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9일 수요일

2004년 6월 9일 수요일 : SF 잡기

SF가 주류문학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주류문학이 무엇이든, 그 시체를 치우고 관을 차지해 봐야 별로 득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잘 팔리고 기존 문단을 놀라게 하며 SF독자들에게 인정받을 창작 SF같은 것이 나오려면 삼십 년은 기다려야 한다. 지금 창작 SF 문학상 같은 것을 만들어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잘 쓰는 독자는 창작에 몰두하지 않았고 창작을 하겠다고 덤비는 사람은 대개 과학소설도 소설이라는 사실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다. 반세기 전에 지구를 떠난 줄 알았던 캠밸과 아시모프는 아직까지도 한국 과학소설 창작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점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했고, 덕분에 세상 사람 대부분을 좋아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공상 과학 판타지를 쓰겠다고 덤벼, 폭탄 한 방으로 우주 전함에 탄 엑스트라 1부터 100까지를 죽이며 비좁은 온라인 공간을 잡아먹는 사람들까지 좋아하기란 아무래도 힘들었다.

창작 SF가 나오려면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과학소설을 충분히 많이 읽어 장르의 문법을 매끄럽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달리 말해 열심히 읽고 쓰는 성실한 작가 지망생과 엄청난 수의 번역작품이 필요하다. 국내 환상문학 관련 사이트를 볼 때마다 그 수준에 감탄했다. 창작 SF 게시판을 보다가 환상문학 쪽으로 구경가면 천국에 온 것 같았다. 창작 공상과학 판타지는 과학소설이냐 아니냐를 떠나 일단 재미가 없었다. 과학소설가 중 과학자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아주 특별한 수준의 과학적 지식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이 과학소설의 전부는 아니다. 글을 쓸 줄 알아야 과학소설도 쓸 수 있다.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치열한 문제 의식을 담은 불후의 걸작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함선과 외계인과 마초 주인공을 등장시키기 전에 주제부터 정할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도 못 하겠으면 나처럼 혼자 일기나 쓰면 될 일이다.

댓글 3개:

  1. 오랜만에 뵌 제이님이 너무 여성스러워져서 놀랬어요! +_+



    ...그건 그거고. 잘 팔리는게 목표면 잘 팔릴 소설을 써야... =_=;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하인라인같은 이야기꾼이 아닐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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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말했잖아요 -_- 모 님을 꼬셔보시라구요. 하긴 이야기란 재촉해서 튀어나올 것이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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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라슈펠님/ 오랜만에 뵈어 정말 반가웠답니다!

    안나님/ 사실 그 l모 님은 SX좌X회에서도 은근히 재촉을 당하셨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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