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 11일 수요일

2002년 12월 11일 수요일 : 똑닥똑닥

나는 소리에 늘상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대체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각종 소음들-못 치는 소리, 납땜 소리, 손톱으로 칠판 긁는 소리- 도 싫어하지만, 내가 도저히 참지 못하는 소음은 다름아닌 시계소리이다. 벽시계, 자명종, 손목시계, 무엇이든 마찬가지이다. 아날로그 시계에서 나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삐긋대는 소리를 들으면 온 신경이 곤두서면서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다. 시계소리가 귀에 들리는 순간, '똑딱똑딱 노땡큐~'를 외치며 어떻게든 시계의 가청 범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이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어린 시절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방에 걸린 시계를 견뎌내지 못했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서 까치발을 하고 시계를 벽에서 떼어내어 방 밖에 놓아두기 도 하고, 탁자나 책상 위에 놓인 자명종에서 나는 똑딱소리에 한 손을 뻗어 건전지를 빼 버리기도 했다. 다른 사람 방에 누워 있다가도 그렇게 해 버린 일이 있다. 동생 책상에서 공부하겠다고 갔다가 시계 소리가 시끄러워서 그냥 내 책상을 청소하고 쓴 것은 바로 그제의 일이다. 내 방에 있는 벽시계는 두꺼운 유리로 가로막힌 뒷베란다 벽에 걸려 있다.(그렇지 않다면 시계를 아예 걸지 않았으리라.) 나는 유리창 너머로만 시간을 본다. 자명종은 휴대폰과 PDA의 알람 기능이 대신한다.

윗 줄까지 쓰고 잠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고물 컴퓨터가 조용해지자 갑자기 시계 소리가 들린다. 주변을 살피니 컴퓨터 뒤에 웬 탁상 시계가 놓여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 소리가 크지 않은 걸까? 고막을 쩌렁쩌렁 울리고 뇌를 흔들지 않는 걸까? 윗집에서 쿵쿵대는 소리보다도, 어설픈 아랫집 아이의 피아노 소리보다도 나는 시계소리가 더 싫다. 시계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할 수 없다면 시계 소리가 묻힐 정도로 시끄러운 편이 차라리 낫다.

갑작스레 이런 괴팍한 신경증 이야기를 쓰는 것은 오늘이 과외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학생의 방에는 무슨 내과에서 준 평범한 벽시계가 걸려 있는데, 대단히 시끄럽다. 아무리 보아도 그야말로 보통 시계건만 조용한 방에서 조용하게 수업을 하기 때문인지 내게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들린다. 듣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그 쿵쾅쿵쾅 하는 소리에 신경이 바짝 곤두 서 있다. 그렇다고 저 시계 좀 치우자거나, 똑딱거리는 게 시끄럽지 않니, 라고 하려니 아무리 보아도 오버다. 시계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인 것이다. 내 방에서야 어떻게든 조용히 살 수 있지만 남의 집에 가서 시계를 뜯어내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온 세상의 시계가 쿵쾅거리는-똑딱거리는- 모습이 연상되어 아찔하다.

어쨌든 오늘도 나는 간다. 시계와 싸우러. 전투의 무기로 부정사와 동명사 프린트를 준비한다. 열심히 말하는 동안엔 내과 시계를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니까.

.....그나저나 컴퓨터 뒤에 있던 이 시계는 왜 건전지가 안 빠진담. 그냥 저 쪽 방 안에 넣어두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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