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7일 월요일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도박꾼 밥'
정훈님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멜빌의 흑백영화 '도박꾼 밥'을 보았다. 도박은 참으로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요약) 영화를 본 후에는 달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있는 커리! '바람에 흩날리는 안남미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려면, 돈을 벌 때가 아니라 쓸 때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말)
식후에는 인사동 길을 가로질러 카페 뎀셀브즈에 갔다. '홈메이드 초코케익'이라는 메뉴가 있기에 주문해 보았다. 누구네 집에서 만든 걸까.; 이런 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창 밖으로 초록색 풍선도 하나 날아갔다.(안 떨어지고 굉장히 높이 날아 사라졌다.)
광화문 교보에 들러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집에 왔다. 놀다 보면 하루가 금새 간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삼스레)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지구정복비밀결사 송년회 날이었다. 기념일인 덕분인지 굉장히 많이 오셔서 깜짝 놀랐다. 아스님, 강명님, fool님, 야롤님, 동진님, 코스모님 부부, 고양이님, 달팽이님, 까리용님, 루크님, 상현님, 에라오빠, 라슈펠님, 나 이렇게 열 다섯 명이 '너무 밝고 너무 넓은' 일민미술관 카페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미술관 부속 카페라 지금껏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뜻밖에 푸짐했다. 보통 참기름을 담아 둘 때 쓰는 큼직한 플라스틱 겨자통과 작고 깜찍한 계피가루통, 크고 단정한 커피잔과 성의없어 보이는 코울슬로가 공존하는 이상한 곳이다.(껄껄) 샌드위치나 스프 같은 메뉴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과 오래 앉아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들러 볼 만 하겠다. 넓고 탁자 배치가 잘 되어 있어 시끄럽지 않은 점이 좋았다.
경아님께서 맛있는 크리스마스 케익을 가져오신 덕분에 마음껏 기분을 내며 냠냠 먹었다. 나는 어제 밤에 준비한 초컬릿을 가져갔다. 아스님의 디스크월드, 야롤님의 말벌 공장을 받았고(:)), 펠님께 빌려드렸던 책을 돌려받았다. 맥킬립의 리들마스터 시리즈 세 권을 빌렸는데, 귀가길에 읽어보니 흥미진진하다. 일기 얼른 쓰고 마저 읽다 자야지. 야롤님께는 번번이 이런 저런 신세를 지고 있다.
식후에는 낮술(...)을 마시러 세종문화회관 옆 중국음식점으로 갔다. 열 다섯 명이 꽉 들어가는, 조금 침침하고 구석진 룸에 둘러 앉고 나니 다들 갑자기 생기가 돈다. 도중에 다른 일로 근처에 와 계시던 루리루리님도 오셨다.
언제나처럼 지정사와 장르문학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동북공정, 지자체와 교육자치 이분화, IRA, 음모론과 맨인블랙, '조중동 독자', 격동 50년, 고고학의 진실, 이란의 카페트, 전문용어 사용 등에 대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고려해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가 쓰이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나는 확실한 무교라도 지금껏 'merry chirstmas'라는 말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껴 본 적이 없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특히 성탄절이 축일인 다른 종교의 신자라든가 -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소수를 위한 배려와 대체 가능한 표현은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겠는가.
즐거운 축일 모임은 다섯 시 쯤 파했다. 카페에서 오랜만에 괜찮겠지 싶어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냥 참아야 할 것 같다.
2004년 12월 23일 목요일
2004년 12월 23일 목요일
이준구, 미시경제학
2004년 12월 21일 화요일
2004년 12월 21일 화요일 : What Kind of Intelligence Do You Have?
