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 10일 화요일

2004년 8월 10일 화요일 :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



낮에 시험 준비차 서울에 올라오신 Covenant님과 차를 마셨다. 온라인에서만 알던 사람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일은 언제나 신기하고 즐겁다. 사실 녹두 밖으로 나가 맛있는 식사라도 하자고 청하고 싶었으나, 서울까지 와서 공부하느라 다급하고 바쁘신 분께 괜히 곤란한 초대가 될 듯 싶어 그만두었다. (.....그러나 사실 Covenant님과 나는 같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SF이야기 반쯤, 시험 이야기 반쯤.

저녁에는 명동 한식집 고궁에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를 했다. 밀리오레 앞에서 만나기로 하는 바람에 서로 못 찾아서 한참을 헤맸다. 약속 시각은 다섯 시, 실제로 사람들이 모인 시각은 여섯 시 반. 이래저래 사람 많은 길을 계속 헤치고 다니느라 내 식사는 하는둥 마는둥 했다. 제각기 다른 비빔밥을 시켜서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으리라 잔뜩 기대했는데, 하필 식사가 나올 때 명동역에 나가게 되는 바람에 다양한 비빔밥을 못 찍은 것이 몹시 아쉽다.


청포묵채

해물파전

전주비빔밥

이번 동문회에는 반가운 선배님이 오셨다. 99학번 세진언니! 재작년에 졸업하고 출국하신 뒤로 도통 연락이 되질 않아 어떻게 지내시나 늘 궁금하던 차에, 예고 없이 등장하셔서 정말 기뻤다. 2년동안 연구소에서 일하시다 이번학기부터 하버드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에 들어가신단다. 아마 이삼 년 후에나 다시 뵐 수 있겠지. 병원에서 바쁜 종우오빠와 방학 마지막 주인 혜진언니도 나오셨다. 00 형기오빠, 02 지현이와 03 두현이, 04 태준, 연수, 남수, 대영이와 나 이렇게 총 열한 명. 식사를 마친 뒤에는 근처 호프집에 가서 칠월에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온 태준이가 선물로 가져온 초컬릿을 나눠먹으며 맥주를 들었다. 나는 딸기맛 웰치스. 열 시가 조금 넘어 일어나서 다함께 사진을 찍었다.

더운 날씨에 - 집에 돌아와 신문을 보니 36도가 넘었다더라 - 번잡한 명동에서 돌아다니느라 좀 지쳤지만, 재미있었다.

2004년 8월 8일 일요일

2004년 8월 8일 일요일

존 포드 회고전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를 예매해 두었으나, 너무 더워 도저히 나갈 자신이 없어 취소 가능 시간 막바지에 취소했다.

류트섭, '그레이트제이'


나뭇가지를 주워모으다 붉은여우와 싸웠는데 못 움직이게 되어 버렸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했나. (...)

온라인 게임은 생전 처음이라 어리버리 열심히 뛰어다니고만 있다. 왜 수탉은 못 잡는 거지? 잡으면 닭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을 텐데. 그나저나 3D 정말 대단하다. 요즘 게임은 다 이렇게 훌륭한가? 시점 변환도 놀랍고, 밝기나 그림자의 미묘한 변화도 멋지다.

원군님 따라 류트섭에 들어왔는데 아무도 없다. (...) 하프섭으로 갈까.

2004년 8월 7일 토요일

2004년 8월 7일 토요일 : Sicaf 2004 Animasia 'TV & 커미션드 2' & '애니메이션의 시대'

티켓 카탈로그



TV & 커미션드 2
1. 이민자(The Immigrants), 안드레이 사슬로츠키(2003-2004)
미국에 온 러시아 이민자 두 사람의 취직담(?). 블라드가 대형 슈퍼마켓 글루스코에 취직하자, '모두가 파이를 나누어 갖는 것'이 옳다고 믿는 요스카는 그 앞에서 필요량만 파는 노점 요스카코를 연다. 네 편 중에서 제일 볼 만 했다. 하려는 말이 선명히 보이고, 진행도 자연스럽다.

2. 헤어리 스케어리(Hairy Scary), 얀 반 리젤스베르그(2003)
시작한 줄 알았는데 끝나버렸다. 일부분만 잘라내어 보여준 예고편같다.

3. 제이커스! 피글리 윙크스의 모험: 랄루의 전설, 존 오버(2003)
3-D 티비 만화 시리즈 중 한 편. 내용보다 주제가가 더 재미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아이들이 각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뿌리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어린아이들이 보면 깨닫는 바가 있겠지만 어른이 보기에는 좀 지겹다.

4. 네티비, 박상욱(2003)
티켓 카탈로그의 줄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전체 필름을 팔기 위한 일종의 쇼케이스 버전인지 모르겠지만 앞뒤가 전혀 안 맞고 유머는 심심하기 그지없다. 특히 주요 등장인물 남자아이가 상영한 이십삼 분 내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아 짜증스러웠다. 이야기를 앞으로 끌어가는 데 필요가 없는 등장 인물은 보는 이를 헷갈리게 한다(distracting). 그리고 굳이 '악=추함=질투하는 나이많은 여자'라는 식상하고 불쾌한 공식을 써서 얼음마녀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나. 창작자로서는 안이하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모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어른으로서는 위험한 자세다. 감독이 나와 같은 회에 보러 와서 만드느라 고생했다는 무대인사를 했다. 다 보고 나니 묻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순식간에 사라져서 아쉬웠다.

