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19일 화요일

2005년 7월 19일 화요일 : 시험 비행사 퍼크스 / 은하에서 온 방문자들

오전 열한 시에는 G사에 가서 계약서를 쓰고 중식집에서 점심으로 볶음밥과 탕수육을 먹고, 그 길로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리얼 판타스틱 영화제' 중 두 편을 더 보았다.

시험 비행사 퍼크스 Test Pilot Pirx
감독: 마렉 피에스트락 (Marek PIESTRAK), Poland/Soviet Union, 1979, 104min
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영화. 인간보다 효율적인 비행 전문가 로봇이 만들어지자, UN 산하 유네스코에서는 외견상 인간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 이 로봇을 대량 생산해도 문제가 없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시험 비행을 하기로 한다. 인간인 퍼크스 사령관은 이 시험 비행의 기장 자리를 제안받고 처음에는 거절하나,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로 죽을 위기를 넘기고 나자 '내가 시험비행을 맡지 않길 원하는 사람들의 뜻에 따를 수 없다'며 우주선을 탄다.

여자는 비서밖에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남자들만 계속 나오는데다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겨서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이 점은 이번에 본 다른 동구권 SF영화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에 보는 '외국인'이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애당초 익숙하지 않으니까 구분하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무엇인가f'라는 심각한 질문을 제대로 던지지 못해 지루해진 영화였다. 긴장감은 그런대로 유지되었으나,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지 않게 만드는 안이한 구석이 있었다. 이데올로기적 배경에서 비롯된 헐렁한 이상주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설핏 들었다. 특히 마지막 국제연합 사법재판 장면은 상당히 지루했는데, 사법부의 정의/권위가 그렇게 폼 잡고 십여 분동안 보여줄 만큼 대단하지 않고, 대단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거부감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등산 장면은 없어도 좋았겠다. 나라면 의사와 악수하는 장면에서 영화를 끝냈으리라.


은하에서 온 방문자들 Visitors from the Galaxy
감독: 듀상 뷰코틱 (Dusan VUKOTIC), Yugoslavia/Czechoslovakia, 1981, 82min
굉장히 신나는 B급 특촬물이었다! 주인공은 책상 앞에 앉아 우주비행사 머리뚜껑(!)을 뒤집어 쓰고 녹음기에 아이디어를 기록하는 과학소설 작가 지망생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녹록치 않아서, 주인공은 뭘 녹음하려 할 때 마다 애인이 망상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여자친구나 개를 키우냐 마냐로 옥신각신하는 이웃집 모자(母子)의 방해를 받는다.

그런데 이 주인공에게는 놀라운 재주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간절히 원하는 것을 현실로 이루는 능력'이었다. 그 때문인지, 주인공이 쓰기 시작한 소설에 나오는 아카나 은하계 출신 외계인 세 명이 정말로 주인공네 집 근처 섬에 나타나고, 주인공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한 상황에 휘말린다.

가벼운 코메디로 시작해서 특촬물->로맨스->엽기 호러로 발전(?)하는 전개가 군더더기 없이 경쾌하고 즐겁다. 호러 단계에선 당황해서 손가락 사이로 보았지만. 하하. 조그만 정육면체로 변신한 여자친구 비바, 사진작가 지망생 이웃,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몬스터, 발가벗고 외계인들을 다정하게 맞이하는 휴양객들, '외계인의 손가락'.......이번 리얼판타에서 본 영화 중 두 번째로 재미있었다. (첫 번째는 물론 섹스미션.)

저녁에는 미엽이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미엽이가 각종 해산물을 넣은 개운한 국수와 각종 야채를 채썰어 만든 김쌈을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후식으로는 토마토, 복숭아, 빵, 얼린 바나나와 우유를 섞어 간 시원한 음료까지! 미엽이의 요리 / 살림솜씨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맛있게 먹고, 신나게 수다도 떨었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늦은 시각이라 미엽이의 피아노 연주는 듣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음엔 낮에 놀러 가야지. ♡

댓글 2개:

  1. 섹스미션 이었죠? ;-)

    Jay 님도 신체절단 고어물에 약하시군요. 저도 꽤 예민한 사람과 동행해서 봤다가 당황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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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머, 이런 오타를. orz (수정했어요;)

    신체절단, 대형사고, 귀신등장, 괴물출현 등에 모두 약하답니다. 요즘 같은 공포영화 철엔 기습적인 플래쉬 광고를 피해 다니느라 힘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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