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11일 수요일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 2009 세계 천문의 해 소백산천문대 작가 워크샵

오전 9시 양재역에서 집합했다. 이번 소백산천문대 작가 워크샵에는 작가, 과학자(천문학자 및 천문연구원 관련전공자 분들), 기자가 참여한다. 오늘 서울에서 내려가는 사람들은 박상준 님, 연세천문대 이명현 님, 천문연구원 문홍규 님,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님과 김주성 기자님, 과학동아 안형준 기자님, 윤이형 님, 김보영 님, 배명훈 님, 김창규 님, 박성환 님, 유광수 님, Mr. Gord Sellar, 나 이렇게 13명이다.





대절 버스를 타고 내려가다 11시 50분에 박상준 님이 동굴 탐사 때 들르곤 하신다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 20분에 제천휴게소애 도착했다. 여기서 천문대까지는 눈길이라 천문대 차를 나누어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차가 한 대라 세 팀으로 나누었다. 나는 이명현 님, 김창규 님과 함께 마지막 팀이었다.



천문대를 올라가는 좁은 길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새하얗다. 서리가 내려앉은 것이라 한다. 스티븐 킹 소설에 나올 법한 풍경이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백산 천문대에 도착해 보니 3시 직전이다. 따로 오신 천문연구원 서윤경 님(우주측지부)과 소백산 천문대 직원 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일단 짐을 푼 다음 3시 15분에 1층 로비에 모여 천문대 주위를 둘러 보았다. 우선 연희봉을 올라갔는데, 공기의 층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에는 안개에 가린 능선인 줄 알았으나 단지 공기가 나누어진 자리로, 맑은 날 오전에는 아래 층이 내려앉으면서 주위 산이 보인다고 한다.

1978년에 문을 열고 첫 별(firstlight)을 보았던 소백산천문대는 관상감이 국권침탈기에 없어진 이후 처음으로 세워진 서양식 근대천문학 연구시설이다. 90년대에 건물 자리를 한 번 옮긴 적이 있는데, 예전에 쓰던 건물이 폐허처럼 아직 서 있다. 다시 쓰기는 어렵고 그 자리를 헐어 연구교육을 위한 건물을 새로 세울 계획이 있다고 한다. 굳게 잠긴 구관 건물에서는 석순이 자라 있었다. 







소백산천문대에는 지금 24인치(61cm) 광학망원경이 한 대 있는데, 이제는 현대 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아날로그 타입의 소형 반사각 망원경이다. 작고 관리비가 적게 드는 (해외 일반적인 망원경은 4~6m 급으로 하루에 관리비가 1억원 정도이다) 이 망원경울 이용해서 1년에 5~6편의 논문을 해외학술지에 발표하고 있다.

대형 망원경과의 차이는, 대형망원경은 관리비용이 높기 때문에 단기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반면 소백산 천문대에서는 장기 관측시간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천문학 연구에서 천문대 관측은 국내 천문대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무료이다. 따라서 천문대에서는 논문을 쓸 만한 연구자에게 관측시간을 주는 일이 중요하다.

소백산천문대는 특히 변광성 연구로 유명하다. 주기가 1일인 변광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6개월은 꾸준히 관찰해야 한다. 소백산천문대는 비용이 저렴한 외에도 아리조나 레몬산 천문대와 연게하여 24시간 연속관측이 가능한 위치상의 이점이 있다. 변광성의 별빛이 변하는 이유에 대한 연구는 우주의 구조와 진화 등을 규명하는 바탕이 된다. 다만 소백산천문대는 지리적으로 위치가 좋지 않고(대기흐름 관련) 시설이 노후한데다 현재 남반구에 건설중인 신망원경이 완성되면 국제연구에서 입지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연구연수 프로그램이나 전시실 마련 등을 통해 교육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고민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댓글 2개:

  1. 소백산천문대에서 작가 워크샵이라니, 멋지네요.

    답글삭제
  2. @세라비 - 2009/02/11 00:34
    네, 참 귀한 기회를 얻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