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13일 토요일

2004년 11월 13일 토요일 : 천국의 웃음 -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 '내가 죽인 남자'

전션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른스트 루비치의 1932년 반전영화, '내가 죽인 남자(The Man I Killed)'를 보았다.

1차 세계대전 중 전쟁터에서 독일군 발터를 죽였던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현직 폐인) 프랑스인 폴은 종전 이후에도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보아 외우고 있는 - 참호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발터는 마지막 편지를 쓰던 중이었다 - 발터의 집 주소로 직접 찾아가 사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스물 두 살 외아들/애인을 잃은 슬픔에 잠겨 간신히 살아가던 발터의 부모와 약혼녀 엘자는 '아드님 때문에 왔다'는 폴을 발터의 친구로 착각하여 마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양 반갑게 맞아들이고, 폴은 차마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발터의 가족과 어울리며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발터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애써 분위기를 돋우려 노력하는 엘자, 내키지 않는 수저를 드는 부모, 카메라가 배경처럼 잡은 빈 의자의 뒷모습.
유약하고 섬세한 젊은이를 연기한 필립스 홈즈도 돋보였다. 이 사람이 나온 다른 영화를 찾아 볼까 싶어 집에 와서 IMDb를 검색해 보았는데, 젊은 나이에 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루비치의 영화는 참 보기 편하구나.' 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굉장히 부담스럽고 비극적인 소재를 불필요한 무게감 없이 진지하게 다룬다. 단순히 나와 상성이 맞는 감독인 걸까?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싶은데 코드 3 디비디가 없다시피 하다. 코드 1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국내 출반을 기대해 볼까나.
일단 아쉬운 대로, 참고 1(Ernst Lubitsch's American Comedy), 참고 2(Ernst Lubitsch: Laughter in Paradise)를 기억해 두자.

영화를 본 후에는 전션과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늦게야 헤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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