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28일 수요일

2007년 3월 28일 수요일 : 우산과 시야와 타이밍

날이 궂다. 낮에는 잠깐이니 괜찮겠지 하고 빈 손으로 나섰다가 때맞춰 떨어진 우박을 제대로 맞았다. 저녁에는 비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산을 들고 나갔다. 우산을 든 사람과 들지 않은 사람이 적당히 섞여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을 들어 머리 위를 슥 쓸어 본다. 물기가 없다.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우산을 접을 때를 알기란 뜻밖에 어렵다. 비가 오다 말다 하거나, 부슬비가 내리다 서서히 그친 경우에는 더 그렇다. 나처럼 줄곧 실내에 있다 실외로 나온 사람들은 실수를 잘 하지 않지만, 비가 올 때 실내에 들어갔다가 금세 나온 사람들은 무심코 우산을 펴는 경우가 많다. 좁은 골목에서는 앞서 가는 두세 명이 비가 그친 줄 모르고 걷는 뒤로, 다른 사람들까지 줄지어 우산을 든 채 가는 모습도 보인다.

우산을 제때 접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특히 나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있는지 아닌지,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가 빗방울로 흔들리는지, 우산에 물방울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지,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얼마나 축축한지에 신경을 조금만 쓰면, 굳이 우산 밖으로 손을 뻗지 않고도 비가 그치는 순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산을 접을 때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고, 다른 많은 일들처럼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보다 더 어렵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우산을 접고 한 자리에 잠시 서 있어야만 비가 그쳤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반면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득달같이 우산을 펴는 일을 어려워 한 적은 없다. 나는 비와 장마와 날씨에 관한 많은 우리말 단어를 수첩에 써 두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외웠다. 그럼에도 같아지지 않은 내 우산을 펴는 속도와 우산을 접는 속도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부끄러워진다.

댓글 1개:

  1. 원래 만사는 끝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지.

    '적절한' 종료 타이밍을 아는 사람이 '고수'인 법.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