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 현민의 병역거부선언 갈라쇼


오늘은 동기 현민이 홍대 앞 [숲의 큐브릭]에서 병역거부선언 갈라쇼를 하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중앙도서관 전시에 오셔서 수업 후에 어머니와 도서관에서 만나 잠깐 수다를 떨고, 도서관에서 교정지를 보다가 시간에 맞추어 홍대 앞으로 갔다.

동기들 중에는 신행, 찬수, 도호, 은영이 왔고 02학번 이하 한길반 후배들도 왔다. 사람이 많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지하 1층인 행사장이 꽉 찼다. 로스쿨에서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일했던 현지 언니가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일부러 찾아 와 주어서 (내 행사는 아니지만) 무척 고마웠다. 이런 행사는 일단 머릿수가 좀 모여야 앞으로 있을 일들을 웃으면서 준비할 기(氣)가 모이는 법이라.

현민이 쓴 병역거부 소견서는 A4 아홉 장 반에 달했다. 현민은 그 글을 끝까지 읽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현민은 운동의 성역화를 경계했지만, 대체복무제도라는 해답이 명백히 존재하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자신의 삶을 걸고 뛰어드는 용기를 나는 역시 존경한다. 우리는 단지 같은 해에 같은 학과에 입학했을 뿐, 나는 현민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적도 현민의 고민을 눈치챈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자랑스럽다고 여기는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현민의 변 중에 특히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권력의 피해자로 자신을 인식하는 데 힘이 들었다"는 언급이었다.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은 나는, 대개의 대학생과 지식인이 그러하듯이, 소위 민중 내지 사회적 약자의 삶과 자신의 삶을 쉽게 동일시하거나 투사하면서 필요에 따라 적절히 거리를 조절할 수 있는 권력과 힘이 있었다. 물론 여기에도 나름의 진정성과 공감의 순간이 아주 없진 않았다. 하지만 병역거부는 내게 위와 같은 행위와는 별개로 실제 그러한 삶으로 진입하는 일이 어떤 체험인지를 생생히 알게끔 했다."

현민은 진정성과 공감에 대해 읽다 말고 고개를 들고, "그게 다 사기였다, 이건 아니란 거죠. 하지만." 하고 말을 붙였다. 저항자일 수는 있지만 피해자는 아닌 삶을 살아온 '우리'의 등 뒤에 늘 남아 있는 물러설 수 있는 공간. 공감할 수 있는 동시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이 갖는 진정성과 그 한계. 나의 진심을 믿으면서도, 그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에 덤비면서도 나의 한계가 위선은 아닌지 자문해야 하는 순간들. 다가갔다고 생각했다가 '나'와 '대상'을 가르는 심연을 거듭 깨달을 때의 자괴감. 그 바로 몇 시간 전에 어머니는 내가 전시에 붙인 쪽글을 보고 "이 글 어쩐지 부르주아 적인 데가 있어. 네가 그런 면을 일부러 보이고 싶어한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함께 총을 내리자는 노래를 부르고, 동기끼리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석사 논문이 든 노트북을 도난당한 신행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근처에 산다는 여동생을 보러 갔다. 아직 신혼인 찬수는 여기에 정장을 입은 사람이 나 하나밖에 없다며 씁쓸히 웃었다. 은영은 "나 이러다가 (감옥가기 싫어서) 내일 입대할지도 몰라"라고 엄살을 부리는 현민에게 진지한 얼굴로 "괜찮아. 그래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라고 말했다. 나오는 길에는 '현민의 병역거부선언'이라고 쓰인 수건을 받았다.

나는 귀가길에 한양문고에 들러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신간을 샀다. 거의 다 읽었을 때쯤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댓글 2개:

  1. 신행이는 여동생이 없어요 ^^



    그리고 왜 동기에 대한 자세한 멘션에 내 이야기만 쏙 빼놓은거야! 추가해주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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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정우성 - 2010/02/19 07:02
    헐 나 대체 왜 친여동생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내가 자매를 둬서 그런가...~_~ 지적 고마워. 남동생인가? 낼 신행한테 누구 보러 갔었는지 물어봐야겠다! 내일(토)의 현민송별회+노들야학일일호프 가? 난 골골골 하고 있지만 가능하면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글구 너만 없는 건.....나랑 안 놀아줘서 ?!?! ㅋㅋㅋㅋ 너 멋있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커헉) 그렇게 쓰면 글에 너무 생뚱맞잖아. ㅋㅋㅋ 정우성님도 무지 반가워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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