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25일 토요일

2006년 2월 25일 토요일 : 느리게 변하는 나이

겨울 초입부터 가벼운 무력감에 시달려 왔다.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어요 모드 상시 온 상태이던 내가 '이렇게 살다가 죽겠지......그럼 육십 년 뒤든 내일이든 상관 없잖아.' 따위 생각까지 했으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별일이 나지도 않았는데, 멀쩡하게 일어나서 종일 공부 하고, 밤에 원고 하고, 심지어 기획서까지 쓴 다음 잠자리에 들어 문을 잠그고 훌쩍이기도 했다. 일시적인 우울함을 넘어서는 것일지 모르니 차라리 빨리 상담소를 찾아가 볼까 생각하기 시작할 즈음, 내가 조금 이상해 진 것을 눈치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조급해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앞으로도 네겐 중요한 변화가 많이 찾아오겠지. 지금까지처럼 보이는 변화가 아닌 것 뿐이야. 이제 느리게 변하는 나이가 된 거야."

지금까지 나는 항상 특별했고 일상은 늘 새로웠다. 환경은 지루할 새 없이 바뀌었고, 성장 과정 하나 하나는 눈에 보이는 변화로 채워져 있었다. 내가 최근 느끼던 따분함은, 이제 '보이는 변화'가 더 이상 자주 찾아오지 않는 시기에 들어서면서 느낀, 말하자면 속도 조절 과정에 따른 위화감이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이상을 가진 어린이는 반짝반짝 빛을 낸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좁은 창 사이로 밖을 내다보고 있는 상태'다. 창 안에 서 있는 아이는 좁다랗게 보이는 분명한 이상의 세계를 눈으로 좇을 수 있다. 이미 창 밖에 있는 어른들의 눈에, 좁은 창 사이로 환한 빛을 받고 선 아이는 특별해 보인다. 나이듦은 그 창을 여는 것과 같다. 빛을 받고 있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님을, 세상은 창 사이로 보이던 길쭉하고 가느다란 풍경이 아님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은 평범해진다.

얼마 전부터 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온 유년기의 고민과 학창 시절의 상처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내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 누구에게도 고민을 터놓지 못할 때의 막막함, 그리고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 주지 않을 때의 외로움, 순정 만화에 흔히 나오는 장면처럼, 화장실 칸 안에서, 밖에서 나에 대해 말하는 내가 모르는 아이들이 어서 교실에 들어가 주길 바라고 섰을 때의 아찔함,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나는 남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되겠어, 지금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기억해서, 죽을 각오로 살아서, 나중에 나 같은 사람을 만나면 손을 내밀어 주겠어 - 하고 되뇌고 또 되뇌었던 많은 밤들에 대해 울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말할 수 있다. 상처가 서서히 아물고 줄곧 가려웠던 딱지가 떨어져 기억을 부르는 희미한 흉터만 남았고, 그 순간 '이제 끝났다. 이제 정말로 괜찮다'는 느낌이 너무나 분명하게 찾아왔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 나만 몰래 빛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에 따르는 숨길 수 없는 아쉬움과, 보이지 않는 곳에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갖고 있는 비범함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의 짜릿함.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한 것이 이상을 상실해서가 아니라 창을 더 넓게 열고 역시 빛을 받고 있는 세상의 나머지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이해.

일상을 놀라게 할 때의 통쾌함은 앞으로 점점 더 느끼기 어려우리라. 이 평범한 현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며, 스물셋, 나는 느리게 변하는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

댓글 5개:

  1. 어머님의 표현이 정말 훌륭하십니다!

    저는 '책을 읽는데 그 내용이 머리속에 쑤욱 흡수되지 않는다'는 경험을 기점으로 그런 위화감을 느꼈더랬지요. 21살때였답니다. 그 뒤로는 매일매일 스스로 새로운 일상, 변화, 성장 같은걸 만들어내느라 조금 힘이 들었던것도 같네요...이런걸 어른의 삶의 무게라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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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으음. 저만 방향이 반대인 걸까요, 전 오히려 22세 무렵부터 세상이 밝고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거든요. 매일매일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저나 정말이지 만화에나 나올 듯한 멋진 어머님이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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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서늘님/ 10000% 공감.

    as님/ 방향보다는 역시 속도감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언젠가는 '스물세 살 즈음부터 삶의 진짜배기 재미를 알게 되었지.'라고 할 지도 모르죠! ;)



    삶의 선배로서 따를 수 있는 부모님이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행운이라고 늘 생각한답니다. 혈연이든 아니든,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렵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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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childhood's end 라는 제목이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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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as님/저는 서른살때부터인 것 같아요.^^ (.... 이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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