Your Dominant Intelligence is Linguistic Intelligence |
You are excellent with words and language. You explain yourself well. An elegant speaker, you can converse well with anyone on the fly. You are also good at remembering information and convicing someone of your point of view. A master of creative phrasing and unique words, you enjoy expanding your vocabulary. You would make a fantastic poet, journalist, writer, teacher, lawyer, politician, or translator. |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암흑가의 세 사람(Lu Cercle Rouge)'
요전에 EBS에서 알랭 들롱이 나오는 스릴러/추리물을 한 편 본 적이 있다. 지금껏 그 영화가 멜빌 감독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니 뭔가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꽤 끈적했는데, '암흑가의 세 사람'은 건조하다 못해 차가웠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온 멜빌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기억이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큰 기대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의 여러 상영작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안타깝다. 다음 토요일인 25일에 프랑스 느와르 특별전 대신 멜빌 영화 상영을 해 줬으면 싶다.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기 전에는 고다르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좋아했으면서, 아아, 간사하기도 하여라! 하다못해 '사무라이'라도 꼭 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소리의 부재'였다. 초반,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구장 장면에서야 그 때까지 배경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트렌치 코트를 입은 아저씨들이 마른 수건을 꽉 죈 듯한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넘치는,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영화였다. 보면 볼 수록,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연출이며 음악,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나라면 어떻게 찍었을까, 감독은 왜 저 장면을 저렇게 처리했을까, 저 사람 천재 아냐?; 같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실은 그래서 얼마 전부터 영화연출론 책을 틈틈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비디오 카메라를 몇 번 만져 본 것이 전부인 데다 영화 촬영 현장을 자세히 볼 기회도 없었다 보니 자꾸 2차원적으로만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어디 영화 뿐이랴.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생이 길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앎을 상상하면 흥분으로 절로 머리끝이 쭈볏 선다. 공부하고 싶다. 더 많이, 열심히, 깊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암흑가의 세 사람'이 매진이었고 - 보조석까지 팔았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영화가 매진이라니! - 김지운 감독님의 해설이 붙은 '형사'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귀여운 요츠바랑 쇼핑백을 들고 오신 sabbath님과는 영화관 밖에서 만났다. 영화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영화 재밌게 보세요' 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sabbath님께서 선물로 크런키 박스를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고 흐흐흐 웃었다. 초컬릿님 반가워요. ♡

(우와)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3가 아웃백스테이크로 가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종우오빠, 나, 지현, 두현, 부경, 태준, 범틀, 채우, 연수, 혜리 이렇게 열 명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현이는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05학번 새내기로 타대 약대에 새로 입학한단다. 전공이 썩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수능을 다시 쳤다는 부경이도 좋은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고시생인 나와 두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자꾸 아스트랄 고시 월드로 빠져나갔다.; 태준이는 2월 22일에 육군 입대. 04학번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내일 12학점짜리 시험을 치른다는 혜진언니와 - 아니 어떻게 한 과목이 12학점이람. - 급한 일이 생긴 형기 오빠가 못 오셔서 아쉬웠다.



식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와 케익을 들며 '레이디 경향'과 '여성동아' 풍(...) 수다를 떨었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내일은 월요일이다.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소리의 부재'였다. 초반,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구장 장면에서야 그 때까지 배경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
생각해 보면 어디 영화 뿐이랴.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생이 길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앎을 상상하면 흥분으로 절로 머리끝이 쭈볏 선다. 공부하고 싶다. 더 많이, 열심히, 깊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암흑가의 세 사람'이 매진이었고 - 보조석까지 팔았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영화가 매진이라니! - 김지운 감독님의 해설이 붙은 '형사'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귀여운 요츠바랑 쇼핑백을 들고 오신 sabbath님과는 영화관 밖에서 만났다. 영화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영화 재밌게 보세요' 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sabbath님께서 선물로 크런키 박스를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고 흐흐흐 웃었다. 초컬릿님 반가워요. ♡
(우와)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3가 아웃백스테이크로 가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종우오빠, 나, 지현, 두현, 부경, 태준, 범틀, 채우, 연수, 혜리 이렇게 열 명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현이는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05학번 새내기로 타대 약대에 새로 입학한단다. 전공이 썩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수능을 다시 쳤다는 부경이도 좋은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고시생인 나와 두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자꾸 아스트랄 고시 월드로 빠져나갔다.; 태준이는 2월 22일에 육군 입대. 04학번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내일 12학점짜리 시험을 치른다는 혜진언니와 - 아니 어떻게 한 과목이 12학점이람. - 급한 일이 생긴 형기 오빠가 못 오셔서 아쉬웠다.
식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와 케익을 들며 '레이디 경향'과 '여성동아' 풍(...) 수다를 떨었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내일은 월요일이다.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매직 8볼
승민오빠와 홍대 앞 이찌방 테리야끼에서 저녁을 먹었다. 밀가루 음식, 커피, 찬 음식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메뉴로 밥을 골랐다. 일정이 묘하게 뜨는 바람에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터라, 음식이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집에 와서 보니 찍는다고 찍은 음식 사진마다 뭔가 실수를 저질러 놓았다. 이찌방은 홍대에서 신촌 방향, 제니스 카페테리아와 치뽈리나 사이에 있다. 분위기를 따질 곳은 아니고 먹는 사람을 민망케 하는 어설픈 양배추 샐러드(?)가 나오지만, 메인인 테리야끼가 맛있고 소스도 훌륭하다.
