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7일 월요일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도박꾼 밥'
정훈님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멜빌의 흑백영화 '도박꾼 밥'을 보았다. 도박은 참으로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요약) 영화를 본 후에는 달에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있는 커리! '바람에 흩날리는 안남미처럼 자유롭게 날아가려면, 돈을 벌 때가 아니라 쓸 때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정말)
식후에는 인사동 길을 가로질러 카페 뎀셀브즈에 갔다. '홈메이드 초코케익'이라는 메뉴가 있기에 주문해 보았다. 누구네 집에서 만든 걸까.; 이런 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창 밖으로 초록색 풍선도 하나 날아갔다.(안 떨어지고 굉장히 높이 날아 사라졌다.)
광화문 교보에 들러 갈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집에 왔다. 놀다 보면 하루가 금새 간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삼스레)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지구정복비밀결사 송년회 날이었다. 기념일인 덕분인지 굉장히 많이 오셔서 깜짝 놀랐다. 아스님, 강명님, fool님, 야롤님, 동진님, 코스모님 부부, 고양이님, 달팽이님, 까리용님, 루크님, 상현님, 에라오빠, 라슈펠님, 나 이렇게 열 다섯 명이 '너무 밝고 너무 넓은' 일민미술관 카페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미술관 부속 카페라 지금껏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뜻밖에 푸짐했다. 보통 참기름을 담아 둘 때 쓰는 큼직한 플라스틱 겨자통과 작고 깜찍한 계피가루통, 크고 단정한 커피잔과 성의없어 보이는 코울슬로가 공존하는 이상한 곳이다.(껄껄) 샌드위치나 스프 같은 메뉴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친구들과 오래 앉아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들러 볼 만 하겠다. 넓고 탁자 배치가 잘 되어 있어 시끄럽지 않은 점이 좋았다.
경아님께서 맛있는 크리스마스 케익을 가져오신 덕분에 마음껏 기분을 내며 냠냠 먹었다. 나는 어제 밤에 준비한 초컬릿을 가져갔다. 아스님의 디스크월드, 야롤님의 말벌 공장을 받았고(:)), 펠님께 빌려드렸던 책을 돌려받았다. 맥킬립의 리들마스터 시리즈 세 권을 빌렸는데, 귀가길에 읽어보니 흥미진진하다. 일기 얼른 쓰고 마저 읽다 자야지. 야롤님께는 번번이 이런 저런 신세를 지고 있다.
식후에는 낮술(...)을 마시러 세종문화회관 옆 중국음식점으로 갔다. 열 다섯 명이 꽉 들어가는, 조금 침침하고 구석진 룸에 둘러 앉고 나니 다들 갑자기 생기가 돈다. 도중에 다른 일로 근처에 와 계시던 루리루리님도 오셨다.
언제나처럼 지정사와 장르문학과 인류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동북공정, 지자체와 교육자치 이분화, IRA, 음모론과 맨인블랙, '조중동 독자', 격동 50년, 고고학의 진실, 이란의 카페트, 전문용어 사용 등에 대해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최근에는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고려해 'Merry Christmas' 대신 'Happy Holiday'가 쓰이기 시작한다는 얘기가 특히 인상깊었다. 나는 확실한 무교라도 지금껏 'merry chirstmas'라는 말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껴 본 적이 없지만, 생각해 보면 사람에 따라서는 - 특히 성탄절이 축일인 다른 종교의 신자라든가 -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소수를 위한 배려와 대체 가능한 표현은 많을수록 좋은 법 아니겠는가.
즐거운 축일 모임은 다섯 시 쯤 파했다. 카페에서 오랜만에 괜찮겠지 싶어 커피를 두 잔 마셨는데, 아무래도 앞으로는 그냥 참아야 할 것 같다.
2004년 12월 23일 목요일
2004년 12월 23일 목요일
이준구, 미시경제학
2004년 12월 21일 화요일
2004년 12월 21일 화요일 : What Kind of Intelligence Do You Have?
