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5일 월요일

2005년 8월 14일 일요일 : [잡기]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지난 주 내내 놀았다. 8월 6일 밤에는 소소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일 관련 문제로 벌컥 화를 냈다. 7일, 일요일에는 종로 3가의 카페 뎀셀브즈에 앉아 일을 했다. 콘센트 때문에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 앉았더니 몹시 추웠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주문하며, 너무 추워요, 라고 했더니, 직원이 그 자리가 에어컨 밑이라서 그래요, 하고 미안한 듯이 웃었다. 나는 이제 어른이므로 비효율적인 냉방 설계 하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카페의 입장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해한다는 듯이 마주 웃어주고 자리로 돌아가 잎새 모양의 거품이 얹힌 카푸치노 잔을 손으로 꼭 감쌌다. 안타깝게도 이해는 물리적인 열로 전환되지 못한다. 나는 부모님께 늘 고마워하고 미안해하는데, 이런 감정 역시 물리적인 행동으로 쉬 전환되지 않는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다고 인생이 덜 안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체로 더 안타까운 꼴이 되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번역을 백 매 이상 했고, 나는 조금 덜 안타까운 인생이 되어 귀가, 냉방병이나 여름감기를 두려워하며 가글가글을 했다.

생각해 보니 화를 낸 것은 6일이 아니라 7일 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일요일에 번역을 잔뜩 한 다음 결과물을 보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안타까움'이란 단어로 말장난을 할 만큼 시시한 일이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에는 기분이 좋아졌지만, 몸이 마음을 따라오지 못해 그냥 뒹굴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종로 3가의 카페 뎀셀브즈에 앉아 일을 했다. 에어컨 바로 밑 자리에 앉았지만, 바깥 날씨가 더워서인지, 지난 주보다 옷을 좀 따뜻하게 입은 덕분인지 좀 덜 추웠다. 덜 추워서인지 원고는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나는 주인공을, 혹은 주인공의 아들을 꽤 사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덜 추운 것과는 상관없었다. 젊었을 때 고생 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생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같은 중국집에서 나와 달리 짬뽕을 주문해 먹는 사람을 보듯 불완전한 동지감을 느끼며 웃었고, 고생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웃지 않았다. 한창 고생을 하고 있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나는 누구도 선택이 아닌 고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다. 견해가 갈리는 곳은 바로 '어디까지가 선택이냐' 부분이다. 무엇이 고생이냐에 대해서도 꽤 의견이 갈린다. 지하철 문에는 당신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자살을 하지 말자는 하트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가족이 없어서, 혹은 자신을 미워하는 가족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인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이 스티커는 과연 없는 것보다 나을까, 못할까.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리고 플랫폼 안전선에서 반 보 물러나는 사람의 수와,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가족을 떠올리고 반대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의 수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어쩌면 둘 다 0인지도 모른다. 이런 스티커라도 붙이는 사람과 그 앞에 무표정하게 서 있기만 한 나 중 어느 쪽이 더 나을까. 이것 역시, 둘 다 있으나 없으나 그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남들이 있으나 없으나 그만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사람 같은 것은 없다고 믿고 있고, 있다면 없는 사회를 만들 책임이, 내게, 육십오억분의 일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록 그 내용에 대해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현상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확산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따져보면 겨우 육십오억분의 일이다.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감당할 수 없다는 핑계로 외면하기에는 부끄럽도록 작다.

그러나 나는 핑크색 스티커나 짬뽕에 대해 쓰려던 것이 아니었다.

바다에 가고 싶다고 하려 했다. 어쨌든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고, 그 때문에 바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해수욕장이나 비키니가 아니라 방파제와 섬을 떠올린다. 바다를 면해 선 아파트의 최고층이던 친구의 집, 방파제가 내려다보이던 고등학교 음악실과 등나무 벤치, 은근히 짠 바람과 큰 배의 고동 소리 같은 것을 생각한다. 그것은, 그리움과는 다른 종류의 친숙함이다. 하지만 바다를 보지 않은 채 몇 해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추억은 그런 식으로 미화되고 기억은 그렇게 환상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 전에, 바다를 다시 보아야겠다.

댓글 1개:

  1. 어제오늘 성가대 MT차 포항 청진에 다녀왔습니다. 사람들이랑 와글와글 모여 놀다가 너무 소란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 몰래 혼자 나가서 방파제에 밤새도록 누워서 별을 보았어요. 어둡던 하늘이 짙푸른 색으로, 다시 연한 회색으로 변하며 별들을 가릴 때까지- 정말 좋았어요. 제이님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나네요. 그럼 좋은 한 주 보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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