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암흑가의 세 사람(Lu Cercle Rouge)'

요전에 EBS에서 알랭 들롱이 나오는 스릴러/추리물을 한 편 본 적이 있다. 지금껏 그 영화가 멜빌 감독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니 뭔가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꽤 끈적했는데, '암흑가의 세 사람'은 건조하다 못해 차가웠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온 멜빌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기억이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큰 기대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의 여러 상영작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안타깝다. 다음 토요일인 25일에 프랑스 느와르 특별전 대신 멜빌 영화 상영을 해 줬으면 싶다.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기 전에는 고다르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좋아했으면서, 아아, 간사하기도 하여라! 하다못해 '사무라이'라도 꼭 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소리의 부재'였다. 초반,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구장 장면에서야 그 때까지 배경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 트렌치 코트를 입은 아저씨들이 마른 수건을 꽉 죈 듯한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넘치는,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영화였다. 보면 볼 수록,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연출이며 음악,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나라면 어떻게 찍었을까, 감독은 왜 저 장면을 저렇게 처리했을까, 저 사람 천재 아냐?; 같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실은 그래서 얼마 전부터 영화연출론 책을 틈틈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비디오 카메라를 몇 번 만져 본 것이 전부인 데다 영화 촬영 현장을 자세히 볼 기회도 없었다 보니 자꾸 2차원적으로만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어디 영화 뿐이랴.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생이 길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앎을 상상하면 흥분으로 절로 머리끝이 쭈볏 선다. 공부하고 싶다. 더 많이, 열심히, 깊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암흑가의 세 사람'이 매진이었고 - 보조석까지 팔았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영화가 매진이라니! - 김지운 감독님의 해설이 붙은 '형사'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귀여운 요츠바랑 쇼핑백을 들고 오신 sabbath님과는 영화관 밖에서 만났다. 영화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영화 재밌게 보세요' 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sabbath님께서 선물로 크런키 박스를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고 흐흐흐 웃었다. 초컬릿님 반가워요. ♡


(우와)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3가 아웃백스테이크로 가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종우오빠, 나, 지현, 두현, 부경, 태준, 범틀, 채우, 연수, 혜리 이렇게 열 명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현이는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05학번 새내기로 타대 약대에 새로 입학한단다. 전공이 썩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수능을 다시 쳤다는 부경이도 좋은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고시생인 나와 두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자꾸 아스트랄 고시 월드로 빠져나갔다.; 태준이는 2월 22일에 육군 입대. 04학번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내일 12학점짜리 시험을 치른다는 혜진언니와 - 아니 어떻게 한 과목이 12학점이람. - 급한 일이 생긴 형기 오빠가 못 오셔서 아쉬웠다.







식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와 케익을 들며 '레이디 경향'과 '여성동아' 풍(...) 수다를 떨었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내일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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