식후에는 인클라우드에 갔으나 만석이라 리브로로 방향을 틀었다. 오빠는 레몬티(정말로 시단다), 나는 로열밀크티. 티라미수도 먹었다. 케이크님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 ♡
승민오빠는 짓궂은 표정을 한 벅스바니가 커다랗게 그려진 옷을 입고 왔다. 머리모양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노곤노곤 차를 마시다가 아홉 시 반 쯤 일어났다. 참새가 방앗간 앞 그냥 못 지난다고, 계산대에서 초컬릿을 두 개 사 왔다.
2004년 12월 15일 수요일
2004년 12월 15일 수요일
벌써 몇 년 전, 모 종합병원 암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암병동에 장기 입원한 환자들은 힘이 없어 휠체어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저런 검사를 받으러 번잡한 병원 안을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있을 지 모르는 검사를 위해 보호자가 항시 대기하고 있을 수도 없다. 나는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검사실로 모시거나, 반대로 검사를 마친 환자를 병실로 도로 모시는 일을 했다.
환자를 모셨을 때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넓은 복도를 빙 둘러 천천히 걸었다. 혼자 움직일 때는 검사실에서 좀 더 가까운 곁길로 들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으로서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불편해서이기도 했다. 지름길 중간에는 중환자실과 대기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잠시 숨을 멈췄다. 중환자실의 닫힌 문과 그 앞 대기실에 난민처럼 모여 앉은 사람들은 죽음에 반 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내가 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검사를 해야 하니 환자분을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하면, 지친 보호자들은 그 사소한 일에 무안하도록 고마워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를 검사 전 잠시라도 쉬게 하려 긴 의자에 눕히며, 학생, 고마워요, 하는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건강함이 부끄러웠다.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내가 하면서도 덧없이 들리는 인사를 건네며, 나는 나의 무력함이 부끄러웠다.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몇 달 전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기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처음 간 동네 내과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는 아닐 지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 보더니 양성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혹을 떼어 낸 다음에 들여다 보니 암 세포가 있었다.
그 세대에 쉽게 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짊어졌던 무게는 개인에게 각별한 법이다. 어머니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보다는 오래 살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했던 어느 여름 날, 병원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앉아 대충 씹어 넘기던 햄버거의 뭉클한 식감을 떠올린다. 헌혈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에 우리 어머니가 암이셔서 병원에 계시다 보니-라 답하던 A형 동기와, 수혈 쇼크를 겪은 후,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어, 말씀하시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다가올 미래와 피할 수 없는 일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스물 둘, 나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무력하기만 하다.
환자를 모셨을 때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넓은 복도를 빙 둘러 천천히 걸었다. 혼자 움직일 때는 검사실에서 좀 더 가까운 곁길로 들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으로서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불편해서이기도 했다. 지름길 중간에는 중환자실과 대기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잠시 숨을 멈췄다. 중환자실의 닫힌 문과 그 앞 대기실에 난민처럼 모여 앉은 사람들은 죽음에 반 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내가 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검사를 해야 하니 환자분을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하면, 지친 보호자들은 그 사소한 일에 무안하도록 고마워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를 검사 전 잠시라도 쉬게 하려 긴 의자에 눕히며, 학생, 고마워요, 하는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건강함이 부끄러웠다.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내가 하면서도 덧없이 들리는 인사를 건네며, 나는 나의 무력함이 부끄러웠다.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몇 달 전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기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처음 간 동네 내과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는 아닐 지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 보더니 양성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혹을 떼어 낸 다음에 들여다 보니 암 세포가 있었다.
그 세대에 쉽게 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짊어졌던 무게는 개인에게 각별한 법이다. 어머니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보다는 오래 살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했던 어느 여름 날, 병원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앉아 대충 씹어 넘기던 햄버거의 뭉클한 식감을 떠올린다. 헌혈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에 우리 어머니가 암이셔서 병원에 계시다 보니-라 답하던 A형 동기와, 수혈 쇼크를 겪은 후,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어, 말씀하시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다가올 미래와 피할 수 없는 일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스물 둘, 나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무력하기만 하다.