애니메이션의 시대(The Animated Century)아담 스나이더, 이리나 마르골리나(2003)

대단히 유익한 애니메이션이었다. 기대를 많이 했는데, 전혀 실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대 이상이라 집에 돌아와서 비디오나 DVD가 있는지 찾아 보았다.(없더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설명하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으로, 19세기 애니메이션의 태동부터 최근의 전세계 애니메이션 경향까지 폭넓게 살핀다. 다양한 자료 화면, 즉 예전의 애니메이션을 직접 보여 주며 설명하는 방식이라 애니메이션의 발전사가 한 눈에 들어오고, 국적이 아니라 발전사적인 중요도를 중심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필기를 하며 보았을 법한 영화. 기억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다리가 실제보다 많이 그려진 선사시대의 벽화이다. 벽에 그린 그림이 불빛에 흔들리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이용했다. 초기 애니메이션은 눈의 착각을 이용해 이 움직이는 효과를 내기 위해 다양한 기법과 기구를 활용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림을 꽂아넣어 뱅뱅 돌리는 '소마트로프', '페나키스티스코프'이다. 이를 영사 가능하게 발전시킨 기계가 바로 '프락시노코프'다. 19세기 말 영화의 탄생은 애니메이션의 발달에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그림자를 이용한 그림자 애니메이션, 조금씩 다르게 그린 그림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영사한 애니메이션 등이 나타났다. 그리고 셀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미국과 유럽의 애니메이션 발달 과정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드러나는 양 대륙의 차이와 비슷하달까.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소는 신문 카툰의 인기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들고 싶어한 신문사나 잡지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 때문에 이들 애니메이션은 대중들을 위한 재미에 중점을 두었고 캐릭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섹스심벌 베티붑이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반일 정도이니! 반면 유럽에서는 다양한 기법이 시도된다. 음악에 따라 빙글빙글 도는 그림 등이 나오는 추상 애니메이션, 각 프레임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나무조각으로 일일이 만든 애니메이션(그 일을 어찌 다 했을까!) 등이 주목을 받는다. 1920년대에 등장한 월트 디즈니의 스튜디오는 역동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과 탁월한 표정묘사, 토키 애니메이션 등으로 애니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 디즈니와 함께 있던 어브 아이웍스는 독립하여 - 나는 지금까지 미키마우스를 만든 사람이 어브 아이웍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다큐에서는 디즈니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나오며 미키마우스를 가져갔다고 표현하여 좀 이상했다. 토끼 오스왈드랑 다르지 않나- 개인 스튜디오를 설립했고, 역시 디즈니에 있던 플라이셔도 플라이셔 스튜디오를 설립, 애니메이션 최초의 섹스 심벌인 자신의 캐릭터 베티 붑으로 이름을 알린다. 디즈니 파업 후 해고된(;) 애니메이터들이 설립한 UPA도 리미티드 기법 등 자신들만의 감각적인 애니메이션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는 사이 유럽에서는 실험이 계속된다(;) 절지 애니메이션, 인형 애니메이션-생물학자 출신인 애니메이터가 정교한 곤충 인형을 이용하여 만든 곤충 애니메이션까지 있다-, 필름에 직접 그림을 그린 애니메이션 등이 등장한다. 유럽 애니메이션 중에 흥미롭고 참신한 시도가 참 많았는데 익숙치 않고 나라가 많기 때문인지 이름이 도통 생각이 나질 않는다. 실제로 이 다큐는 미국보다 유럽 쪽의 여러가지 움직임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내가 유럽의 애니메이션 작가들을 잘 몰라서 기억을 못 하는 바람에 자세히 못 쓰는 것이다.;;

2차대전과 전쟁을 거치며 서유럽/동유럽/ 미국의 애니메이션 방향도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벅스바니나 도널드 덕이 채권을 모으고 히틀러와 싸운다. 동유럽의 억압적인 분위기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양날의 칼이 되었다. 정치적인 내용을 만들 수 없어 소재가 제한되었지만-춤치였던 스탈린은 춤 못 추는 뚱뚱한 주인공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애니메이션의 상영을 금지키도 했다- 대신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 다양하고 새로운 기법을 통해 원하는 것을 (정치만 아니라면) 바라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색으로 인물을 표현하여 투우 장면을 묘사한 애니메이션과, 역시 이름을 잊은 어느 성공한 애니메이터가 말년에 만든 억압받는 상황에 대한 고통을 거대한 손으로 묘사한 작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짤막한 개그물도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가 짱이라는 내용의 애니도 나라를 가리지 않고 등장했다. 서유럽에서는 동유럽의 상황을 이해해 보려는 듯한 애니메이션이 등장했고-네살짜리가 군에 징집되는 이야기라든지- 미국에서도 인디애니가 등장하며 재미만을 찾지 않고 철학적인 소재를 깊이있게 탐구하려는 시도를 했다.(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닭과 달결이 토크쇼에서 싸우는 아주 재밌는 애니가 있다.) 스페인에서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한 CF가 활발히 만들어졌고, 캐나다는 애니메이션 사업을 국가적으로 지원했으며,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의 주제는 흔히 짐작하는 대로 섹스와 스포츠이다.

