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동기 현민의 선고공판일이었다. 서부지방법원에서 오전 10시. 밤낮이 조금 바뀐 상태라 전날 새벽 4시 즈음에야 잠들어서 못 일어날까봐 걱정했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긴장해서 잘 일어났다. 법원에 제일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동기 신행과 도호, 이어서 후원회 일을 맡고 있는 후배들이 들어왔다. 좀 더 앉아서 기다리자 [전쟁 없는 세상]의 여옥 님, 다음주에 선고를 받는 다른 병역거부자 분 등이 오셨다. 현민은 기다리는 쪽이 초조해질 때 쯤 되어 나타났다. 현민의 어머니는 오시지 않았다.
공판장 앞에서 현민은 휴대폰을 넘기며 해지를 부탁하고, 속옷과 책 몇 권이 들었다는 종이가방을 들었다. 후원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 중희가 지갑에 얼마 있는지 묻더니 혹시 모르니까, 하고 칠만원을 건넸다. 가볍게 포옹하며 인사를 했다. 나는 남자 동기라 손 한번 잡아본 적 없던 현민을 안고, 나도 모르게 등을 두드렸다.
법정에 들어갔다. 형사이다 보니 앞의 분들은 사기죄, 폭력죄.....병역법 위반으로 현민의 이름이 불렸고, 판사는 '주장하는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현행 헌법상 국방의 의무가 주장되는 양심의 자유에 우선하므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법정구속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바로 감옥에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는데,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테니 오늘은 귀가해도 좋고 7일 후에 출두하란다. 우리는 우르르 들어갔다가 우르르 나와, 손을 벌벌 떨며 벤치에 주저앉은 현민을 둘러싸고 망연히 서 있었다.
현민은 아무 것도 먹을 생각이 없다며 일단 돌아가자고 했다. 법원 앞에 서서, 아침에 어머니가 갈비며 한라봉을 차려 준 이야기, 끝내지 못한 번역일정을 조정해 놓았는데 시간이 더 생겨서 감옥 간 척 잠수해 있어야겠다는 얘기, 감옥에 가져가려고 골라 놓은 책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교보문고까지 갔다가 막상 가고 보니 재판에 늦을 것 같아서 다시 돌아온 얘기를 조금 두서없이 늘어놓으며 추운데 세워 놓아서 미안하지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언제 또 있겠냐고 했다. 두 번 없길 진심으로 바랐다. 신념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은 한 번이면 족하다.
서부지법까지 온 김에 바로 옆 서부지검에 있는 CW양에게 잠시 들렀다. CW양은 법정구속이 안 되었다는 얘길 듣더니 판사가 예외적으로 무척 배려해 준 것이리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의 무게가 실감나 마음이 무척 무거웠다. 오랜만에 친정에 들르기로 했던 터라 집 근처 전철역에서 어머니와 만나 간단히 쇼핑을 했다. 딸에게 좋은 밥 챙겨주겠다고 분주히 만두를 빚던 어머니는, 현민의 이야기를 듣더니 거실 쇼파에 늘어져 있는 내 쪽을 보며 "어휴, 부모한테 어쩜 그런 불효를 하니. 하여튼 부모 마음보다 지들 신념이 중하다고......먹물이 너무들 들었어. 모르고 좀 편하게 살면 좋을텐데 알아서 그 고생을 하지."라며 한숨을 쉬셨다. 나는 어머니의 시선을 과장스레 외면하며 "그러게~말이에요~"하고 능청맞게 웃었다.
맛있는 만두국을 먹고 어머니와 수다를 잠시 떤 다음 동생의 침대에서 한숨 잤다. 생일 선물로 받은 가방에 생일 선물로 받은 옷, 모자, 내가 잠든 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따뜻한 귀리빵 샌드위치를 두 개 받아 넣고 학교에 갔다.
집에 와서는 홍차를 우려 샌드위치를 먹었다. 두 개 다 먹었더니 무척 배가 불렀다. 나는 내 삶을 지배하는 포만감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누워서 배를 두드리며 남편의 귀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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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군이 평생 친구로 여기고 있는 도호에게 전화 이야기를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상담하고 싶었는데 도호가 지난 토요일에 사법시험 1차를 쳤던 터라, 직접 만날 수 있는 오늘까지 기다렸었다. 몹시 걱정하며 주말에 바로 KTX를 타고 내려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공판장 앞에서 전화 연결이 된 B군은 멀쩡한 목소리로 나한테 전화한 적도 없다고 했단다. 내가 B군의 이야기를 하자마자, B군 일을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도호가 바짝 긴장하며 휴대폰을 꺼내들어 무척 불안했었는데, 차라리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했었다면 되려 (아주 조금이지만) 안심이다.
2010년 3월 3일 수요일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낮에 보영과 아우님을 초대해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다. 후식으로 대접하려고 크림치즈 파이를 미리 장만해 두었는데, 다들 맛있게 먹어서 기뻤다.
저녁은 승민오빠, 아우님과 [야오 램(Yao Lamb)]이라는 양고기 전문점에서 먹었다. 깔끔하고 친절하고 맛있는 곳이었다. 승민오빠에게서 생일선물로 다스베이더 레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실로 오덕스런 아이템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외식을 했더니 사진 정리가 귀찮다.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자려던 참에 군에 있는 동기 B군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새벽 두 시였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별 일 아니라 나중에 제대하면 너 나한테 (아마 취해서) 그런 전화도 했었노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슬프고 불안하다. 나는 제대로 답한 것일까. "어떻게 하지?"하고 허둥거리는 대신, "그런 건 우편으로 못 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야?"하고 되묻는 대신, "맛있는 밥 사주고 얘기 들어줄 수는 있지."하고 솔직하게 답하는 대신 알겠다고, 신선한 피든 뭐든 보내겠다고, 버티고 있다가 올라오기만 하면 (뭔지 몰라도)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편이 나았을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나는 이렇게 무력하다. 제발, 오늘의 전화 한 통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나는 도저히 여기에서 더 버틸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고 있다'는 B군의 제대는 아직 20개월이나 남았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저녁은 승민오빠, 아우님과 [야오 램(Yao Lamb)]이라는 양고기 전문점에서 먹었다. 깔끔하고 친절하고 맛있는 곳이었다. 승민오빠에게서 생일선물로 다스베이더 레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실로 오덕스런 아이템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외식을 했더니 사진 정리가 귀찮다.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자려던 참에 군에 있는 동기 B군으로부터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다. 새벽 두 시였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별 일 아니라 나중에 제대하면 너 나한테 (아마 취해서) 그런 전화도 했었노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슬프고 불안하다. 나는 제대로 답한 것일까. "어떻게 하지?"하고 허둥거리는 대신, "그런 건 우편으로 못 보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야?"하고 되묻는 대신, "맛있는 밥 사주고 얘기 들어줄 수는 있지."하고 솔직하게 답하는 대신 알겠다고, 신선한 피든 뭐든 보내겠다고, 버티고 있다가 올라오기만 하면 (뭔지 몰라도) 다 해결해 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편이 나았을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조차도, 나는 이렇게 무력하다. 제발, 오늘의 전화 한 통을 후회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나는 도저히 여기에서 더 버틸 수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고 있다'는 B군의 제대는 아직 20개월이나 남았다.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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