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12일 수요일

2006년 7월 12일 수요일

태국 여행을 다녀 오신 동진님과 여의도 까사 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코끼리 초콜릿과 예쁜 기념품을 선물로 받았다.비가 많이 와서인지, 점심 시간인데도 실내에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식후에는 V사에 갔는데, 의사소통상에 약간의 문제가 있어 사실상 헛걸음 한 셈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위로 인해 종로 일대 교통이 통제되어, 종로 2가에 있는 학원까지 구두를 신고 30분을 걸었다. 분한 마음에 '카페 뎀셀브즈'에서 커다란 슈를 사 먹었는데, 새 슈보다 예전의 베이비 슈가 더 내 취향이더라.

폭우 때문에 일산에 사는 학생을 비롯, 결석자가 많았다. 나와 다른 한 명만 제 시간에 왔고, 타고 있던 버스가 사고가 나서 종로 6가에서 40분을 걸었다며 한참 후에 한 명이 더 왔다. 겨우 세 명이서 문법 진도를 나가 버리면 결석한 학생들의 공부에 지장이 갈 듯 하여, 여러 가지 예문 비디오를 보고 단어 공부를 했다.

귀가해서는 코끼리 초콜릿과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 세트를 먹은 후 어제 읽은 책을 번역하고, sabbath님이 빌려 주신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사무라이(Le Samouraï)](1967, 프랑스, 105min)를 보기 시작했다. 새벽 한 시가 넘었던 터라 보는 데 까지만 보고 나머지는 내일 볼 요량으로 켰는데, 내가 좋아하는, 트렌치 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무더기로 나와서 도입부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창 다 닫고 정좌하고 앉아 정신없이 봤다. 마지막 20분 정도 남았을 때 저녁에 드신 커피 때문에 잠이 안 온다며 어머니께서 거실로 나오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벽 네 시가 넘어서야 잠들었다. 그래서 나머지 부분은 목요일에 봤다.

[사무라이]를 보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무라이]의 약 60분 지점에서부터, 나는 알랭 들롱이 엄청난 미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랭 들롱이 나오는 영화를 EBS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특별히 잘 생겨 보이는 사람이 없어서 '저 중에 누가 그 유명한 알랭 들롱이지?'라고 한참 생각했었다. [암흑가의 세 사람(Le Cercle Rouge)]에서의 알랭 들롱은 분명 미남이었으나 내게는 이브 몽땅이 훨씬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사무라이]에서의 알랭 들롱은 '영화적으로' 아름답다. 알랭 들롱이라는 배우가 미인이라는 인식과 제프 코스텔로라는 등장 인물이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동시에,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나는 영화를 보다 말고 정말로 충격을 받아 버렸다. 배우가 가진 카리스마와 극중 인물 제프의 창백하고 비현실적인 존재감이 결합하여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아우라를 만들어 냈다. (심지어 트렌치 코트를 벗고 있어도 변함없이 멋있었다.) 내가 압도당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또렷하게 느껴져 무서울 지경이었다.

sabbath님이 표지에 [무사도]라고 쓰인 직접 만드신 안내 책자도 함께 보내 주셨다. 영화를 본 후에 읽었는데, 덕분에 영화를 보면서 막연히 느꼈던 부분 -오프닝에서의 지연감이라든지- 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연출상의 특징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배우게 된 점이 많아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외에 멜빌에 대해 재삼 감탄하고 감동한 점이 많으나, 다음으로 미루련다.

내가 본 영화래야 정말 몇 편 안 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영화' 자체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영화와 감독을 감히 몇 꼽을 수는 있는데 -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밴더스, [비트겐슈타인]의 데릭 저먼 등 - 장 피에르 멜빌도 그 중 한 명이다. 지금까지는 [암흑가의 세 사람]의 멜빌이라고 했으나, [사무라이]를 보고 나니 수식어를 바꿔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sabbath님이 이런 고민에 빠질 나를 예상하기라도 한 듯 '다시 보고 싶으실 것 같아서'라며 [암흑가의 세 사람] DVD도 보내 주셨다.

그 외 생각한 것들로는-
1) 프랑스어를 배워야겠다. 대사를 알아 듣는 수준은 바라지 않지만, 사람 이름이나 거리 이름 쯤은 읽을 줄 알아야 할 것 같다.
2) 알랭 들롱도 무섭지만, 너무 완벽하게 내 취향인 영화를 만든 멜빌도 좀 무섭다.
3)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 이번에 sabbath님이 보내 주신 DVD 중에 쥘 다신(Jules Dassin)의 [리피피(Rififi)]도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다신을 헐리우드 느와르 감독으로만 알고 있었다. 중절모를 쓰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손에 총을 든 남자가 표지에 있는 느와르 관련서만 자꾸 보고, 좀 더 체계적으로 영화사나 영화연출, 영화비평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아서 더 많이 보고 싶다.
4) 영화관과 DVD, 비디오, 티브이의 차이란 굉장히 크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사랑하자.
5) 나도 크라이테리온 시리즈 사고 싶다....

댓글 2개:

  1. 홍대 리치몬드의 슈크림은 어떠세요? 야옹새가 아주 좋아하는 슈크림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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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호오, 리치몬드에서도 슈크림을 파는군요! 다음에 지날 때 꼭 한 번 먹어봐야겠어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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