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roong.com
감정적인 부담 때문에 연극을 자주 보지 않는 편이다. 이번에도 마지막까지 갈까말까 고민했다. 다행히 가슴을 후벼파기보다는 반 발짝 떨어진 곳에서 칼을 들이미는 느낌의 극이라 견딜 만 했지만, 소재 자체가 주는 중압감은 아무래도 가시지 않는다.
'모른다'는 안이한 변명을 들이대며 무책임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대저 '몰라서 그랬다'는 말은 당한 쪽에서 '몰라서 그랬다니 이해하겠다'고 할 때에나 쓸 표현이라 생각한다.) 멀쩡히 살아남아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하며 아무 죄책감 없이 가해자가 되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몇 달 전, 나는 흰 천이 휘날리는 5.18자유공원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린 학생의 치기어린 낭만임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면서 우산을 접고 묵념을 했었다. 이렇게 몇 마디 말과 덧없는 몸짓으로 책임을 다한 양 스스로를 위안하기란, 아니 기만하기란 또 얼마나 쉬운가. 살아 있는 한, 단지 그 자리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면할 수 없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에 대해서도, 내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거듭 묻기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철창 밖에서 살아있는 내 자신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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