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8일 목요일

2005년 7월 28일 목요일

밤새 비가 많이 내렸다. 새벽 세 시 쯤이었던가, 빗물이 이불에 튀는 꿈을 꾸었다.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같은 큰 천둥이 쳐서 깜짝 놀랐다.

오전에는 H사에 잠깐 들러서 잔손 가는 일을 처리했다. 점심으로는 우동을 먹었다.

오후에는 홍대 앞에 있는 화실에서 첫 수업을 했다. 이번 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 화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간단한 일상/풍경 스케치가 목표로, 시험이 끝난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일단 연필을 주 재료로 잡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색연필 등 쥐기 쉬운 도구로 색도 다루어 보고 싶다. 그림을 시작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이 어렵다. 어떤 글이든 조금씩, 꾸준히 쓰다 보면 글을 잘 쓰는 사람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펜을 편하게 드는 사람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가장 좋은 소재는 내가 직접 경험하는 일상일테니 습관화하기에는 일기만한 것이 없겠다 싶었다.

수 년 동안 일기를 꾸준히 쓰면서 다른 이점을 깨달았다 - 주위를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대화를 할 때, 음악회에 가거나 영화를 관람할 때, 식사를 할 때, 그 순간을 '글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 기억하려고 애쓰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말의 경우) 건성으로 넘어가면 나중에 재생하기가 어렵다.

나는 방향감각이 엉망진창이고, 사람 얼굴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며, 집 베란다에 무슨 화분이 있는지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병통이 있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기는 하나, 나 같은 경우에는 그저 주위에 무심한 성격 탓이 아닐까 한다. 그림은 그래서 시작했다. 악기를 연주할 줄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연주에서 '나는 모르는 무언가'를 찾아내듯이, 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된다면 -현실을 2차원적으로 해석해 내는 규칙을 이해한다면- 소재가 되는 것들(나를 포함한 이 세상 자체!) 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다른 방향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역시, 이왕이면 도구가 많이 필요한 유화나 세밀한 작업이 필요한 인물화보다는, 내가 직접, 언제 어디서나 보는 주위 풍경을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연필로 간단히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앞으로 계속해 나가기에도 좋겠지.

무슨 일이든 시작도 어렵지만 꾸준히 하기는 더 어렵고, 각오나 열정은 특히 희미해지기 쉬운 기억인고로, 시작한 날 써 둔다. 오늘은 스케치북을 사러 화방에 가서 신기한 미술 재료를 잔뜩 구경한 다음, 화실에서 예술혼을 불사르며 선긋기를 했다.

댓글 3개:

  1. 선긋기..의외로 힘들었었는데... 그림으로 보는 제이님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글로 보는 것과는 아마 다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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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우!! 그림 그리기 놀이는 나도 모르는 나를 표현하기에 너무 좋은 것 같아요...언니, 나중에 멋진 그림 쓱쓱- 그려서 한 번 보여주세요.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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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네, 정말 '의외로' 힘들더군요. 팔이 뻐근합니다.

    혜선양 오랜만이에요. :) 멋진 그림 그리려면 한참 걸릴 것 같구려. 지금은 정육면체 그리고 있거든. 그래도 재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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