the Street)
조 럽 (Job Rub), 윌리 랜트(Willy Landt), Germany, 2003
4. 특별한 비누 (Curdsoap)
알렉산더 카에셀 (Alexander Kiesel), Germany, 2004
5. 레이싱 비트 (Racing Beats)
알렉산더 카에셀 (Alenxander Kiesel), 스테펜 학케르 (Steffle Hacker), Germany, 2004
6. 소우주 (Microcosm)
조 타카야마 (Jo Takayama), Japan, 2003
7. 나의 할아버지
페트르 마렉 (Petr Marek), Czech, 2003
8. 골초 (Chainsmoker)
울프 룬드그렌 (Ulf Lundgren), Sweden, 2002
9. 다락방 (The Roof)
호세 코렐 (Jose Corral), Spain, 2003
10. 락피시 (Rockfish)
팀 밀러 (Tim Miller), USA, 2004

마지막 '락피시'는 정말 취향에 안 맞았으나, 그 외 작품들은 즐겁게 보았다. 무서운 할머니(아마도 러시아)와 넋나간 할아버지(아마도 체코)의 관계를 다룬 '나의 할아버지', 마케팅의 무서움(으응?)을 소재로 한 '특별한 비누' 등이 좋았다. 최고는 '다락방'. 깜짝 상자의 삐에로가 예쁜 바비인형을 사랑하게 된다. 힘들게 상자를 끌고 다니며 낡은 다락에서 꽃이며 구슬을 찾아 가져다 주지만 바비인형은 본 척도 않는다. 절망하여 다락 구석에 있던 삐에로 인형은 아기 인형을 발견하고, 이번에는 아기 인형을 아끼게 된다. 바비인형은 삐에로가 더 이상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자 아기 인형의 머리에 가위를 꽂고 삐에로가 튼 전축에서 음반을 빼내는 등 훼방을 놓다가, 끝내는 불을 지르려다 실수해 자기 얼굴을 다 태우고 만다. 인형들의 건조한 무표정과 지저분한 다락의 모습 때문에 더 인상적이었다.

심야상영이 끝나니 새벽 다섯 시 반. 인적없는 코엑스를 걷자니 기분이 묘했다. 지하철을 타고 '거울' 반지의 제왕 확장판 상영회를 하는 을지로 3가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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