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6일 수요일

2005년 7월 6일 수요일 : [잡기] 일상의 감각

이삼 주 전, 시험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몸이 영 좋지 않아 (그 얘기로 하자면, 시험이 끝난 지금 내 몸은 일 주일 내내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버텼던 게 거짓말 같을 만큼 멀쩡해졌다.) 그림자가 제법 짧아지도록 집에서 쉬던 때 얘기다. 가구 배치를 바꾸느라 줄자를 들고 이리 저리 재어 보시던 어머니께서, 어설프게 뒹구는 나를 보시곤 우리 딸 몸매나 어떤지 볼까, 하고 배에 줄자를 슥 두르셨다.

내 배로 말하자면, 좀 많이 먹었다 싶으면 쑥 나오고 안 먹었다 싶으면 쏙 들어가는 희한한 생김을 하고 있다. 하도 나왔다 들어갔다 하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몇 년 전에는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았는데, 의사가 복근이 너무 없어서 그래요, 하고 웃었다. 몸이 여릿해서 그렇지 다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니 윗몸일으키기나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란다. 그러나 운동을 한들 복근이란 게 쉬 생기지 않는데다 배가 한눈에 보아 이상할 만큼 불룩 나오는 것도 아니라 그냥 생긴 대로 지내고 있다.

어쨌든 그래서 자를 둘러 재어 보니, 아니, 분명히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갔거늘, 배가 나와 아랫배 둘레를 재나 윗배 둘레를 재나 그 좀 위를 재나 별 차이가 없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것은!

자를 들고 선 어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슬금슬금, 입가가 들릭랑 말랑 한다. 웃어도 되나 고민하시는 거죠? 나는 속으로 씩 웃고 멀끔한 표정으로 천연덕스레 입을 열었다. "이거 완전 원통이네요, 원통." 참았던 웃음보가 터지고 모녀는 말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폭소.

며칠 뒤 거실에서 차를 마시다 문득 이 때 생각이 나서 슬쩍 웃었다. 왜 웃는 거니, 물으시는 어머니께 "원통." 이라고 한 마디 하고 또 둘이서 같이 큰 소리로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일상에서 이런 작은 재미를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문득, 이른 여름의 한가한 햇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절실히 생각했다.

댓글 4개:

  1. 훗 그런경험 저두 해봤지요 일명 앞뒤로 봐서는 날씬한데 옆으로 보면 적나라한 살들의 배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 일기 보던중에 새글 올라와서 답글한번 남겨봅니다 겡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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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원통'은 웃을 일이 아닙니다!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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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바나나 항아리 우유보다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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