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1일 월요일

2004년 3월 1일 월요일

명진이 고모 결혼식에 갔다. 남편 될 사람이 전투기 조종사라 공군회관에서 했다. 군인 결혼식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역시나 퇴장할 때 이벤트가 재미있었다. 고모는 식전까진 밝은 표정이었는데 막상 식이 시작하자 많이 울었다. 작은할아버지도 섭섭해 하시는 게 눈에 보였고. 짠했다.
주례는 신랑네 장군님이 하셨다. 들으며 주례 없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또 했다. 똑같이 열심히 살아온 어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하는데, 어째서 신랑의 경력은 자세히 소개하면서 신부에 대해서는 성격이 명랑하단 말 따위나 하고 넘어가는 거야? 결혼식 주례사가 무슨 대학 나와서 어디 근무하는 재원 어쩌고 하며 시작하는 것부터가 우습기도 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한다면 똑같이 하는 편이 낫잖아. 신랑이 공군사관학교 나와서 몇 사단에서 나라를 지키느라 애쓰는 것만 중요하고 우리 고모가 그렇게 오랫동안 공부하여 대학원까지 졸업한 성실하고 유능한 연구원이라는 건 아무 일도 아냐? 그것도 '어차피 그렇게 하는' 관습의 일부분인가? 어떻게 전투기 조종사는 공군의 꽃이니 내조 잘하란 소리나 하고 끝내냐. (애를 셋은 낳아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하던 요 앞 고모 결혼식 주례 목사님보다는 나았지만.)
내 고모라 아깝고 귀한 마음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상하는 걸까.

집에 돌아와 한숨 잔 후 01학번모임에 갔다. 녹두 민들레영토에 일곱 명이 모였다. 고시생 다섯 명, 예비 대학원생 한 명, 인턴 한 명. 고시생이 다섯인데다 시험을 친 직후라 무슨 말을 해도 자꾸 시험 얘기로 이어졌다. 보미와 승훈이에게 미안하더라. 보미는 이번 학기로 졸업이다. 졸업이래, 졸업. 우하하. -_-; 군에 가는 승훈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휴학계를 내지 않았다고 해서 좀 놀랐다. 일 년은 너무 기니까 학교애서 관련 수업 들으면서 공부해 보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진심어린 말도 들었다. 학교에 가기 귀찮아서 휴학한다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승훈이는 베인스앤컴퍼니에서 아침 여덟 시부터 새벽 한 시까지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몸이야 힘들겠지만-그새 또 살이 빠졌더라- 좋은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우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 동기들 만난 얘기를 하다 어머니와 싸웠다. 말을 함부로 한 내 잘못이 크지만, 사 년이나 지난 전공 선택에 대해 '네 낭만적 이상주의에 속았다'는 말을 듣자 그만 발끈해버려서......글쎄, 어머니께서 뭐라고 하시든, 나는 만약-쓸데없는 가정이지만- 지금 고3때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할 생각이니까. 물론 다시 태어난다면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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