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희미해진 각오를 다질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수확이다.
예시 1 : 2002-01-03 과소동 잡기장
네. 저 진실은 무엇인가 하니......독일문화원은 계급제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 계급은 크게 "진급생"과 "재수강생(비더홀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1, 2, 3, 4점 | 5, 5.5점의 여섯 계층이지요. 5.5점은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은 게을러서 출석을 일곱 번 이상 빠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5점은 부지런하긴 한데 성적이 나쁜 (-_-) 학생들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5점입니다.
1점은 최상위 계급으로, 당연히 아주 적은 수입니다. 3.5점에서 4점 사이에 대부분의 평민이 위치합니다.
이 계급 제도는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수강 신청이라는 전시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점이 제일 먼저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2점...그렇게 해서 진급생 계급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제 한 학기를 쉬고 들어오는 학생들(잠재적 진급생 계급)이 역시 계급에 따라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5점, 그리고 남는 반들에 5.5점 학생들이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스케쥴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원하는 시간대의 반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수강 신청을 할 때에는 계급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나가서 등록을 하지요. 하지만 비더홀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_- 그냥 무더기로 나오라고 그럽니다. 비더홀러들에게 드디어 수강신청의 기회가 돌아오면, 이미 강당은 거의 텅 비어 있고 비더홀러들은 서로 민망해합니다. 드디어 신청이 끝나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면 상황은 종료되고, 독일문화원은 다음 학기의 계급을 정하기 위한 물밑준비 단계로 들어갑니다.
예시 2 : 2001-11-20 과소동 잡기장
특별히 부족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삶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기억.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내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지했고, 그들도 그랬다.
누구도 악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학업 스트레스로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었고,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호받던 딸들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서면 아는 얼굴 한 둘은 우습게 마주치던 작은 도시에 살았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런 종류의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툴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겨우 나흘. 하필이면 왜 그 때 그 학교가 시험을 쳤고. 하필이면 왜. 어쩌고 저쩌고. 시작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나흘 동안 열 마디도 채 하지 않았는데. 겨우 교실을 헤메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니 나는 이미 혼자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외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만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믿고 행동했다. 쉬는 시간 10분을 처리할 수 없어 늘 쩔쩔맸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렸다. 꼭 가는 길에 여기저기 어깨를 부딪히거나, 왜 우리 학교에 온거야-따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더라도.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일시에 몰려드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눈동자들은 어떤 상상보다 가혹했다. 맨 앞 줄에 앉아, 등 뒤에서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흘려버리지도 뒤돌아보지도 못해 앞만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호칭은 차라리 나았다. 이름 대신 점수로 불러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수군거림의 주제가 나라는 것조차 몰랐다. 재미있는 가십이었겠지. 해결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혼자였다. 어쩌다 보니 먼저 옮겨와 묵었던 친척집.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를 하고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촌동생과 잠시 놀아주고 나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았다.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아침이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아. 원망할 대상이 없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각은 성실한 학생이었고 다정한 친구였다. 그들끼리는. 그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은 단점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몇몇의 기호와 몇몇의 불만과 다수의 무관심이 모이면.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물게 대강 얼굴만 아는 클래스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쟤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은 동정일까 호기심일까 비웃음일까 친절일까 무관심에 따른 반사일까. 사소한 것에도 안심하고 더 사소한 것에서 상처받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 울며 되뇌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강해지자. 내가 받았던 것에 감사하자. 나누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말자. 기회를 주자.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억하자. 그래서 여기서 배우자. 절대 이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 때의 서너 달은 무척이나 느리게 지나갔다. 딱 이맘 때였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소녀들은 쉽게 가했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이란 그런 법이다.
나도 많이 잊었다. 변했다. 이 변화가 적응을 위한 발버둥의 결과인지 그 부대낌 속에서 무엇인가 배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참이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처럼 어색하게 건네는 사과에 '글쎄,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그 날 밤 내가 그 짧은 사과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들추어진 상처들이 아파서 또 한 번 울었음을 그 애는 알까.
하지만 아직도 가끔 견딜 수 없게 아픈 때가 있다. 오늘처럼. 숙제 하기 전에 눈이나 붙여 볼까 하고 누웠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기억들에 결국은 베게를 부둥켜 안고 울먹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난 정말 많이 배웠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내가 많이 받은 만큼 나누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잊어버리지 않는 게 더 좋은거야. 그렇게 고생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얼마나 멍청해.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야.
......
더 늦기 전에 숙제 해야겠다.
예시 3 : 2001-10-16 과소동 잡기장
수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별로......(긁적긁적)
갈 곳이 없으니, 뭐, 결국 도서관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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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업은 라틴어. 라틴어 선생님은 앉은 순서대로 독해를 시키십니다.(이거 못 하면 진짜 무안합니다.-.-) 예습을 안 했던 지난 시간, 저는 확실히 아는 문제가 걸리거나, 선생님이 고전학 샛길로 새실 경우 아예 문제를 안 풀 수도 있는 자리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찾아 앉았더랬지요.
교수님 등장.
Prof. (휘익 둘러보심)
Jay (찌그러져 있음)
Prof. (씨익 웃으며) 오늘은 반대쪽부터 해볼까요.
Jay (...)
오늘은 꼭 예습을 할 겁니다. --;
저는 친구들 아이디 빌려쓰느라, 정작 제 아뒤로 쓴 글은 별로 없거든요.. ㅠ.ㅠ 옛날에는 정말 글 많이 썼었는데 지금보면 X팔릴 것 같습니다. :-)
답글삭제냐하항님/ 네, 다시 보면 정말 '게시판에 이런 걸 썼단 말이야?' 싶습니다. (...) 그래도 친구 아이디로 써서 못 보신다니 아쉬우시겠어요.
답글삭제... 귀여운 글들이 없는 본인은 아주 민망. 정말 지울수도 없고.. 저걸 어떻게 처리하지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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