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종강했다.

오늘 [CIEL] 13권이 나왔다. 시험 기간 내내 한양문고 '내일의 신간'을 확인하며 대체 어째서 요즘은 시험이 끝나면 옆에 쌓아 놓고 볼 만화 신간이 나오지 않냐는 둥, 이게 다 보는 만화책이 너무 적어서라는 둥 애꿏은 동진님을 붙잡고 투덜거렸는데 종강일에 [CIEL]이 나와서 무척 기뻤다. 종강 행사를 하는 모양이었지만, 들여다 보니 다 가는 분위기도 아니고 교수님들 뵐 면목도 없어 도서관에 잠깐 올라갔다가 바로 버스를 탔다.

연희동 삼거리에서 내려 걸어서 한양문고에 먼저 들렀다가 한양문고에서 우회전, 스타벅스와 에블린 사이로 이어지는 길로 브레드가든에 갔다. 5번 출구 근처가 어수선했다. 깃발도 보이고 짙은 색 점퍼에 마스크를 한 남자들도 많았다. 누군가 소리를 치고 있었다. 오늘은 무척 추웠다. 나는 후딱후딱 브레드가든까지 가서 크리스마스 초컬릿 포장지를 골랐다. 빨간색과 흰색 중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포장은 흰색, 상자는 빨간색으로 결정했다. 마치판과 누쓰누가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몇 년 전부터 볼 때 마다 '저거 괜찮을까?'하고 생각했던 실리콘 얼음/초컬릿 틀도 할인하기에 종강한 기세를 타고 하나 샀다.

 5번 출구 근처는 돌아오는 길에도 여전히 어수선했다. 바닥에는 김말이, 튀김, 김밥 같은 것이 짓뭉개져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동행에게 "튀김하고 다 버렸대"라고 말하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모르고 싶었다.

나는 모르고 싶다. 시험이 끝났으니 미뤄 뒀던 [사무라이 전대 신켄쟈]를 보고, V6 팬클럽에 열심히 댓글 달아서 등급 올리고, 요즈음 매일 늦게 퇴근하는 남편에게 깜짝 선물로 어떤 초컬릿을 만들어 줄까 고민하고, 오늘처럼 유달리 추운 날이면 따뜻한 차를 마시며 내 공간에 앉아 일 년 내내 거의 손을 못 댔던 책을 읽고 싶다. 나는 슬프기 싫다. 목숨의 문제를 너무 가깝게, 너무 날것인 채로 날마다 느끼고 싶지 않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나를 꾸중할지언정,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이유까지 더해가며 내게 환멸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 너무 많은 것이 호오가 아니라 생존의 영역에 있고, 그 대부분은 온전히 정치의 영역에 있는 지금, 나는 투쟁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는 그런 거창한 시대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더없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조리하게 느끼고 싶지도 않다. 생각하면 괴로워진다. 괴로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면 그 말을 믿고 싶다. 마음 편히 살고 싶다. 

나는 뒤로 빙 돌아 4번 출구로 들어가 지하철을 탔다. 집에 돌아와 가방과 쇼핑백을 내려 놓으며 어두운 거실에 불을 켰다. 거실 탁자 위에는 시험이 끝나면 읽으려고 미리 주문했던 [진보의 미래]와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가 놓여 있었다. 나는 서둘러 코트를 벗고 부엌으로 들어가, 외출복 차림 그대로 앞치마만 둘러 매고 며칠동안 싱크대에 방치되어 있던 음식쓰레기를 열심히 모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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