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9일 월요일

2005년 8월 29일 월요일 : EDIF 2005

[네 개 뿐인]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EBS에서 필리핀의 독재자 영부인 이멜다 마르코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보았다. 운 좋게도 프로그램 앞 부분부터 거의 다 보았다. 이멜다 마르코스가 자신의 철학을 설파하고, 화사한 옷을 입고 사랑과 평화를 말할 때 까지는 좋았다. 야당 지도자 암살 장면이 나오고 화면에 시체가 보이기 시작하자 '이거 추해지겠는데.' 싶었다. 계속 보다 보니 망명길에 손주 기저귀 가방에 넣어 밀반출하려 한 수억 달러 어치의 보석, 밀랍을 입혀 잘 보존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시신, 하원의원과 주지사인지 도지사인지 당선으로 정치계 입문에 성공한 딸과 아들이 나왔다. 척 봐도 미남 미녀인 그들은 지지자들이 내미는 사진에 사인을 하고, 티브이 인터뷰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들의 어머니의 지혜로운 조언에 감사를 표했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끝날 때 보니 '삼천 켤레의 구두로 남다: 이멜다 마르코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내용도 대단히 흥미로웠고, '사실'을 조합해 '의견'을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즘의 힘에 대해 새삼 감명받았다. 그 힘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부담스럽게 - 정확히 말하면 무섭게 - 여기기도 하지만. 영상의 영향력은 때로, 너무나 명백하게 활자를 능가한다.

EBS에서 개최하는 국제 다큐멘터리 축제 EDIF 2005가 시작되었더라. 올해의 주제는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로, 8월 29일부터 9월 4일까지 다큐멘터리 90여 편이 방송되고, 상영회 등 부대 행사도 열린다. 내친 김에 앉아서 빨래를 개며 '거장이 만난 채플린 :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라임라이트>'라는 삼십 분 짜리 짤막한 프로그램도 보았다. 채플린이 마녀 사냥식 공산주의자 색출 정치적 문제에 휘말려 스위스로 망명하기 전, 미국에서 촬영한 마지막 영화인 '라임라이트'가 채플린의 작품 세계에서 갖는 의미를 간명하게 정리했다.

EIDF 2005 홈페이지
TV 편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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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음악은 국력이며 미래의 희망이다'라는 제목의 청소년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명을 보는 순간 뒷덜미에 소름이 쭈삣 돋았다. 공연 소개를 읽고 나니 진심으로 무서워졌다.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아시아'[에서/의/ 아닌]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댓글 1개:

  1. EDIF라면 Electronic Design Interchange Format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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