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9일 토요일

2005년 7월 9일 토요일 : 비엔나의 두 거장 - 위대한 모차르트와 말러


토마토 바질 샐러드

브로콜리 크림 스파게티

아우님과 라리에또 압구정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그새 새로운 가게나 건물이 많이 생기고 없어졌다. 크리스피 도넛 압구정점이 구 올리브 자리에 개점을 준비중이다.

전채로 토마토 바질 샐러드, 식사로는 나는 치킨 페투치니, 아우님은 크림 스파게티. 둘 다 아침식사를 않고 나온 터라 샐러드가 나오자마자 무시무시한 속도로 먹어치웠다. 배고픈 김에 평소에는 손대지 않는 마늘빵까지 깨끗이 비웠다. 덕분에 식사가 끝날 즈음엔 배가 불러 헉헉.

식후에는 압구정 커피집에 갔다. 아아, 얼마만이람, 이 고소한 커피향! 오랜만에 갔는데 마침 선생님과 실장님 두 분 다 계셔서 기쁘고 반가웠다. 게다가 백만년만에 '진짜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아우님과 한담하던 중에, 동진님+Philia75님과도 우연히 마주쳤다. '우주전쟁'을 보고 오셨단다. Philia75님께서 드립하시는 모습을 구경(?)하고 넷이 같이 앉아 이야기도 나누었다. 두 분은 이 달 말에 모처로 밀월여행을 떠나신다. (미묘하게 왜곡된 정보임.)


에스프레소 도피오

두 분이 먼저 가시고, 아우님과 나는 이디오피아를 조금 마신 후, 커피 두 봉을 사 들고(블렌드와 콜롬비아) 십오 분쯤 뒤에 일어났다.


커피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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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RAM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제 2번 라장조 작품 136
말러 교향곡 제 3번 라단조

지휘 | 함신익, 메조 소프라노 | 제인 더튼, 연주 | 대전시립교향악단
합창 | 대전시립합창단(여성), 서울레이디스싱어즈, 이화챔버콰이어, 셀라 어린이 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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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한 대전시향의 말러 공연을 보았다. 무리없이 시간을 맞출 수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차가 밀린데다 예당 앞 횡단보도 신호가 너무 길어서 공연 시작 직전에야 간신히 입장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오 분 이상 기다리면서, '공연장 앞 횡단보도라면 대부분의 공연이 정시에 시작하는 점을 고려해서 50분 쯤에 녹색등을 켜 주면 좋을 텐데' 싶었다. 대영박물관 한국전을 관람하러 온 학생들이 아주 많았다.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 이런 프로그램에서는 워밍업이란 느낌이 물씬 나는 선곡이다. 유명하고 쉬운 곡을 쉽고 편하게 연주하는 걸 들을 때면 마음이 놓이며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에는 프로그램에 모차르트가 있으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별 부담없이 듣게 되었다. 디베르티멘토같은 소품은 좋아하기도 한다. 따지자면 모차르트가 완성한 음악의 양식을 고전파라고 하니 그 음악이 고전적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고전적이라서 (솔직히 표현하자면 '질려서')' 모차르트를 썩 즐기지 않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좀 우스운 아이러니다. 내가 모차르트의 이름에 거부감을 느끼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여럿 있고, 아직도 모차르트만을 듣기 위해 공연에 가거나 씨디를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무심' 카테고리에 있던 것들이 '관심' 쪽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느낌은 역시 좋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들으며 말로만 듣던 그 유쾌한 천재성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오페라의 ㅇ자에도 흥미가 없다.)

디베르티멘토가 깔끔하고 경쾌하게 끝난 후 휴식시간, 그리고 오늘 공연의 메인 디쉬라 할 수 있는 말러 3번.

