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13일 목요일

2004년 5월 12일 수요일 :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2주년 특별대담 '시네마테크, 우리의 아름다운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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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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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서동진(서울퀴어아카이브 대표)
조영각(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
유운성(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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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이하 '김'): 일 년에 천 편은 상영하자는 각오로 시작한 서울아트시네마가 문을 연지 2년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장편 영화만 세어 300편을 상영했고, 올해는 이미 200편을 채웠습니다. 이제는 시네마테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여 이번 대담에는 실무자분들을 모셨습니다. 오늘 특별대담에서는 (1)관객의 세대 문제, (2) 시네마테크 활동이 현재 처한 상황과 문제점, (3)독립영화, 새로운 한국영화와의 연계성 문제라는 세 가지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겠습니다.

조영각(이하 '조'): 앞서 상영된 고다르의 영화에 '문화는 규칙이고 예술은 예외다'는 말이 나옵니다. 저는 시네마테크가 '예외의 공간' 역할을 잇는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문화학교 서울 같은 곳에서는 불법으로, 화질 나쁜 비디오로 자막을 직접 만들어 가며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그 때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지금 단편영화도 찍고 평론도 하고 있지요. 이는 단순히 [색다른] 문화를 향유한다거나, 남들이 보지 않는 영화를 본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한국의 영화(문화)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현재 시네마테크에 오는 관객이나 상영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한국영화의 대안 구축이라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영화 제작자와 관객이 분리되어, 예를 들어 이번 독립영화제 같은 경우에도 여기에서 일부를 상영하는데, 그런 독립 영화를 보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이 따로 놉니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독립영화를 보지 않아요. 보고 이랬다 저랬다 말하기도 꺼리는 편이고. 지금 생산되고 있는 영화를 만들고 보는 사람과 미국이나 유럽의 거장 영화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 갭이 생긴 거죠.

김: 영화가 세대로서, 차이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할 때, 이러한 측면에서 시네마테크를 어떤 공간으로 생각하십니까?

서동진(이하 '서'): 저는 지금 세대에서 시네마테크가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시네마테크는 금기가 있던 시대, 문화와 정치의 관계를 아는 세대의 산물이지요. 금기가 풀리고 다양한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세대에게는 시네마테크라는 것이 불필요할 수 있어요. 이런 변화가 오면서 시네마테크가 심리적 엘리트주의자들의 납골당이라는 자괴감이 생겨나고, 엘리트주의의 미몽에서 깨어나면서 시네마테크에 부여했던 물신적인 가치가 휘발되기 시작한 것이죠. 퀴어아카이브가 문을 닫은 것도 마찬가지 문제입니다. 퀴어문화가 이미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퀴어영화를 통해 변화되어 있는 삶을 영화를 통해 재발견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지금 시네마테크는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 '이미 상중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시네마테크는 영화가 예술적인 것, 문화적인 대상으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비주류적 영화를 향유하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저항의 상징이 되었죠. 그러나 우리나라의 시네마테크는 제도적 산물같은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물론 참여하는 분들은 여기 서울문화학교에서 일하셨던 조영각씨를 비롯한 대부분이 개별적인 시네마테크 운동가이시지만요. 그렇다면 우리 관객은 어떠합니까? 관객들도 과거 프랑스의 시네필처럼 저항적입니까? 한국 시네필, 시네마테크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유운성(이하 '유'): 왜 우리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또 관람할까요? 이 상영이 영화 제작과 관객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영화 관람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화하기 위해서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 동아리 시절을 생각해 보면, 같이 영화를 한 편 보고 나면 각자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한참을 떠들고 그랬죠. 문화학교 서울 시절에도 그랬고요. 그런데 최근 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많이 보는 관객들을 보면 ㅡ 같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는 것은 물론이요 하루종일 영화관에 앉아 있는 분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곤 하는데 ㅡ 가끔은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피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생각하기를 피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떄가 있습니다. 대화를 나누어 보면 깊이있거나 진지한 해석보다는 좋음/나쁨, 마음에 드는/마음에 들지 않는 이 네 가지 카테고리를 조합한 감상이 대부분이에요. '좋은 영화긴 한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식으로요. 게다가 소위 내공이 탄로날까봐 대화를 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화하기 좋지 않은 환경이 된 게 아닌가 하는 대화하는 문화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많아요. 저는 일단 말보다는 글로 표현하는 사람이니 평론 얘기를 하면, 예전에는 평론을 쓰고 나면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 틀렸다'는 장문의 피드백이 종종 왔는데, 요즈음은 그런 반응을 받아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피드백이 없죠. 영화보기가 그 자체로 소비와 회피의 소단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를 어떤 대안을 통해 돌파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저의 요즘 개인적인 고민입니다.

