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8일 목요일

2009년 5월 28일 목요일

평일 오후 네 시 조계사는 한산했다. 짧은 줄을 찾아내 서자마자 내 차례가 왔다. 노란색 리본을 받아들고 검은 매직이 놓인 책상 앞에 섰다. 이 슬픔, 이라고 쓰고 나서야 추모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게 쓸 자리가 없었지만 쓸 말도 더 떠오르지 않았다. 리본을 묶고 분향소로 갔다. 눈이 벌건 여자분이 한 송이 씩 나누어준 국화꽃을 올리고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서툴게 절을 했다. 결혼하며 장만했던, 오늘 처음 꺼내 입은 검은 원피스가 방석에 쓸려 바스락거렸다.

맞은편에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쓰라고 커다란 전지가 붙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글을 쓰고 어떤 사람들은 글을 읽었다. 나는 영정이 보이지 않는 자리에 서서 울었다.

토요일에는 거의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오전에 한윤형 님이 보낸 짧은 문자로 소식을 처음 전해듣고 컴퓨터를 잠깐 켰었으나, 그 뒤로는 글 하나, 사진 한 장 보지 않으려 애쓰며 토요일 밤 마감인 법정보조사 숙제를 했다. 숙제를 하고 나서는 쿠키를 구웠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밤이 되어 잠자리에 눕자 천정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났다. 이 거대한 슬픔, 이 정치적 절망감, 이 갈곳없는 분노. 통곡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안온하게 둘러싸고 있는 내 삶의 부조리함.

일요일에는 새벽에 깼다. 나는 이불을 빨고 JPT시험을 쳤다. 여전히 어떤 추모의 글도 예전 사진도 보지 않았다. 남편은 출근했다. 해가 저물 무렵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슬퍼서 견딜 수가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래, 슬프겠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너와 같은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해야 해. 어머니가 대답했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매달리듯 말했고, 80년을 대학에서 맞았던 어머니는 짧게 한숨을 쉬고, 주변은 바뀌어. 사회는 달라져. 언제까지나 지금같은 게 아냐. 배포를 가져. 그래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어. 라고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마 또 쿠키를 구웠던 것 같다.

민주화 이전을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그 시대를 견뎌낼 수 있었을지, 그토록 높고 강건한 벽 안에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을지 늘 궁금했다. 그런 부조리함을 어떻게 견디고 그런 일상적인 좌절감을 어떻게 눌렀을까.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그저 끝없이 슬프기만 한 이 마음을 끌어안고서야 나는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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