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5일 수요일

2006년 1월 25일 수요일 : 잡기

1. 벌써 열흘 쯤 전 이야기인데, 이창호 9단이 삼성화재배에서 졌다. 국제기전에서 십 년 만에 패한 것이다. 아침 밥상에서 신문을 읽다가 이 뉴스를 발견한 내가 경악하여 신음을 흘렸다.

"허어억. 이창호가 졌어요."
어머니: ('뭐 어쩌라고' 표정으로 나를 응시)
"이창호 9단이 졌다고요."
어머니: 사람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지.
"지금까지 국제기전에선 안 졌는데!" (<-과장입니다.)
어머니: 그게 더 신기하네.

물론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줄이야 알지만, 90년대 초중반에 바둑을 두었던 사람들에게 이창호 9단은 80년대의 조치훈 9단과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을 모두 더해서 반으로 나눈 것 만큼의 의미가 있는 기사라(정리하자면 데미갓쯤 된달까나), 대단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2. 십단전에서는 이겼다.

3. 2번 뉴스를 본 직후에 식당에서 실수로 [갓 배식한] 식판을 엎었다.

4. 내가 마지막 장까지 꼼꼼히 읽었던 책 중 가장 지겨웠던 작품은 단연 염상섭의 장편소설 '삼대'다. 이 책에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주인공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과장이지만)는 것이었다. 주인공 꼴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답답해 몸이 아플 지경이었다.

5. 어제 밤, 머리를 그 때 감을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감을까로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자꾸 밖에서 왔다갔다 하며 중얼거리자 아버지께서 나오셨다.
아버지: 뭐라고 하[고있]냐?
"머리 지금 감을지 내일 아침에 감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아버지: 아......소연이 너는 만-날 그거 고민하는 것 같더라.

6. 아우님이 친구에게 부탁해 차를 몇 가지 구해 왔다. 그 덕분에 집에 있는 잎차가 대충 열 가지나 된다.

어머니: 와, 차 많네. 찻집 해도 되겠다.
나: 네. 이 정도면 메뉴 되겠네요. (마음속으로 메뉴판 완성)
아우님: 그럼 엄마아빠네 밭에서 고구마 캐서 파이도 만들어서 팔면 되겠다. (밭-_-과 고구마 등장)
그리고 유기농이라고 파는 거야. 한 조각에 오천원 씩. (메뉴판 개선)
나: 비싸서 남으면 어떡해. (손익계산)
아우님, 어머니: 저녁에 우리끼리 먹으면 되지.(망상일과 완성)

댓글 9개:

  1. 유기농 주제에 5천원이면 의심해요. 그러니까 통크게 8천원! 그리고, 가격을 부각하기 위해 일반 고구마케익을 3천원에 팔고.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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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라빠/ 고구마 밭이 고구마 농장이 되고 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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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 삼대.. 정말 지겨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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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그래서 결국 식사는 어떻게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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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공부를 하려면 저녁을 먹긴 해야겠는데 잔반도 아닌 갓 한 밥을 쏟고 나니 미안해서, 엎지 않았던 순두부국에다 밥을 반쯤 말아 먹었다오. 그런데 식욕이 뚜욱 떨어져서, 밥이 목에 걸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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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아이구 저런-_ㅠ 하긴 식사가 망가지면 일단 기분이 상하지요... 모쪼록 체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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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저도 이창호 좋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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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이창호 9단 이야기는 백만년만에 들어보는 것 같군요.

    예전에는 티비에서 바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21세기?들어서는 그런 이야기가 줄어든 것 같더군요. 물론 제가 바다 건너 있기는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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