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0일 일요일

2005년 7월 10일 일요일 : 우주전쟁

휴가 나온 인수오빠와 신촌 아트레온에서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우주전쟁을 보았다.

'이게 뭐니, 이게.' 란 말이 절로 나왔다. 중간중간 감탄할 만한 장면도 없지 않았으나, 트라이포드의 디자인이 참고 봐 주기 힘들 만큼 부실해서 보기 괴로웠다. 어차피 21세기로 배경을 옮겼으니, 메카닉을 조금 더 창의적인 형태로 디자인했어도 좋았을 텐데. 너무 비효율적으로 생겨서 침공을 하든 살인을 하든 설득력이 없었다. 자국을 the world's greatest power라고 망설임 없이 칭하는 센스(?), 어설프게 끼워 넣은 아버지와 아들의 이별 장면, 영화 말미에 뜬금없이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자 우리 이제 감동해 보아요' 음악......아아, 음악이 정말 웃겼다. 끔찍한 장면에 몸서리치다가도 '오버'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그만 김이 새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엔딩은 [말이 많던데] 내가 보기에는 별 무리 없었다.

참, 그리고 '아버지'의 부주의함이 짜증스러웠다. 특히 초반부에서,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열 살 짜리 겁먹은 딸을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부실한 집에 내버려 둔 채 위험한 곳으로 구경을 가다니! 굳이 직접 상황을 판단해야겠으면 살짝 보고 이상하다 싶은 순간에 집으로 와서 애들부터 챙겨야 하는 것 아냐?

장점이 없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 별 줄거리가 없는데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연출이나 구성의 힘은 상당했고, 속도의 고저 조절도 좋았다 - 단점이 과하게 크다. 저렇게 잘 찍으면서 어떻게 저 정도 결과물밖에 못 만들까, 싶어 좀 안타까웠다.

극장에서 나오며 백 년 전에는 무척 흔하고 당연했을 '기계'에 대한 환상을 새삼스레 생각해 보았다. 요즈음 상식으로 보면 쓸데없이 거대한 쇳덩이를 낭비하는 것 보다는 유기체를 이용하는 편이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무지막지하게 자라서 지구를 덮어버리는 거대한 외계식물 얘기는 Disch의 70년대 소설에 이미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이런 느낌을 만들고 싶었다면 War of the Worlds 보다는 디쉬의 The Genocide를 활용하는 편이 나았을 걸 싶다.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전개가 가능했을 텐데. 어차피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딸을 안고 남의 지하실에서 찾아 낸 도끼로 지구를 덮은 거대 식물의 뿌리를 파헤치며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 식으로 아무 데나 복사해 붙여도 무리없이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요즈음은 거대 유기체 유행도 한 물 가서, 유비쿼터스 나노봇 같은 쪽이 더 설득력 있게 쓰이는 모양이지만.


시금치수프

샌드위치

점심은 홍대 앞 제니스 카페테리아에서 먹었다. 오빠에게서 'The Perfect Circle'을 빌리고, 마이클 스완윅의 책을 몇 권 빌려 드렸다. 스타트렉 만화를 가져가기로 해 놓고 깜박 잊었다. 갖고 싶던 켈X그 콘XXXX 의 광선검 스푼을 선물로 받았다! 파란색이다. 이히히.


카푸치노

식후에는 카페 비하인드에 가서 차를 마시며 수다. 홍대 한양문고에 들렀다가 귀가했다. 오빠는 대전 집으로 내려갔는데, 호우주의보 발령으로 집에서 발이 묶였단다. 휴가를 많이 기다렸을 텐데, 안타깝다.

댓글 5개:

  1. 올해 최악에 영화 당첨! 다른 말이 필요없겠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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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이쿠 저런 orz 볼 생각도 없었지만 더더욱 보지 말아야겠네.

    나의 근래 최대 기대작이었던 SinCity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웠지만 소장하고픈 정도는 아니었음. (로드리게즈 감독의 B급 센스가 좀 더 폭발하길 바랬는데!) 한번쯤 봐도 괜찮지만 제이양이 보기엔 잔혹 수위가 높으니 피하는게 좋을듯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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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범인은......탐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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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광선검 선물로 받으신거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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