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1일 일요일

2010년 1월 31일 일요일

길었던 학부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귀향한 용진군이 오후에 놀러 왔다. 딱 내 한국어교사양성과정이 끝나는 2월 4일부터 출근한다고 해서 주말에 만났다. 멀리 와 준 것도 고마운데 착실하게 딸기쨈 롤케익도 가져 왔더라. 동진님 표 커피와 함께 먹었다. 저녁은 도미노피자. 전단지에 혹해 하나당 428kcal을 자랑하는 도미노피자 베이크 롤을 주문해 봤다. 고칼로리의 기운이 마구마구 느껴졌다. 피자에 베이크롤까지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나중에는 머리가 아팠다.

밤에는 동진님과 [사무라이 전대 신켄져]를 보았다. 다음주면 신켄져 완결, 발렌타인 데이부터 [천장전대 고세이쟈]가 시작된다. 2010년의 [가면라이더 더블]을 안 보고 있기 때문에, 수퍼전대라도 열린 마음으로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전대미문에 올라온 1~3화 다이제스트를 봤더니, 글쎄, 제1화에서 레드가 변신 카드를 잃어버려 변신조차 못 한다고 한다!! 나는 레드는 역시 카리스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이번 [고세이쟈]는 블랙과 옐로가 남매지간이라는 설정 때문에 심심한데 (남매지간이면 러브라인이 하나 줄어든단 말이닷) 덜렁덜렁 레드라니, 후.......[사무라이 전대 신켄져] 같은 걸작 다음 전대이니 어떤 것이라도 아쉽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시청자의 의욕을 한 풀 꺾는 설정이다. 그래도 일단은 열린 마음, 열린 마음으로, 올해도 러브라인에 주목해 보려고 한다.

어제 [신켄쟈 vs 고온쟈]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다. 보러 가고 싶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오랜만에 한가한 하루였다. 다음날까지 급히 해야 할 일도, 마감도,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해야 할 일도 없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전날 피곤해서 귀가하자마자 쓰러져 잤던 터라 오전 7시 30분에 일어났다. 하루가 꽤 길었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오늘은 국립국악원에서 사물놀이와 민요를 배우는 날이었다. 오전에 국립국악원에 갔다가, 오후에 언어교육원으로 가서 한국어교육과정론과 한국어 문법교육론 수업을 하는 일정이었다.

숨 쉴 자리도 없어 힘들었던 9호선인데, 오늘은 어째 금세 앉을 수 있었다. 멀리 가야 해서 걱정이었는데 운이 좋았다. 국립국악원 국악연수관의 커다란 방 같은 강의실에 같은 조 임선생님, 차선생님과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북, 장구 등이 많이 쌓여 있었다. 10시 50분까지 사물놀이 장단을 익히고,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 전통 음악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강사님에게 배운 다음 북과 장구 중 쳐 보고 싶은 악기를 직접 골라 장단을 맞추어 보았다. 차선생님은 장구를 집어들어 죄며 동사무소 문화센터에서 좀 배웠다고 하셨다. 수업에 활용할 생각으로 비디오카메라나 사진기를 가지고 온 선생님들도 계셨다. 덜렁덜렁 빈 손으로 왔던 나는 쉬는 시간에 임선생님과 사진을 찍고, 임선생님, 차선생님, 마침 내 앞에 앉았던 다른 조 선생님 세 분의 사진을 두 장 찍어 드렸다.

민요 시간에는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며 각 장단의 흐름을 익히고 '진도 아리랑'을 직접 끝까지 불렀다. 내 앞에 앉아 계시던 차선생님이 안 보여서 뒤를 보니 맨 뒤에 앉아 계셨다. '피곤하신가?'생각하며 수업을 마저 듣고,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려고 서둘러 교실을 나섰다. 임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언어교육원에 가기로 했는데, 밖에서 기다려도 임선생님이 나오시지 않아서 전화를 했다. 임선생님이 차선생님이 조금 편찮으셔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으니 함께 못 가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쩐 일일까, 생각하며 역시 임선생님 차를 타기로 했던 최선생님과 다른 분 차를 얻어타고 학교에 왔다.

