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 개강 전야

저녁 6시가 넘어서 내일 헌법 수업 예습 해 오라고 문자가 왔다. 뽑아보니 111페이지다.

 

아직 개강을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학교에 가기 싫어 견딜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공격적인 문답 수업을 견딜 수가 없다. 철학과에서처럼 생각을 첨예하게 다듬거나 자유롭게 펼치기 위한 문답도 아니다. 이미 답이 존재하는 질문에 대해 미리 공부해 가서 무작위로 걸릴 경우 답해야 하는 수업 진행이 '너무' 싫다. 무지한 입장이라 나보다 훨씬 더 잘 아는 스승에게서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가르침을 받고 싶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나를 방치해 줬으면 좋겠다.

 

이 학교는 휴학도 수강신청 철회도 수업/교수 선택권도 허하지 않는다. 스타일이 전혀 안 맞는 교수님을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한 과목 정도 줄여서 천천히 갈 수 있게만 해 주어도 좋겠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입학했고, 이번만은 중도에 멈추어 서서 결국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절박해서 아직은 다니고 있지만, 학기당 2회의 질문회피권이 어쩌고 하고 쓰인 강의계획서만 읽어도 속이 메슥거린다.

 

로스쿨 제도의 불확실성에 대해 말이 많지만, 나는 불확실한 상황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지리한 기초부터 쌓아나가야 한다는 것도 이해한다. 거듭 말하지만 법학 공부가 싫은 것도 아니다. 철학을 할 때와 같은 솜털이 삐죽 서는 쾌감이나 사회복지학과 수업을 들을 때와 같은 각성과 충만감은 없지만, 전문대학원임에도 새로운 앎 자체가 주는 즐거움은 그 자리에 제대로 있다. 내가 아직 모를 뿐이지, 좀 더 많이 이해하면 언젠가는 무언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도 있다. 이 과정을 버티고 나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어쨌든 싫은 소리 말고 2년 반을 더 눌러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리 저리 돌려 생각해 보아도, 지난 학기 같은 문답 수업은 못 참겠다. 다른 어떤 숙제도 시험도 괜찮은데 여기의 문답 수업만은 참을 수가 없다. 사회복지학과에도 공격적으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선생님은 계셨고(sk...) 철학과에서 내가 들은 많은 강의들은 문답식 또는 학생발표식이었다. 그래도 다 보람이 있었는데, 지난 1학기를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책과 강의로 배운 내용은 괜찮았지만 문답 수업은 악몽 같을 뿐이다. 교수님이 나에게 질문했을 때에는 정말 싫었다는 기억밖에 없다. 질문 내용과 답은 모르겠다.  교수님이 다른 학생에게 질문했던 내용도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강의 부분밖에 기억에 없다.

 

2학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 현기증이 난다.

댓글 4개:

  1. 내가 소송을 당하거나, 진행하거나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문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아마 그런 상황에 대비한 교육이 아닐까. "나는 네 인생을 정말로 심각하게 망가뜨리겠다. 나는 너를 인간적으로 정말 저주한다!"라는 악의 가득한 질문 및 답변을 당했을 때 패닉은 (비록 그 문답이 서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답글삭제
  2. (아이디를 클릭하면 유트브 동영상으로 연결됩니다)



    TV 버전에서 킹스필드 교수가 주인공에게 '수의'를 입히는 유명한 장면. (그러면 당사자는 학기 내내 문답 수업에서 왕따당함;;)

    답글삭제
  3. The Paper Chase (TV Series) Opening Theme



    First years are hard years.

    Much more than you know.

    With good friends to love us,

    we'll fill every row.



    Stay open to all things,

    Unknown and new,

    Then one day, we'll all say

    "Hey look, we've come through

    The first years."



    :D

    답글삭제
  4.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