김: 시네마테크의 활동과 그 형식에 대해 [조금 전에 서동진씨가 말씀하셨듯이] 영화 귀족주의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반 영화계는 물론이고 독립영화 쪽에서도 그런 말이 있어요. 요새 디비디도 다 나오고 하는데 왜 굳이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조: 저는 그 현상 역시도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규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도 할 수 있고 저런 식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중간에 멈추고, 서동진씨가 유운성씨가 꺼낸 주제를 이음)

서: 저는 운성씨와 반대 상황이라고 봅니다. 제가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관객의 사회학'이라는 관점에서 보는데,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면 단연 '다구리까기'지요. 그런데 지금의 20대에게는 영화가 문화자본의 주요한 소스, 1차적 요소입니다. 우리 때, 저만 해도 문화자본의 일차적 요소는 책이였는데, 이제는 '무슨 영화를 보았느냐'로 바뀐 거죠. 이 새로운 세대는 그 소비과정 안에서 자신의 소비체험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비평가와 상호작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90년대 후반 이후 이렇게 영화소비의 방식이 바뀐 20대가 시네마테크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성욱씨가 앞에 꺼냈던 주제를 이음)

김: 시네마테크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프랑스의 시네마테크를 생각해 보면, 그 때 시네마테크만 있었던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 대부분이 말은 많고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는가, 집에서 아는 사람들끼리 보느니 단 육십 석, 칠십 석이라도 극장을 만들고 함께 보려고 할 수 있었을텐데 왜 보러 가려고만 했는데, 하나의 방식으로만 하려고 했는가 하는 문제가 있지요. 이 점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고민입니다. 현재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까요? 더욱이 한국에는 앞선 시네필 세대가 (없지는 않지만) 많지 않고, 시네마테크라는 공간 자체에 대해 참고할 자료(레퍼런스)가 없습니다. 역사가 없으니 모든 것을 현재에 새롭게 해야 하고, 의견이 다양하여 한 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그렇게 하려고 하면서 곤경에 처한 상황인 거죠.

조: 이곳 시네마테크는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거나 새로운 영화를 발견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쩐에 보았던 영화를 확인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문화학교 서울에서도 이런 고민을 했죠. 그저 이미 본 영화를 롤로 틀어 '음, 역시 저 영화는 다시 봐도 훌륭하군' 또는 '저건 과대평가 된 영화가 아닌가?'하는 수준에 머무르면서 괴리감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김: (실무적 문제 논의)

서: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공통된 특성을 가진 집단이 곧 관객 집단이 되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정치적 각성을 얻어내곤 하였죠. 하지만 지금은 이 두 집단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현재 관객은 소비자 집단이에요.
제가 앞에서 말한 시네마테크가 필요한가는 문제로 돌아가서, 저는 사실 어떠한 형태로도 시네마테크는 무조건적으로 존속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설령 비평가들끼리 모여 고다르같은 고전 걸작이나 보는 폐쇄된 공간이 되더라도요. 요즈음은 다양한 문화센터가 영화를 포함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지자체 영화제, 여성 영화제 등을 보아도 그렇고, 지금 조영각씨 말씀을 들어 봐도 예전같으면 상업영화 대 예술영화 구도에서 독립영화를 예술영화에 끼워넣었을텐데 이제는 시네마테크 대 독립영화 구도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문제는 더 이상 기존의 이분법적 대립이 통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시네마테크가 적극적으로 새로운 자리잡기(포지셔닝)를 하지 않고 떠밀려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시네마테크는 시네마테크 내부에 있던 영화보기의 방식이 독립해 나가면서, '거장이나 작가의 영화 보기'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상황으로 떠밀려왔습니다. 떠밀려왔다고 하니 부정적인 의미같은데 그건 아니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모색이 가능한 시점에 왔다는 점입니다. 자유를 찾으려는 몽상가 관객이 아니라 세련되고 다양한 기호를 가진 영화소비관객을 대상으로 할 때 시네마테크는 무엇일까요? 여전히 유일한 특권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을까요?