식사를 끝내고 교실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편찮으시다던 차선생님이 뇌출혈로 구급차에 실려 가셨다는 것이다. 뇌출혈은 당사자도 바로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맨 뒤에 가만히 앉아 계시니 다들 피곤하신줄로만 생각했다가, 수업이 끝나고 이제 일어나 가시자고 흔드니 이미 몸에 마비가 와서 말씀을 못 하시는 상태였다. 사모님께 연락이 가고, 양성과정 선생님 두 분이 구급차를 타고 병원까지 함께 가셨다.

같은 조인 차선생님은 이순의 연세로 이번 양성과정의 최연장자이시다. 젊어서는 종합상사에서 해외파견 관련 일을 하셨던 분이다. 뉴욕에서 여러 해를 살았으나 IMF로 한국 회사들이 해외사업 규모를 줄이면서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 점점 더 작은 회사로 옮기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하셨지만, 이제는 퇴직해서 돈보다는 주재원 경험을 살린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양성과정에 왔다고 말씀하셨었다. 해외 파견 근무로 인해 직장 안에서는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외국에 살면서 한국을 알리고, 귀국해서는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일을 후방에서 지원하며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이라셨다. 해외 거주 경험이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어, 자제분들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사회인으로 자란 것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병원에 가신 분들에게서 간간히 연락이 왔다. 병원에는 갔으나, 수술을 끝내자마자 중환자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인데 중환자실에 자리가 나지 않아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수술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쉬는 시간에 기도를 했다.

수업은 조금 지연되었지만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97년부터 한국어 강사를 해 온 교수님은 귀한 경험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나는 간담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긴, 그러나 육십 평생의 시간에 비하면 짧은 소개를 하셨던 차선생님, 익숙하지 않은 파워포인트로 모의수업 준비를 열심히 해 왔지만 지적을 많이 받고 "뉴욕까지 갔다 왔는데도 사투리는 안 고쳐지네요." 하고 머쓱하게 웃던 차선생님, 식당으로 걸어가며 "내가 잘 못해서......답답했죠?"하고 말을 건네던 차선생님, 쓰러지시기 한 시간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던 차선생님을 생각하며, 떠올리지 않으려고 하며, 혹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억하려고 하며 앉아 있었다.

귀가길에는 지하철을 반대로 탔다. 정신을 차리니 방배역이었다. 나는 20대이다. 20대라는 나이는 얼마나 가벼운가. 젊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오만한 것인가. 나는 반성도 괴로움도 답답함도 안타까움도 아닌, 그 한가운데의 어디쯤에서 허덕이며, 그저 무척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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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추가: 26일 저녁에 수술을 하셨는데 다행히 경과는 좋은 편이란다. 더 지켜보아야하지만, 일단 사람을 알아 보시고, 조금씩 말도 하려고 하신다고 한다.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오전에는 걸레질을 하고 유리를 닦았다. 교정지를 보아야 했으나 의욕을 계속 상실한 상태라 청소만 열심히 했다. 내일 아침까지 먹을 생각으로 머핀을 구웠는데, 새로운 간단 레서피를 보고 했더니 맛이 별로 없어서 낙담했다.