2004년 12월 14일 화요일
2004년 12월 13일 월요일 : 하이텔
파란닷컴에서 예전 하이텔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에 옮겨 주는 행사를 한다. 파란닷컴에 가입하기 싫고, 보면 틀림없이 민망할 것 같아 지금껏 신청을 않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이 올리신 걸 보니 재미 있어서 결국 하이텔 아이디로 전환 신청 - 새로 가입할 필요가 없었더라 - 하여 오늘 예전에 쓴 글을 보았다.
.......역시,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희미해진 각오를 다질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수확이다.
네. 저 진실은 무엇인가 하니......독일문화원은 계급제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 계급은 크게 "진급생"과 "재수강생(비더홀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1, 2, 3, 4점 | 5, 5.5점의 여섯 계층이지요. 5.5점은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은 게을러서 출석을 일곱 번 이상 빠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5점은 부지런하긴 한데 성적이 나쁜 (-_-) 학생들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5점입니다.
1점은 최상위 계급으로, 당연히 아주 적은 수입니다. 3.5점에서 4점 사이에 대부분의 평민이 위치합니다.
이 계급 제도는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수강 신청이라는 전시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점이 제일 먼저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2점...그렇게 해서 진급생 계급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제 한 학기를 쉬고 들어오는 학생들(잠재적 진급생 계급)이 역시 계급에 따라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5점, 그리고 남는 반들에 5.5점 학생들이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스케쥴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원하는 시간대의 반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수강 신청을 할 때에는 계급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나가서 등록을 하지요. 하지만 비더홀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_- 그냥 무더기로 나오라고 그럽니다. 비더홀러들에게 드디어 수강신청의 기회가 돌아오면, 이미 강당은 거의 텅 비어 있고 비더홀러들은 서로 민망해합니다. 드디어 신청이 끝나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면 상황은 종료되고, 독일문화원은 다음 학기의 계급을 정하기 위한 물밑준비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래, 난 비더홀러였다.)
특별히 부족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삶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기억.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내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지했고, 그들도 그랬다.
누구도 악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학업 스트레스로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었고,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호받던 딸들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서면 아는 얼굴 한 둘은 우습게 마주치던 작은 도시에 살았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런 종류의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툴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겨우 나흘. 하필이면 왜 그 때 그 학교가 시험을 쳤고. 하필이면 왜. 어쩌고 저쩌고. 시작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나흘 동안 열 마디도 채 하지 않았는데. 겨우 교실을 헤메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니 나는 이미 혼자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외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만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믿고 행동했다. 쉬는 시간 10분을 처리할 수 없어 늘 쩔쩔맸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렸다. 꼭 가는 길에 여기저기 어깨를 부딪히거나, 왜 우리 학교에 온거야-따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더라도.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일시에 몰려드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눈동자들은 어떤 상상보다 가혹했다. 맨 앞 줄에 앉아, 등 뒤에서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흘려버리지도 뒤돌아보지도 못해 앞만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호칭은 차라리 나았다. 이름 대신 점수로 불러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수군거림의 주제가 나라는 것조차 몰랐다. 재미있는 가십이었겠지. 해결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혼자였다. 어쩌다 보니 먼저 옮겨와 묵었던 친척집.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를 하고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촌동생과 잠시 놀아주고 나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았다.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아침이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아. 원망할 대상이 없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각은 성실한 학생이었고 다정한 친구였다. 그들끼리는. 그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은 단점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몇몇의 기호와 몇몇의 불만과 다수의 무관심이 모이면.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물게 대강 얼굴만 아는 클래스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쟤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은 동정일까 호기심일까 비웃음일까 친절일까 무관심에 따른 반사일까. 사소한 것에도 안심하고 더 사소한 것에서 상처받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 울며 되뇌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강해지자. 내가 받았던 것에 감사하자. 나누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말자. 기회를 주자.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억하자. 그래서 여기서 배우자. 절대 이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 때의 서너 달은 무척이나 느리게 지나갔다. 딱 이맘 때였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소녀들은 쉽게 가했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이란 그런 법이다.
나도 많이 잊었다. 변했다. 이 변화가 적응을 위한 발버둥의 결과인지 그 부대낌 속에서 무엇인가 배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참이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처럼 어색하게 건네는 사과에 '글쎄,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그 날 밤 내가 그 짧은 사과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들추어진 상처들이 아파서 또 한 번 울었음을 그 애는 알까.