Your Dominant Intelligence is Linguistic Intelligence |
You are excellent with words and language. You explain yourself well. An elegant speaker, you can converse well with anyone on the fly. You are also good at remembering information and convicing someone of your point of view. A master of creative phrasing and unique words, you enjoy expanding your vocabulary. You would make a fantastic poet, journalist, writer, teacher, lawyer, politician, or translator. |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2004년 12월 19일 일요일 : 장 피에르 멜빌 회고전 '암흑가의 세 사람(Lu Cercle Rouge)'
요전에 EBS에서 알랭 들롱이 나오는 스릴러/추리물을 한 편 본 적이 있다. 지금껏 그 영화가 멜빌 감독작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늘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니 뭔가 착각했던 것 같다. 그 영화는 꽤 끈적했는데, '암흑가의 세 사람'은 건조하다 못해 차가웠다. (내가 지금껏 생각해 온 멜빌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기억이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큰 기대 없이 토요일과 일요일의 여러 상영작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안타깝다. 다음 토요일인 25일에 프랑스 느와르 특별전 대신 멜빌 영화 상영을 해 줬으면 싶다. '암흑가의 세 사람'을 보기 전에는 고다르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좋아했으면서, 아아, 간사하기도 하여라! 하다못해 '사무라이'라도 꼭 보고 싶은데 과연 가능할지.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소리의 부재'였다. 초반,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구장 장면에서야 그 때까지 배경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트렌치 코트를 입은 아저씨들이 마른 수건을 꽉 죈 듯한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넘치는,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멋진 영화였다. 보면 볼 수록, 영화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진다. 연출이며 음악,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새롭다. 나라면 어떻게 찍었을까, 감독은 왜 저 장면을 저렇게 처리했을까, 저 사람 천재 아냐?; 같은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실은 그래서 얼마 전부터 영화연출론 책을 틈틈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비디오 카메라를 몇 번 만져 본 것이 전부인 데다 영화 촬영 현장을 자세히 볼 기회도 없었다 보니 자꾸 2차원적으로만 상상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어디 영화 뿐이랴.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생이 길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앎을 상상하면 흥분으로 절로 머리끝이 쭈볏 선다. 공부하고 싶다. 더 많이, 열심히, 깊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암흑가의 세 사람'이 매진이었고 - 보조석까지 팔았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영화가 매진이라니! - 김지운 감독님의 해설이 붙은 '형사'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귀여운 요츠바랑 쇼핑백을 들고 오신 sabbath님과는 영화관 밖에서 만났다. 영화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영화 재밌게 보세요' 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sabbath님께서 선물로 크런키 박스를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고 흐흐흐 웃었다. 초컬릿님 반가워요. ♡

(우와)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3가 아웃백스테이크로 가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종우오빠, 나, 지현, 두현, 부경, 태준, 범틀, 채우, 연수, 혜리 이렇게 열 명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현이는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05학번 새내기로 타대 약대에 새로 입학한단다. 전공이 썩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수능을 다시 쳤다는 부경이도 좋은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고시생인 나와 두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자꾸 아스트랄 고시 월드로 빠져나갔다.; 태준이는 2월 22일에 육군 입대. 04학번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내일 12학점짜리 시험을 치른다는 혜진언니와 - 아니 어떻게 한 과목이 12학점이람. - 급한 일이 생긴 형기 오빠가 못 오셔서 아쉬웠다.



식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와 케익을 들며 '레이디 경향'과 '여성동아' 풍(...) 수다를 떨었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내일은 월요일이다.
'암흑가의 세 사람'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소리의 부재'였다. 초반, 긴장감에 숨을 죽이고 있다가, 당구장 장면에서야 그 때까지 배경음악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석상을 터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 급작스러운 마무리가 조금 당혹스럽긴 했으나,
생각해 보면 어디 영화 뿐이랴.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느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생이 길어도 부족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아직 내가 모르는 수많은 앎을 상상하면 흥분으로 절로 머리끝이 쭈볏 선다. 공부하고 싶다. 더 많이, 열심히, 깊이.
마음에 쏙 드는 영화를 보고 들뜬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다. '암흑가의 세 사람'이 매진이었고 - 보조석까지 팔았을 정도로 관객이 많았다. 서울아트시네마 영화가 매진이라니! - 김지운 감독님의 해설이 붙은 '형사'를 보러 온 사람들도 많아서, 귀여운 요츠바랑 쇼핑백을 들고 오신 sabbath님과는 영화관 밖에서 만났다. 영화로 인한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아 '영화 재밌게 보세요' 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sabbath님께서 선물로 크런키 박스를 주셨다. 집에 와서 열어보고 흐흐흐 웃었다. 초컬릿님 반가워요. ♡
(우와)
인사동길을 가로질러 종로 3가 아웃백스테이크로 가서 서울대 백신고 동문회에 참석했다. 종우오빠, 나, 지현, 두현, 부경, 태준, 범틀, 채우, 연수, 혜리 이렇게 열 명이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지현이는 간호학과를 그만두고 올해 05학번 새내기로 타대 약대에 새로 입학한단다. 전공이 썩 맞지 않아 고민이 많아 보였는데, 원하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니 다행이다. 수능을 다시 쳤다는 부경이도 좋은 소식 들었으면 좋겠다. 고시생인 나와 두현이는 마주 보고 앉아 자꾸 아스트랄 고시 월드로 빠져나갔다.; 태준이는 2월 22일에 육군 입대. 04학번이 어느새 2학년이 된다. 내일 12학점짜리 시험을 치른다는 혜진언니와 - 아니 어떻게 한 과목이 12학점이람. - 급한 일이 생긴 형기 오빠가 못 오셔서 아쉬웠다.
