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11일 금요일

2005년 3월 11일 금요일 : 천년의 수인

출처: aroong.com

전션과 아룽구지 소극장에서 연극 '천년의 수인'을 보았다. 극작가 오태석의 1998년 작으로, 김구 암살범 안두희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쓴 글이라 한다. 안두희와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광주 진압군 병사가 갇혀 있는 정신병원을 무대로 했다.

감정적인 부담 때문에 연극을 자주 보지 않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갈까말까 고민했다. 다행히 가슴을 후벼파기보다는 반 발짝 떨어진 곳에서 칼을 들이미는 느낌의 극이라 견딜 만 했지만, 소재 자체가 주는 중압감은 아무래도 가시지 않는다.

'모른다'는 안이한 변명을 들이대며 무책임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대저 '몰라서 그랬다'는 말은 당한 쪽에서 '몰라서 그랬다니 이해하겠다'고 할 때에나 쓸 표현이라 생각한다.) 멀쩡히 살아남아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하며 아무 죄책감 없이 가해자가 되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몇 달 전, 나는 흰 천이 휘날리는 5.18자유공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린 학생의 치기어린 낭만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우산을 접고 묵념을 했었다. 이렇게 몇 마디 말과 덧없는 몸짓으로 책임을 다한 양 스스로를 위안하기란, 아니 기만하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살아 있는 한, 단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면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에 대해서도, 내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거듭 묻기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철창 밖에서 살아있는 내 자신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