하지만 아직도 가끔 견딜 수 없게 아픈 때가 있다. 오늘처럼. 숙제 하기 전에 눈이나 붙여 볼까 하고 누웠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기억들에 결국은 베게를 부둥켜 안고 울먹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난 정말 많이 배웠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내가 많이 받은 만큼 나누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잊어버리지 않는 게 더 좋은거야. 그렇게 고생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얼마나 멍청해.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야.
......
더 늦기 전에 숙제 해야겠다.
수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별로......(긁적긁적)
갈 곳이 없으니, 뭐, 결국 도서관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
다음 수업은 라틴어. 라틴어 선생님은 앉은 순서대로 독해를 시키십니다.(이거 못 하면 진짜 무안합니다.-.-) 예습을 안 했던 지난 시간, 저는 확실히 아는 문제가 걸리거나, 선생님이 고전학 샛길로 새실 경우 아예 문제를 안 풀 수도 있는 자리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찾아 앉았더랬지요.
교수님 등장.
Prof. (휘익 둘러보심)
Jay (찌그러져 있음)
Prof. (씨익 웃으며) 오늘은 반대쪽부터 해볼까요.
Jay (...)
오늘은 꼭 예습을 할 겁니다. --;
(3년 전에 손수 쓴 글을 보며 내 자신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어.orz)
.......역시,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희미해진 각오를 다질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수확이다.
예시 1 : 2002-01-03 과소동 잡기장
네. 저 진실은 무엇인가 하니......독일문화원은 계급제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 계급은 크게 "진급생"과 "재수강생(비더홀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1, 2, 3, 4점 | 5, 5.5점의 여섯 계층이지요. 5.5점은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은 게을러서 출석을 일곱 번 이상 빠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5점은 부지런하긴 한데 성적이 나쁜 (-_-) 학생들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5점입니다.
1점은 최상위 계급으로, 당연히 아주 적은 수입니다. 3.5점에서 4점 사이에 대부분의 평민이 위치합니다.
이 계급 제도는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수강 신청이라는 전시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점이 제일 먼저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2점...그렇게 해서 진급생 계급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제 한 학기를 쉬고 들어오는 학생들(잠재적 진급생 계급)이 역시 계급에 따라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5점, 그리고 남는 반들에 5.5점 학생들이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스케쥴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원하는 시간대의 반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수강 신청을 할 때에는 계급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나가서 등록을 하지요. 하지만 비더홀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_- 그냥 무더기로 나오라고 그럽니다. 비더홀러들에게 드디어 수강신청의 기회가 돌아오면, 이미 강당은 거의 텅 비어 있고 비더홀러들은 서로 민망해합니다. 드디어 신청이 끝나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면 상황은 종료되고, 독일문화원은 다음 학기의 계급을 정하기 위한 물밑준비 단계로 들어갑니다.
예시 2 : 2001-11-20 과소동 잡기장
특별히 부족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삶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기억.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내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지했고, 그들도 그랬다.
누구도 악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학업 스트레스로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었고,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호받던 딸들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서면 아는 얼굴 한 둘은 우습게 마주치던 작은 도시에 살았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런 종류의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툴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겨우 나흘. 하필이면 왜 그 때 그 학교가 시험을 쳤고. 하필이면 왜. 어쩌고 저쩌고. 시작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나흘 동안 열 마디도 채 하지 않았는데. 겨우 교실을 헤메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니 나는 이미 혼자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외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만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믿고 행동했다. 쉬는 시간 10분을 처리할 수 없어 늘 쩔쩔맸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렸다. 꼭 가는 길에 여기저기 어깨를 부딪히거나, 왜 우리 학교에 온거야-따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더라도.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일시에 몰려드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눈동자들은 어떤 상상보다 가혹했다. 맨 앞 줄에 앉아, 등 뒤에서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흘려버리지도 뒤돌아보지도 못해 앞만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호칭은 차라리 나았다. 이름 대신 점수로 불러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수군거림의 주제가 나라는 것조차 몰랐다. 재미있는 가십이었겠지. 해결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혼자였다. 어쩌다 보니 먼저 옮겨와 묵었던 친척집.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를 하고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촌동생과 잠시 놀아주고 나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았다.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아침이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아. 원망할 대상이 없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각은 성실한 학생이었고 다정한 친구였다. 그들끼리는. 그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은 단점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몇몇의 기호와 몇몇의 불만과 다수의 무관심이 모이면.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물게 대강 얼굴만 아는 클래스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쟤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은 동정일까 호기심일까 비웃음일까 친절일까 무관심에 따른 반사일까. 사소한 것에도 안심하고 더 사소한 것에서 상처받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 울며 되뇌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강해지자. 내가 받았던 것에 감사하자. 나누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말자. 기회를 주자.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억하자. 그래서 여기서 배우자. 절대 이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 때의 서너 달은 무척이나 느리게 지나갔다. 딱 이맘 때였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소녀들은 쉽게 가했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이란 그런 법이다.