식후에는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와 케익을 들며 '레이디 경향'과 '여성동아' 풍(...) 수다를 떨었다.
집에 오니 열한 시. 내일은 월요일이다.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매직 8볼
승민오빠와 홍대 앞 이찌방 테리야끼에서 저녁을 먹었다. 밀가루 음식, 커피, 찬 음식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메뉴로 밥을 골랐다. 일정이 묘하게 뜨는 바람에 점심식사를 하지 못한 터라, 음식이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었다. 어찌나 급했는지(...) 집에 와서 보니 찍는다고 찍은 음식 사진마다 뭔가 실수를 저질러 놓았다. 이찌방은 홍대에서 신촌 방향, 제니스 카페테리아와 치뽈리나 사이에 있다. 분위기를 따질 곳은 아니고 먹는 사람을 민망케 하는 어설픈 양배추 샐러드(?)가 나오지만, 메인인 테리야끼가 맛있고 소스도 훌륭하다.
식후에는 인클라우드에 갔으나 만석이라 리브로로 방향을 틀었다. 오빠는 레몬티(정말로 시단다), 나는 로열밀크티. 티라미수도 먹었다. 케이크님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 ♡
승민오빠는 짓궂은 표정을 한 벅스바니가 커다랗게 그려진 옷을 입고 왔다. 머리모양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노곤노곤 차를 마시다가 아홉 시 반 쯤 일어났다. 참새가 방앗간 앞 그냥 못 지난다고, 계산대에서 초컬릿을 두 개 사 왔다.
2004년 12월 15일 수요일
2004년 12월 15일 수요일
벌써 몇 년 전, 모 종합병원 암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했었다. 암병동에 장기 입원한 환자들은 힘이 없어 휠체어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저런 검사를 받으러 번잡한 병원 안을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있을 지 모르는 검사를 위해 보호자가 항시 대기하고 있을 수도 없다. 나는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검사실로 모시거나, 반대로 검사를 마친 환자를 병실로 도로 모시는 일을 했다.
환자를 모셨을 때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넓은 복도를 빙 둘러 천천히 걸었다. 혼자 움직일 때는 검사실에서 좀 더 가까운 곁길로 들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으로서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불편해서이기도 했다. 지름길 중간에는 중환자실과 대기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잠시 숨을 멈췄다. 중환자실의 닫힌 문과 그 앞 대기실에 난민처럼 모여 앉은 사람들은 죽음에 반 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내가 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검사를 해야 하니 환자분을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하면, 지친 보호자들은 그 사소한 일에 무안하도록 고마워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를 검사 전 잠시라도 쉬게 하려 긴 의자에 눕히며, 학생, 고마워요, 하는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건강함이 부끄러웠다.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내가 하면서도 덧없이 들리는 인사를 건네며, 나는 나의 무력함이 부끄러웠다.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몇 달 전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기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처음 간 동네 내과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는 아닐 지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 보더니 양성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혹을 떼어 낸 다음에 들여다 보니 암 세포가 있었다.
그 세대에 쉽게 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짊어졌던 무게는 개인에게 각별한 법이다. 어머니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보다는 오래 살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했던 어느 여름 날, 병원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앉아 대충 씹어 넘기던 햄버거의 뭉클한 식감을 떠올린다. 헌혈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에 우리 어머니가 암이셔서 병원에 계시다 보니-라 답하던 A형 동기와, 수혈 쇼크를 겪은 후,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어, 말씀하시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다가올 미래와 피할 수 없는 일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스물 둘, 나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무력하기만 하다.
