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0일 수요일

2005년 7월 20일 수요일 : 성운 속에서

감독: 고트프리트 콜디츠(Gottfried KOLDITZ) , East Germany, 1976, 102min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들이 있기에 기대했는데, 새드엔딩이었다. 작자는 대단히 진지하게 만든 영화가 그저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우스꽝스러워진 모양은 웃기기보단 씁쓸하다.

영화를 본 후에는 종각역 반디앤루니스에 책 구경을 갔다. 딱히 살 책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 그냥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며 다니던 중, a님의 데이트 현장을 목격했다! 슬금슬금 접근해서 깜짝 놀라게 해 드린(...) 다음, 매장에서 나가는 길에 잡지매대 코너 구석에 놓인 'New Scientist'를 샀다. 정기구독을 하면 권당 4000원 정도밖에 안 하는 책을 만 원이나 주고 사려니 속이 쓰렸지만, 표지에 구미가 동해 어쩔 수 없었다.

빅뱅 이론에 대한 반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들었으나 그 내용을 정리한 글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나처럼 과학계와 무관한 사람의 귀에까지 소식이 들리는 것을 보면, 정말 패러다임의 이동(Paradigm Shift)이 눈 앞에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빅뱅 이론처럼 확고해 보이던 것이 흔들리다니, 우주론의 '변혁의 순간'에 살고 있다는 실감에 짜릿하다. 벌써부터 "이 할머니가 어렸을 적엔, 우주가 아주 작은 점에서부터 팽창했다고 생각했단다." / "에에, 거짓말!" 같은 망상 진행중.;

쓰는 김에 간단히 정리해 두자면-

Eric Lerner는 '이것[빅뱅]은 과학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빅뱅 이론의 예측은 계속해서 틀렸으며 사후적으로 수정되었을 뿐'으로, 오늘날 우주론의 정상 이론은 '기본적인 빅뱅 이론에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내키는 대로 갖다붙인 잡동사니'란다.

그는 Spitzer 우주망원경의 관측 결과를 근거로 든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아주 멀리 있는 천체의 경우 그 빛이 우리에게 도달하는데 걸리는 긴 시간 때문에 우리 눈에는 그 천체의 '과거'모습이 보이게 된다. 그런데 Spitzer 망원경이 발견한 600만년에서 1억년 정도 나이의 적색편이를 나타내는 젊은 은하들은 적색거성이 포함된 양 붉은 빛을 내고 있다! 우리가 '과거의 젊은 은하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그냥 우리 근처에 있는 은하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다양한 나이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다. Lerner는 적색편이 현상 자체가 우주 팽창과 무관한 매커니즘으로 발생한다는 극단적인 입장이다. (적색편이의 아리송함은 창조론자들이 즐겨 드는 논거이기도 하다. -_-)

러너는 또한 우주배경복사가 빅뱅의 흔적이 아니라 별빛이 플라즈마로 흡수되었다가 재방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건 진짜 그럴듯한데? 우주의 99%가 플라즈마라며?

Scarpa의 경우, 빅뱅이론에 따르면 암흑물질이 검출될 수 없는 구상성단 내 wayward star들에서도 암흑물질이 나타났다는 관측 결과를 반례로 든다. 소위 암흑물질이 너무 많이, 너무 아무데서나 나온다는 것이다. Scarpa는 MOdified Newtonian Dynamics(MOND)를 지지하며, 암흑물질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빅뱅이론에 따르면 팽창하는 우주는 모든 방향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Magueijo와 Land는 우주배경복사를 분석한 결과, 고온과 저온 spot이 랜덤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패턴을 갖고 특정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Magueijo는 이 방향을 '악의 축'이라고 이름붙였단다. -_-; 어쨌든 이것은 대폭발을 거친 우주가 전방향으로 팽창한다는 현 이론과 맞지 않는다. 방향성이 있는 모델로 이 연구자들은 1)특정 축을 갖고 회전하는 우주 2) 베이글처럼 생긴 우주 3) 2차원적으로 무한히 팽창하면서 3차원계에서는 20억 광년 정도만 팽창하는 우주를 제시한다. 3번 우주가 사실이라면 참 재미있겠다.

각 이론에 대한 반박도 만만찮지만 그야 지금까지 자주 들어온 이야기므로 생략. 빅뱅이론에 대한 반론이 설득력이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논거가 관측 기술의 발달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핏쪄 우주망원경은 지금까지 나온 망원경 중 적광에 가장 민감한 덕분에 멀리 있는 은하들의 붉은 빛을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스칼파와 마게이쥬의 분석도 2001년에 설치된 WAMP(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의 자료에 근거한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다음 정상 이론이 나오려면 지금의 빅뱅이론이 성공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당장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긴 어렵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상상도 못 한' 신이론이 등장할 날이 다가온 것 같다. 두근두근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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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도중 문래역에서 마을버스를 잘못 타서 동네를 삼십 분쯤 헤맸다. 우리 아파트가 있는 방향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해 아파트 촌 사이를 걷고 걷다가 간신히 당산역을 찾아냈다. 어떻게 낯선 동네도 아니고, 자기 사는 곳에서 이렇게 헤맬 수가 있는지......orz

댓글 3개:

  1. 충분히 헤맬 수 있어요! (경험담)

    그건 그렇고, 뉴사이언티스트 다 읽으면 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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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리얼판타는 결국 폐막이 다가오고... 저는 별렀던 작품들 하나도 못 보고 마네요. 어제 저녁에 모 기자분과 휑(Nothing)을 보긴 했지만, 중간에 좀 졸고.. - -;

    제이님 혹시 내일 SF WAR club 파티에 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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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와, cosmo님 리얼판타 오심 연락 주시기로 하셨으면서! 저 어젠 1시 반부터 7시 반까지 있었는데!

    그리고 내일 SFWAR에는 안 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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