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2008년 10월 21일 화요일 : 진심의 무게

저녁 일곱 시 십 분. 내일 중간고사인 실천윤리학 교과서를 봐야 할 텐데 하고 생각하며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번역 건이었다. 에이포 서너 장 정도, 공증 받아야 할 영문 서류를 한글로 옮기는 일이었다. 모니터 뒤에 있던 탁상달력을 꺼내 들며 무슨 서류인지 물었다. 버마 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 가족들이 돌아가신 분의 저금을 출금하려면 번역 공증이 필요하다. 그쪽 기관에서 정해진 포맷대로 쓰인 서류니 특별히 전문적인 건 없어요. 나는 달력을 노트북 옆에 눕히고 펜 뚜껑을 한 손으로 열었다. 주말에 하면 되니까 보내 주세요.

노트북 모니터에는 조금 전까지 열심히 읽고 있던 인터넷 쇼핑몰의 상품 상세 소개 페이지가 떠 있었다. 나는 나의 소비가 부끄럽지 않다. 나의 여유도 안이함도 허영도, 고민도 실패도 포기도 부끄럽지 않다. 그것들은 책임이지 부끄러움이 아니다. 아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오히려 제가 죄송할 따름이죠. 나는 전화를 든 채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말했다. 진심이었다.

나는 나의 진심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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