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6일 수요일

2004년 10월 6일 수요일 : [잡기] 비둘기와 시냅스

오후 여섯 시,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다. MBC에서 저녁 프로그램을 하고 있었다. 어느 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사는 비둘기 가족이 나왔다. 수컷이 다른 암컷을 둥지로 끌어들여, 둘이서 원래 있던 암컷과 새끼들을 공격하자 주민이 신고를 했단다. 방송은 일러스트레이션까지 곁들여 이 패륜적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었다. 나는 방송을 귓등으로 흘려넘기며 화이트보드에 쓰인 오늘의 메뉴를 읽었다. 취재자는 신고한 주민에게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남편과 본처의 사이는 좋았나요? 수저를 챙기다 말고 티브이를 다시 돌아보았다. 뿌듯함과 쑥스러움이 뒤섞인 얼굴을 한 아주머니가 무어라 답하고 있었다. 다행히 식당은 시끄러웠다. 취재자가 또 물었다. 새로 들어온 비둘기는 예뻤나요. 아주머니는 반쯤 웃음을 섞어 답했다. 나는 더 이상 순박한 아주머니와 재기있는 방송작가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너무 자주, 그것은 모여 무지가 되었고 자가증식한 무지는 타인을 공격하는 수많은 화살로 확산했다.

티브이를 등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뉴런이 덜컹거리고 시냅스몹에서 아세틸콜린이 쏟아져 나왔다. 시냅스후세포의 수용체가 열리고 전기가 튀었다. 머리 속을 휘젓는 음전하와 양전하를 상상하자 손 끝이 찌릿거렸다. 뇌는 우주와 같았고 세상은 수상돌기와 같았으며 티브이는 세상을 채찍처럼 휘두르는 백만킬로미터짜리 축색돌기였다. 나는 나의 뇌에서 뜯어낸 수초로 온몸을 감싸고 짠 된장국 속으로 침잠했다. 외면과 도피는 쉬웠다. 그러나 더 편하지는 않았다. 나의 시냅스는 그걸 모른 채 염소에만 열심히 매달렸다. 괜찮아. 나는 숟가락에 비친 내 머리를 보며, 그 찌그러진 상 아래에 숨은 수많은 뉴런과 단백질과 근육과 뼈를 상상하고 말을 건넸다. 비둘기 새끼는 살았고 방송작가는 돈을 벌었고 아주머니는 '좋은 일'로 티비에 나왔다. 그리고 내게는, 그래, 내게는 아직 절연 수초를 벗어던질 기력을 줄 따뜻한 저녁밥과 시간이 있었다.

댓글 6개:

  1. 양자역학만으로는 부족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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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승민오빠/ 오오, 단번에 주제를 간파!

    joana님/ 이제 대세는 신경과학입니다.(거짓말)

    scifi님/ 무슨 말씀이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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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랜만에 왔는데 Jay님은 여전하시군요....흠흠

    그나저나 Happy SF를 사보았는데 거기서 제이님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귀여우시더군요.....^^





    ............(그렇다는건 평소에 어떻게 생각을 하고있었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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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북극곰님/ 어이쿠, 오랜만입니다. Happy sf사셨군요! 즐겁게 읽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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