말러 3번은 총 6악장으로 구성된 데다 1악장이 30분 이상이나 된다. 전체 곡 길이에 대해 정확히 알아 두지 않고 대충 한 시간쯤 하겠거니 하고 덜렁덜렁 갔는데, 한 시간 반이나 되어 좀 놀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에 처음 들은 이 곡 자체에 굉장히 당황했다. -_-; 1악장을 들을 때의 내 심정은 한 마디로 '헉'. 곡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었다. 흐름이 있긴 한 것 같은데(그러니까 통채로 한 곡으로 묶었겠지), 너무나 독특하고 이질적이고......뭐랄까, 불균형적이었다. 무대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해도 이만큼 놀라지는 않았으리라. 게다가 1악장은 그토록 무시무시했는데 2악장과 3악장은 어떻게 이렇게나 '정상적인' 거지? 들으면서 다음엔 대체 뭐가 튀어나올까 싶어 가슴을 졸였다.

4악장에서는 메조소프라노, 5악장에선 드디어 합창단까지 등장. 비교적 짧은 4악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한 가운데 메조소프라노의 독창으로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나온다. 니체라니,이쯤 되면 이건 지구정복 교향곡 아닌가! 6악장이 듣는 이의 기(氣)를 뽑아가며 느릿느릿 끝났을 즈음에는 - 그렇다, 6악장에는 노래도 없고 폭발하듯 분출하는 포르티시모도 [아마] 없다. -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듣기도 이렇게 힘든데 연주하고 지휘하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너무 힘들었다. 이런 곡을 작곡하다니, 말러도 세상 살기 참 피곤했겠구나 싶었다.

내가 멘델스존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함'이다. 뜬금없는 말일지 모르지만, 이것은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시리즈를 즐겨 읽는 이유와 비슷하다. '너무' 가 없는 세계. 너무 비참하지도, 너무 우울하지도, 너무 과격하지도 않은, '오케이, 거기까지.'가 존재하는 세계가 주는 안전함과 온건함에 대한 환상이 멘델스존의 음악에는 - 그리고 마리미테에는; - 있다. 말러의 음악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의 극한이 있다. 너무 격정적이거나, 너무 비참하거나, 너무 우울하거나, 때로는 너무 경건한 음악. 여기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어깨를 뻣뻣이 굳히고 두 다리를 딱 모아 붙인 채로,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해서' 각오를 다지게 만드는, 외면하고 싶을 만큼 무서운 검광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말러를 좋아한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싫어해서도 무심해서도 아니다. 이런 곡을 듣고 '무심'할 수는 없다. 작곡가에 대한 예의 때문에라도, 이만한 교향곡을 듣고 '어, 그거 괜찮지', '좀 좋아해.' 같은 애매한 감상을 무책임하게 내뱉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만한 깊이를 감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나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전시향의 연주는 훌륭했다. 일단 이만한 규모의 곡을 처음 들으면서 연주에 신경쓰지 않고 - 아무리 모르는 곡이라도, 연주를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라서 듣다 보면 거슬리게 된다 - 몰입할 수 있었던 것만 보아도 좋은 연주였음은 짐작이 되리라. 독주 부분이 많았던 트럼펫도 좋았으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트럼본 주자의 연주가 제일 돋보였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후 지휘자가 트럼본 주자를 지명할 때 기립했다.) 대전시향에는 악장이 두 명인데, 모차르트 때에는 김필균 씨가, 말러 때에는 로드리고 푸스카스 씨가 악장 자리에 앉았다. 곡 때문인지 몰라도 푸스카스 악장의 연주는 화려하단 느낌. 금관 쪽 부담이 상당했을텐데, 끝까지 무사히 잘 버텼다. 메조소프라노 제인 더튼의 노래도 인상깊었다. 합창단의 노래는 이상하게도 중간중간 잘 들리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피로한 탓이었는지, 아니면 좌석 위치와 관련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잘 한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종교적인 가사가 영 와닿지 않아서......) 참, 함신익 지휘자는 디베르티멘토 때 악보 없이 지휘했는데, 캐쥬얼한 인상을 주었다. (내가 그 곡 들을 때 까지만 해도 다음에 바위산이 나올 줄 몰랐지. OTL)

공연은 앵콜 없이 열광적인 박수로 끝났다. 공연장에서 나올 때는 '두 번은 못 듣겠다' 고 했으나, 집에 와서 곱씹어 보니 이 곡을 씨디가 아니라 실황으로 처음 들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 2개:

  1. '비엔나의 두 거장'이 '토마토 바질 샐러드'와 '브로콜리 크림 스파게티'인 줄 알았습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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