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2006년 12월 15일 금요일 : 기말고사 근황

기말기간이(었)다. 일단 오늘 서양근대경험주의 시험을 치렀으니, 다음 주 초까지 한 숨 돌렸다. 월요일에 사회복지법제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긴 하지만, 내일 일을 오늘 하자는 대원칙에 따라(뻥) 대충 써 뒀기 때문에 주말에는 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수요일에 제출해야 하는 한국철학사 기말보고서의 주제를 아직 정하지 못한 점은 조금 걱정이다. 몇 가지 생각해 두긴 헀는데, '손으로 써서 내는' 과제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겠다. 아마 결국 컴퓨터로 작성한 다음에, 그걸 손으로 옮겨 쓰지 않을까 싶다.

수요일에는 기호논리학 기말고사를 보았다. 지난 주부터 계속 준비했는데, 막상 문제를 받고 보니 너무 어려워서 좌절했다. 나만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점이 안심이라면 안심이지만 - 다 치고, 옆의 누군가가 "한 시간만 더 있었으면 다 풀었을 텐데." 라고 하더라. 무척 공감했다. - 중간고사에 미치지 못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중간고사보다 기말고사 성적이 높아진 경우 가산해 준다는데, 그럼 나는 상대난이도가 어떘든지 난감해진다.; 단축규칙 T가 없는 형식체계 따위에서 살고 싶지 않아......

금요일에는 서양근대경험주의 기말고사와 소논문을 함께 제출해야 했다. 중간고사가 없었던 과목이고 소논문이 학점의 반을 결정짓기 떄문에 중요했다. 나는 처음부터 당연히 흄의 회의주의에 대해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흄의 인식론에 대한 책을 잔뜩 빌려 와서 큰 꿈을 안고 개요를 잡다가. 중대한 문제점을 깨달았다.

1) 내용이나 사상 정리가 아니라, 반드시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전개하는 글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2) 흄의 인식론에 대해 쓴다면 흄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3) 비판적으로 검토하려면 비판거리를 찾아야 한다.
4) 나는 흄의 사상에 거의 전적으로 동의하고, 놀라울 만큼 납득가능한 논증을 전개한다는 점에서 흄을 숭배하고 있다.
5) 따라서 흄의 회의주의에서 비판거리를 찾아 쓰는 것은 내게 무척 어렵다.

뒤늦게 이 상황을 깨닫고, 그러모은 흄 책을 쇼핑백에 도로 집어넣고 새벽 네 시까지 끙끙대며 로크의 인과적 실재론에 대해 썼다. (이 일로, 나는 졸업논문을 경험론이 아니라 중세 신학에 대해 써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로크를 고른 이유는 순전히 1) 집에 흄 다음으로 관련서가 많으니 급한대로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2) 버클리가 로크의 실재론을 정면으로 벌써 반박했기 때문에 로크를 비판하기 쉽고, 버클리를 재비판하는 것이 흄이나 로크를 비판하는 것보다 내게 쉬워서 였는데,

여기서 반전

잇힝~♡

흄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났는데, 흄의 어머니는 독실한 칼뱅교도였으나 흄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신의 존재에 매우 회의적이었다. 흄이 죽을 때가 되자 사람들이 이 유명한 무신론자가 회개를 하나 안 하나 궁금해 하며, 자꾸 괜히 찾아와서 회개 안 해서 지옥 가면 어쩔 거냐고 물어봤단다. 그러면 흄은 석탄이 한 무더기 있으면 불에 타지 않는 석탄 덩어리가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느냐고 답했다. 비록 그가 한 세기만 늦게 태어났다면 기적이나 도덕에 관해 생각한 것을 다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어쩌면 무신론자라고 교수 임용이 두 번이나 거부되거나 출간도서가 금서 목록에 오르거나 그런 견해 때문에 신앙심 있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전혀 인용되지 않는 기묘한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나는 이 에피소드를 떠올릴 때마다 대단히 유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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