그 다음 컴퓨터의 등장이나 클래이 에니메이션의 재발견 같은 부분은 최근이니 생략. 우리나라 애니가 너무 무국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사람들의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00년대의 흑백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창작의 근본은 역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 그 자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애니메이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아야 할 다큐다. 동영상 파일 버전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꼭 구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역사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보자.

2004년 8월 6일 금요일

2004년 8월 6일 금요일

이사를 하고 나니 남는 것은 폭 몇 미터짜리 책장, 책상에 달린 책장, 책상에 안 달린 책장, 뒷면에 금이 간 책장, 만화책이 숨듯이 차곡차곡 쌓인 서랍과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 버둥거리는 책 한 무더기였다. 전화콘센트 앞 밖에 책장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이사하기에 앞서 인터넷부터 연결해야 했다. 인터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한 한 칸의 책장은 덩그러니 거실 복판에 서서 왜 나한테 이러냐고 울부짖었다. 얘야, 넌 세번째랑 네번째 칸처럼 흠집이 생기지는 않았잖니.

저녁 내내 책을 꽂았다. 몇 권 되지도 않는 주제에 무겁기는 엄청 무거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덜 먹고 덜 놀고 덜 입은 돈으로 이걸 사모았나 생각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 아무리 봐도 마음의 양식이 아니었다. 몸의 양식을 떼어다가 마음의 군것질에 썼을 뿐이다. 깨달음을 얻은 것을 기념하여 이달에는 책 따위 내버려 두고 두건과 여름옷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동대문에 가면 이천오백원에 가로세로 오십삼 센티미터짜리 두건을 살 수 있다. 들어갈 곳이 없어 아우님의 책꽃이에 모로 누운 책 한 권이면 머리 위로 빨주노초파남보 화사한 무지개를 두르고 꽃이며 잔디까지 심을 수 있었다. 나도 이제 환경 친화적인 사람이 될 거다.

가끔 소녀의 감성이 대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격월간 순정만화잡지 윙크, 7월 15일자 '궁'

2004년 8월 5일 목요일

2004년 8월 5일 목요일 :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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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다. 정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6일 새벽 1시에 덧붙임: 책 따위 아무리 봐도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책이 아니라 원수로 보이기 시작. -_-

2004년 8월 2일 월요일

2004년 8월 2일 월요일 : 상트 페테르부르크 국립 아이스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출처: 클럽발코니


동진님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호두까기 인형'을 보았다. 예쁘고 경쾌했다. 앞으로 한동안 호두까기 인형을 들을 때마다 눈 앞에 떠오를 만큼 의상이나 무대도 인상깊었다. 동화로 널리 알려진 1막도 좋고, 2막의 저 유명한 장미꽃 왈츠도 아름답지만, 내가 호두까기 인형 발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뭐니뭐니해도 바로 2막 초반의 디베르티스망, 그 중에서도 아라비아의 춤이다. 아이고 좋아라. (으응?) 피리춤의 발레리나 한 명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웠다.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많이 혼났을 거야. 그 발레리나는 나중에 커튼콜에도 안(못?) 나왔다.

방학이라서인지 어린애들이 굉장히 많았다. 몰입하기 쉬운 화려하고 볼거리 많은 공연이라서인지 공연 중에는 생각보다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쉬는 시간에 로비에 나가 보니 어린 아이들이 굉장히 많아, 이렇게 많은 것 치곤 정말 조용했구나 싶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에는 초원죽집에서 뒤늦게 저녁을 먹었다. 다 먹고 일어나는 순간, 물품보관소에 맡긴 가방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서 몹시 당황했다. 결국 퇴근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 당직실(;)에 넘어가 있던 가방을 찾았다.

연락을 늦게 받는 바람에 정신없이 뛰어가서 보았는데, 시원하고 즐겁고 만족스러운 공연이어서 기뻤다.

2004년 8월 1일 일요일

2004년 8월 1일 일요일





멋진 새 옷을 입고 온 승민오빠와 에베레스트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있는 양고기, 맛있는 커리, 맛있는 난. 후식으로 특이한 설탕시럽 후식도 먹었다. 오빠는 무늬에 따라 반짝반짝 불꽃 모양의 불이 들어오는 새 손목시계를 샀다. 걸어다니는 파산친구 인정. ( - _-)



식후에는 버스를 타고 카페 뎀셀브즈에 가서 커피와 차를 마셨다. 타르트가 먹고 싶었으나 배도 부르고 해서 참았다. 요새는 내 몸을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양문고에 잠깐 들렀다. 윙크 선물 당첨.;

승민오빠의 PDA로 그린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