낮에 개인지도를 하는 장영 씨가 집에 왔다. 원래 주중에 학교에서 만날 계획이었지만 장영 씨가 친구와 여행을 갈 기회가 생겨 이번 주 평일은 어렵다고 해서, 주말로 시간을 옮겼었다. 정정훈 변호사님의 인종주의에 관한 칼럼을 텍스트로 골랐던 터라 국적법 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중국은 속인주의이지만, 양친 중 한쪽이 중국인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태어나야 중국 국적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중국적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 남자와 한국 여자가 결혼해서 한국에서 아이를 낳으면 한국 국적법에 의해 한국인이 되는데, 그러면 이 아이는 아버지가 중국인이어도 중국 국적을 가질 수 없고, 중국국적을 취득하고 싶다면 귀화신청을 해야 한다. 과잉인구 문제로 국적을 잘 주지 않아 귀화 신청이 인정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고 들었단다. 또 중국은 인구가 많다 보니 국외로부터의 결혼이민의 문제는 거의 없고, 도시에 결혼적령기 여성이 부족해 도시의 남성과 농촌 지역의 여성이 결혼하는 경우는 있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쓰이는 한국식 법률용어나 표현을 어려워하는 것 같아 다음 시간에는 내 지난학기 법문장론 교재를 함께 보고, 한국의 판례와 평석을 읽어 보기로 했다. 조금 변칙적인 어휘 수업이 된 것 같지만 지금 수준으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한국어 문법을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고, 발음은 내가 어설프게 건드릴 부분이 아니다. (개인지도 시간에는 발음 교정은 자제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에 유학을 왔는데 수업 시간에 막상 한국법에 관해서는 거의 배우지 않아서 한국의 교과서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좀 놀라웠다. 또 현재 한국의 법학전문대학원에 외국인의 입학이 금지되어 있는 줄도 이제야 알았다. 특히 장영 씨처럼 어린 나이에 이미 중국에서 사법고시를 합격했고 변호사로 일할 생각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한국의 일반대학원보다 전문대학원 과정이 유학 온 학생에게나, 유학생을 받아들여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학교에게나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저녁에는 밥을 지어 먹었다.

밤: 내일 문법 시험 예습은 다 했다. 수업참관 보고서와 개인지도 보고서를 썼다. [미래경] 원고는 잘 풀리지 않아서 진전이 거의 없다. 이것도 이제 정말 걱정이네. 교정지는 내일 밤에 보아야겠다. [입적]때문에 속상한 마음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책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서 괴롭다. -_ㅠ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아우님의 생일이지만 만나지 못했다.

저녁에 화장실 청소를 했다. 저녁으로는 훈제오리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은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밤에 교정지를 꼭 보아야 했으나, 의욕을 상실해서 보지 못했다.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없었다. 귀가길에 이대로는 큰일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빵굼터에서 빵을 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와구와구 먹고, 빵힘으로 세탁기를 돌려 놓고 쓰러져 잠들었다. 그런데 어중간한 시각에 깨서 밤낮이 조금 바뀌고 말았다.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가장 긴장되는, 개인 1차 모의수업일이었다. 계속 바빴던 터라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수요일에는 귀가하자마자 일단 한 숨 잤다. 그리고 일어나서 교안을 다시 만들었다. 톡 튀는 부분이 있었으면 싶은데 좋은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아 문법 제시와 연습 부분의 키노트만 일단 열심히 만들며 괴로워하다가, 자정 쯤에 메신저에 들어온 초천재 아우님에게 SOS를 쳤다. 내가 가르쳐야 하는 내용과 한국어 교재에 있는 예문 몇 가지를 설명하자 놀랍게도 멋진 제안을 쏟아낸다! 아우님의 얘기를 들으니 수업 후반부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관련된 교구제작 링크와 파일도 바로 보내 주어서 한국어에 맞게 편집해서 완성했다. 아우님은 굉장하다. 현명하고 너그러우며, 열의와 재능이 있는 선생님이다. 직업인으로서 존경하고 있다. 아우님이 가진 장점은 소박해 보이기도 하는 것이어서, 예전에는 내 눈에는 저렇게 환히 빛나는 아우님의 장점을 사람들이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해 속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접어들자 주위에서도 깨닫기 시작하는 것 같다. 아우님처럼 겸손한 성격이 못 되는 나는 속으로 거 보라며 우쭐거리고 있다.

그리하여 다 만들고 나니 새벽 6시. 화요일에 수업참관을 했던 덕분에 오전에는 수업이 없었다. 한 숨 자고 학교에 가서 정규수업을 들은 후 모의수업 발표를 했다. 프로젝터와 노트북을 연결하지 못해서 생각했던 대로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조언을 많이 들었고 다음 모의수업 시간에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아우님이 권한 대로 만든 교구를 보고 수업 시간에 쓰고 싶으니 나중에 파일을 보내 달라고 하셔서 뿌듯했다.

저녁에는 문지문화원에 갔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젠더] 시간이었다. 날씨가 추운데도 많이들 출석해 주셔서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밤에는 너무 피곤해서 기절하듯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