김: 시네마테크가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저 스스로는 이 점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유: 지금처럼 운영해도 계속 보러 오는 관객은 있겠지요. 하지만 과거와 지금의 관객이 다르듯이 미래의 관객도 달라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영화 텍스트가 커뮤니티 안에 들어와 멋대로 해석된 다음 창작물로 나왔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대학 동아리 시절에 열혈남아를 백 번도 더 봤는데 ㅡ 동아리방에 들어가면 맨날 틀어져 있던 게 그거죠 ㅡ 그 때 같이 보던 선배들과 단편영화를 만들면, 왕조위를 흉내내어 찍습니다. 그러면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젊은 주인공이 자살하려고 가다가, 죽기 직전에 민중의 소리를 듣고 깨달음을 얻는 뭐 그런 영화가 나오죠.
아까 저는 관객들이 대화를 피한다고 했고 서동진씨는 다구리까기가 관객의 특징이라고 하셨는데, 이 두 가지가 약간 다릅니다. 지금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자기를 말하려는 의지는 약해졌지만 영화의 디테일, 감독, 야사등에 대한 관심은 대단히 높아요. 뭐 세세한 부분까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이렇게 변화한 관객에게 시네마테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양한 영화주체와 연계한다면 시네마테크는 계속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같은 운영이라면 큰 효과 ㅡ 정확히 설명을 못하겠는데 어떤 기대 같은 것 ㅡ 를 얻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김: 지금 원래 세 가지 주제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는데, 마치기 전에 세 번째 주제였던 독립영화나 새로운 한국영화와의 연계성 문제를 잠시 이야기해 보았으면 합니다.

조: 지금은 이 공간 하나만으로 서울아트시네마와 각 시네마테크가 시네마테크협의회로 묶여 있습니다. 여기 극장 하나 있고, 부산에 하나 있고 이렇게 둘 뿐이죠. 이래서는 다른 과제를 설정할 수가 없습니다. 시네마테크는 효과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안정적으로 관객을 만나는 공간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 독립영화를 줄창 틀면 관객이 들겠습니까? 차라리 분리하여 독립영화관을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하나의 공간은 모든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요. 역할을 나누어 지는 곳이 생겨야 서울아트시네마의 과제와 방향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지향이 앞서면 오히려 관객 소외를 부를 뿐입니다. 소모적인 논쟁을 삼가야 합니다.
이는 모든 영화제의 정체성, 방향문제와 결합하여 고민할 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요즈음 보면 지자체가 국제영화제를 많이 여는데, 이들 대부분이 운영자의 욕구, 관객의 욕구, 지자체의 욕구가 짬뽕되어 모두가 적당히 만족하는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100%만족하지 못해요. 그 대표적인 경우가 전주국제영화제입니다. 여기 서동진씨도 직접 참여하셨으니 아시겠지만, 지자체는 예산을 이십오억이나 쓰고, 실제 전주 시민들은 볼 영화가 없고, 관객석은 텅텅 비었어요. 다양한 역할을 각자 나누어 맡아야 합니다.

김: 저는 불평을 좀 더 큰 곳을 대상으로 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더 높은 데다 이런 영화관을 더 만들어 달라는 항의를 한다든지.....
예전부터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왜 영상이 끊기냐, 언제 천 원 올랐냐, 게시판에는 이런 글이 대부분입니다. 그냥 앞으로는 좀 끊기지 않게 해 달라, 이렇게 쓰셔도 되는데 말입니다. 게시판을 보고 있으면 시네마테크의 미래는 암담하지요. 외국의 영세한 아트시어터는 상영 시작 10분 전에 표를 팝니다. 지정좌석제도 아니에요. 왜 10분 전이냐, 10분동안 표 판 아주머니가 들어가서 영사기를 돌리는 겁니다. 여기가 이렇게 좌석도 좀 있고 번듯해 보이지만 사실 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만한 공간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나라를 보면 우리처럼 최첨단을 달리는 곳이 없습니다. 예매도 맥스무비로 하고.....이게 사실 무척 곤란합니다. 이렇게 되니 표 파는 사람은 하루종일 표만 팔아야 하고, 자막 번역 하는 사람은 하루종일 자막 번역하느라 막상 영화는 못 봅니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그렇게 되니까 결국 그만두게 되죠. 관객으로 들어오고 싶으니까요. 아트시네마가 기관화, 제도화될수록 그 내부의 일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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