나도 많이 잊었다. 변했다. 이 변화가 적응을 위한 발버둥의 결과인지 그 부대낌 속에서 무엇인가 배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참이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처럼 어색하게 건네는 사과에 '글쎄,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그 날 밤 내가 그 짧은 사과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들추어진 상처들이 아파서 또 한 번 울었음을 그 애는 알까.
하지만 아직도 가끔 견딜 수 없게 아픈 때가 있다. 오늘처럼. 숙제 하기 전에 눈이나 붙여 볼까 하고 누웠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기억들에 결국은 베게를 부둥켜 안고 울먹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난 정말 많이 배웠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내가 많이 받은 만큼 나누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잊어버리지 않는 게 더 좋은거야. 그렇게 고생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얼마나 멍청해.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야.
......
더 늦기 전에 숙제 해야겠다.
예시 3 : 2001-10-16 과소동 잡기장
수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별로......(긁적긁적)
갈 곳이 없으니, 뭐, 결국 도서관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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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업은 라틴어. 라틴어 선생님은 앉은 순서대로 독해를 시키십니다.(이거 못 하면 진짜 무안합니다.-.-) 예습을 안 했던 지난 시간, 저는 확실히 아는 문제가 걸리거나, 선생님이 고전학 샛길로 새실 경우 아예 문제를 안 풀 수도 있는 자리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찾아 앉았더랬지요.
교수님 등장.
Prof. (휘익 둘러보심)
Jay (찌그러져 있음)
Prof. (씨익 웃으며) 오늘은 반대쪽부터 해볼까요.
Jay (...)
오늘은 꼭 예습을 할 겁니다.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바게트
아스파라거스 스프
해산물
오리
안심스테이크
석류 셔벳
서늘님, 동진님과 방배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서늘님의 생일턱! :D 여름 즈음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서늘님을 오랜만에 만나고, 단골이시라는 아담하고 편안한 음식점을 새로이 알게 되어 기뻤다. 룰루랄라 즐겁게 식사를 하고, 동진님께서 출장가서 가져오신 초컬릿도 먹었다. 사자어(merlion)이 싱가포르의 상징인 줄 이번에 알았다. 어이쿠, 귀엽기도 하지.
저녁에는 초컬릿을 먹으며 연하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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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12/25 알파빌 예매완료
2004년 12월 5일 일요일
2004년 12월 5일 일요일
스노우캣 웹사이트에 올라온 핫초컬릿 레서피를 보고 직접 핫초컬릿을 만들어 보았다. 오전에 시작해서 낮에 묵혀 두었다가 저녁에 계피가지를 넣어 마셨다. 뿌듯했다. 날씨가 추울 때 밖에 나갔다 들어와 한 잔 데워 마시면 그만이겠다.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덧붙이자면:
(1) 우유+물+코코아는 은근한 불에.
(2) 레서피대로 만들면 양이 꽤 많다. 머그컵으로 너다섯 잔 정도가 나온다. 혼자 먹을 사람은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이길 권한다.
(3) 밀크초컬릿과 다크초컬릿을 반씩 섞어 넣었더니 예상보다 좀 달았다. 나처럼 평소에 다크초컬릿을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굳이 반씩 섞어 넣지 않아도 될 듯.
(4) 재료: 밀크/다크 초컬릿 커버춰(각각 4500/400g), 무가당 파우더(4000, 엄청 많다. 쿠키나 케익을 만들 때 마저 써야지.), 시나몬 스틱(4000, 없어도 무방.)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 2004 MusicAlp Festival in Seoul
고구마 피자
거울 진아님과 북토피아의 질피아님을 뵈었다. 분점임에도 기대 이상이라던 라리에또 홍대점에 가려고 했으나, 날이 궂어 길을 확실히 아는 치뽈리나로 약속을 바꿨다. 이달의 피자는 '달콤한 고구마 피자'더라. 치즈에 고구마를 얹은 단순하고 깔끔한 피자로,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12월 중에 꼭 가서 먹어 보라고 권해야겠다 싶을 만큼 맛있었다. '고구미를 좋아라 하는'(아우님 표현) 아우님이 생각났다.
