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11일 목요일

2007년 1월 11일 목요일

거울 편집장님과 홍대 앞 그릭조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 머리가 짧을 때를 기억하시는 걸 보니 몇 년 만에 뵌 모양인데, 그간 메신저에서 무척 자주 뵙고 쓰신 글도 줄곧 읽어 왔던 터라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푸짐한 샐러드, 빵, 수블라끼를 먹으며 주로 소설 창작에 관한 이야기를 한 다음, 둘 다 출판사 약속이 잡혀 있어서 일찍 일어났다. 진아님과는 여건만 되면 하루 종일도 재미있게 대화하며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여즉 그럴 기회가 없었다.

B사에서는 얼마 전에 끝낸 원고를 두고 여러 관계자들이 모여 책의 방향을 함께 생각해 보는 가졌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 미팅인 셈이다. 사실 나는 책의 제작 과정에서 번역자와 편집자, 출판사, 디자이너 등 관계 전문가들의 자신의 영역에 대한 확고한 책임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져 독자의 손에 도달하기까지의 길고 복잡한 과정은 분명히 흥미롭지만, 그 흥미는 기본적으로 독자 입장에서 갖는 것이다. 번역자로서는, 뭐랄까, "당신이 하는 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나보다는 당신이 더 잘 알 테니 좋을 대로 하세요. 이건 당신의 책이기도 하니까요." 정도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내가 비전문가인 분야에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그 결과가 과연 내 의견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보다 나을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조금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 과정에 대해서는 (마치 많은 편집자들이 자신이 만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듯이)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자세가 된 데에는, 편집장님이 지적하셨듯이,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책이 저렇게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의 영향도 없지는 않다.

어쨌든 그래서 전날 작가 인터뷰 등 자료까지 새삼스레 복습하고; 좀 긴장해서 갔는데, 예상보다 재미있었다. 특히 영업 쪽은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라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나와 편집장님 밖에 없었던 점은 아쉬웠고, 내 말이 너무 빨라서 듣는 분들이 난감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신경 쓸 걸 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사람은 역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금 했다. 하루에 서너 마디밖에 안 할 때가 많은데다 인터넷 메신저도 쓰지 않으니, 확실히 소통능력이랄까,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템포를 맞추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이왕 나선 김에 대학신문사에 가서 영수증 확인 건을 처리하고, 중앙도서관에 기말고사 기간에 빌렸던 참고도서를 반납했다. 2월까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슬슬 진심으로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특별히 서둘러야 할 일은 없지만, 계약서의 일정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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