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9일 금요일

2007년 3월 9일 금요일 : 광고와 식욕과 타이밍

금요일이라서인지 한산하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오랜만에 들어온 메신저에 사람이 없다. 노트북에서 쓰던 글을 USB에 옮겨 왔으나, 이 곳 컴퓨터가 내 USB 메모리 카드를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YTN 오늘의 주요뉴스를 보면서 식사를 한다. '오늘의 주요뉴스'란 본방송 중에 화면 하단에 한 줄로 흘러가는 뉴스를 말한다. 국내 정치 소식, 국내 사회 소식, 국외 소식, 스포츠 소식, 날씨 예보가 순서대로 나온다. 기사거리 하나가 열 다섯 자 정도이다. 기사 제목만 잘라 넣은 형식이다 보니 가끔은 내용이나 주어를 짐작할 수 없는 소식이 섞여 있을 때도 있다. 한 끼 먹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서너 번 정도 볼 수 있지만, 고개 드는 타이밍을 놓치면 식사 내내 국내 사회 소식만 보거나 해외 스포츠 소식만 거듭 보기도 한다. 점심 때와 저녁 때의 보도 내용은 거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제는 기상이변에 대한 국외 소식이 나왔다. 그 짧은 토막기사는 '중국의 티베트'로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식사를 하는 동안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시간을 잘못 맞추면 광고를 볼 때도 있다. 케이블(혹은 유선) 방송의 광고는 제법 길기 때문에, 한 끼 먹는 내내 광고만 보는 일도 생긴다. 저녁 식사 시간에는 지역 산낙지 전문점 광고가 나온다. 여자 성우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앗, 뜨거, 앗 뜨거!' 하고 말하고, 눈코입이 달린 - 코는 빨판이다 - 낙지 일러스트가 전면에 등장한다. 식욕 저해에 그만이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러 가기란 쉽지 않지만, 나는 최소한 저 산낙지 전문점 광고만큼은 피하기 위해 제법 애를 쓰고 있다. 그 덕분에 요즈음 가장 자주 본 광고는 친구가 엄청나게 많은 삼성금융 고객 모모모씨의 결혼식 사진 촬영 장면과 세상을 바꾸는 에스케이텔레콤의 모모모 대학생 자원봉사자의 도시락 배달 장면이다. 삼성금융 고객 모모모씨가 나오는 광고를 볼 때 마다, 나는 신부가 조금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모모 자원봉사자가 나오는 광고를 볼 때 마다, 나는 그것이 연출된 장면임을 잘 알면서도, 화면 안에 들어가 그 대학생이 휘두르는 도시락 가방을 두 손으로 바로 받쳐 주고 싶어진다. 매번 그 생각을 했더니, 이제 그 휘둘리는 도시락 안에서 섞여 버렸을 반찬들을 연상하게 된다. 축축한 콩나물 무침과 (기름기가 남은) 고추장 제육볶음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면 어떡하지, 하고 생각하다 보면 또 식욕이 없어진다.

가족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으나, 저 두 광고를 제대로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인 두 사람에게도 말을 꺼내 봤으나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가 끼니 때마다 텔레비전을 본다고 해도 합해서 한 시간이 채 안 될 터인데, 말을 하다 보니 내가 텔레비전을 가장 오래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지도 모른다. 어쨌든 왠지 식욕을 떨어뜨리는 텔레비전 광고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고개 들기, 수저 들기의 타이밍 하나 맞추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 1개:

  1. 아아, 저는 그 광고를 보며 신부가 웃고 있는 게 참 용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라면 어쩐지 한번쯤은 쓴웃음을 지었을 것 같아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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