음식이 나오는 대로 열심히 먹으며 과소동/거울/국내 과학소설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피아님과는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조차 없는데도, 과소동 분들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닉을 줄곧 보아 왔기 때문에 마치 원래 잘 아는 분 같았다. '혹시 컨벤션 때 뵈었던가요?'라고 묻기까지 했으니. 하하.
카푸치노
식후에는 카페 비하인드에 갔다. 치뽈리나에 갈 때 까지만 해도 그리 춥지 않았는데, 식사를 마친 오후 세 시 쯤에는 바람이 몹시 추웠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이북(e-book) 시장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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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피아님: 밥 배, 커피 배는 다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제이: 맞아요! 밥은 밥이고 케익은 케익이고 커피는 커피. 다 먹게 되더라고요.
진아님: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요새는 먹으면 배가 부르더군요. 합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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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다 보니 어느 새 다섯 시. 진아님은 다음 약속 때문에 먼저 일어나시고, 나와 질피아님은 홍대입구역에서 헤어졌다.
-프로그램-
풀랑 -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을 위한 6중주
이대욱(pf), 캐롤 윈센스(fl), ICMF 앙상블(cl 계희정, bn 곽정선, hn 이석준, ob 이윤정)
베토벤 - 7중주 내림 마 장조 Op.20
제임스 버즈웰(vn), 김성은(va), 게리 호프만(vc), 이호교(db), ICMF 앙상블(계희정, 곽정선,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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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호암아트홀에서 27일부터 진행된 '뮤직알프 페스티벌'의 리사이틀 프로그램, '바람과 함께 나타나다'에 갔다.
첫 곡은 풀랑의 6중주. 시작부에서 플루트가 대단히 불안정했다. 음반으로 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원곡이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잘 못 부는 것 아냐? 왜 소리는 제대로 안 나고 텅잉만 들려? 악기 손은 본 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플루트가 신경쓰였다. 피아니스트와 ICM 페스티벌 앙상블의 연주자들은 모두 노련했고, 특히 호른을 맡은 이석준 님의 연주가 돋보였다.
다음 곡을 같은 연주자들이 이어 할 줄 알고 플루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박수를 안 쳤는데, [플루티스트와 함께] 피아니스트와 오보이스트가 들어가 버려 괜히 미안했다. 괜찮았는데.
얼떨떨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사이에 시작된 베토벤 7중주는, 풀랑에 대한 불만을 모두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호연이었다. 주도하는 바이올린이 매끄러웠고 - 연주자 이름을 기억해 두자 - , 처음부터 끝까지 능숙한 연주자들이 잘 알고 있는 부담없는 곡을 기분 좋게 연주한다는 느낌이 완연해 더없이 즐거웠다. 의자에 기대 연주자들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 모습을 편안히 바라보며, '이게 바로 실내악이지' 하고 생각했다. 대 만족! 주제부를 신나게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아버지 생신. 묘사를 지내러 성주에 내려가신다기에 올해 생신은 음력으로 치르기로 했으나, 3일 저녁에 일정이 취소되어 늘 하던 대로 양력 생신 0시에 자정 파티를 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낀다는 일기 예보를 보고 어른들 모시고 멀리까지 운전하시지 않았으면 했는데, 안 가시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우님이 골라온 '보리케익'. 위에는 보리 토핑, 안에는 보리 크림/빵이 들었다.(고구마 케익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듯 하다.)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맛이다. 매실차를 곁들여 두 조각이나 먹었다.
아버지 생신 선물로는 차에 다는 핸드폰 번호판을 골랐다.
2004년 12월 2일 목요일
2004년 12월 2일 : What Number Are You?
You Are the Investigator |
5 You're independent - and a logical analytical thinker. You love learning and ideas... and know things no one else does. Bored by small talk, you refuse to participate in boring conversations. You are open minded. A visionary. You understand the world and may change it. |
짤방
1.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오븐에 넣는다.
2.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반은 말차를 넣고 반은 우유거품을 낸다.
3. 우유거품을 말차에 섞는다.
4. 베이글을 꺼내 우유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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