환자를 모셨을 때는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고 넓은 복도를 빙 둘러 천천히 걸었다. 혼자 움직일 때는 검사실에서 좀 더 가까운 곁길로 들어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다. 사지 멀쩡한 젊은 사람으로서 엘리베이터를 타기가 불편해서이기도 했다. 지름길 중간에는 중환자실과 대기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잠시 숨을 멈췄다. 중환자실의 닫힌 문과 그 앞 대기실에 난민처럼 모여 앉은 사람들은 죽음에 반 보 가까이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젊은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어라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내가 타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검사를 해야 하니 환자분을 직접 모시고 가겠다고 하면, 지친 보호자들은 그 사소한 일에 무안하도록 고마워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것 조차 힘들어하는 환자를 검사 전 잠시라도 쉬게 하려 긴 의자에 눕히며, 학생, 고마워요, 하는 힘 없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나의 건강함이 부끄러웠다.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내가 하면서도 덧없이 들리는 인사를 건네며, 나는 나의 무력함이 부끄러웠다.
외할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몇 달 전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부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기에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처음 간 동네 내과에서는 암인 것 같으니 큰 병원에 가 보시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는 아닐 지도 모르니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조직검사를 해 보더니 양성이라고 했다. 수술을 하고 혹을 떼어 낸 다음에 들여다 보니 암 세포가 있었다.
그 세대에 쉽게 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사랑하는 사람의 삶이 짊어졌던 무게는 개인에게 각별한 법이다. 어머니는,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엄마보다는 오래 살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외할머니를 사랑하는 어머니,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어렸지만 지금처럼 무기력했던 어느 여름 날, 병원 냄새가 가시지 않은 소매를 걷어 붙이고 앉아 대충 씹어 넘기던 햄버거의 뭉클한 식감을 떠올린다. 헌혈해 주어 고맙다는 인사에 우리 어머니가 암이셔서 병원에 계시다 보니-라 답하던 A형 동기와, 수혈 쇼크를 겪은 후, 죽는 줄 알았어, 정말 무서웠어, 말씀하시던 나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천천히 다가올 미래와 피할 수 없는 일과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을 천천히 곱씹는다.
스물 둘, 나는 여전히 젊고, 여전히 건강하고, 여전히 무력하기만 하다.
2004년 12월 14일 화요일
2004년 12월 13일 월요일 : 하이텔
파란닷컴에서 예전 하이텔에 올렸던 글을 블로그에 옮겨 주는 행사를 한다. 파란닷컴에 가입하기 싫고, 보면 틀림없이 민망할 것 같아 지금껏 신청을 않고 있었는데, 다른 분들이 올리신 걸 보니 재미 있어서 결국 하이텔 아이디로 전환 신청 - 새로 가입할 필요가 없었더라 - 하여 오늘 예전에 쓴 글을 보았다.
.......역시,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희미해진 각오를 다질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수확이다.
네. 저 진실은 무엇인가 하니......독일문화원은 계급제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 계급은 크게 "진급생"과 "재수강생(비더홀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1, 2, 3, 4점 | 5, 5.5점의 여섯 계층이지요. 5.5점은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은 게을러서 출석을 일곱 번 이상 빠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5점은 부지런하긴 한데 성적이 나쁜 (-_-) 학생들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5점입니다.
1점은 최상위 계급으로, 당연히 아주 적은 수입니다. 3.5점에서 4점 사이에 대부분의 평민이 위치합니다.
이 계급 제도는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수강 신청이라는 전시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점이 제일 먼저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2점...그렇게 해서 진급생 계급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제 한 학기를 쉬고 들어오는 학생들(잠재적 진급생 계급)이 역시 계급에 따라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5점, 그리고 남는 반들에 5.5점 학생들이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스케쥴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원하는 시간대의 반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수강 신청을 할 때에는 계급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나가서 등록을 하지요. 하지만 비더홀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_- 그냥 무더기로 나오라고 그럽니다. 비더홀러들에게 드디어 수강신청의 기회가 돌아오면, 이미 강당은 거의 텅 비어 있고 비더홀러들은 서로 민망해합니다. 드디어 신청이 끝나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면 상황은 종료되고, 독일문화원은 다음 학기의 계급을 정하기 위한 물밑준비 단계로 들어갑니다.
(그래, 난 비더홀러였다.)
특별히 부족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삶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기억.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내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지했고, 그들도 그랬다.
누구도 악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학업 스트레스로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었고,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호받던 딸들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서면 아는 얼굴 한 둘은 우습게 마주치던 작은 도시에 살았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런 종류의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툴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겨우 나흘. 하필이면 왜 그 때 그 학교가 시험을 쳤고. 하필이면 왜. 어쩌고 저쩌고. 시작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나흘 동안 열 마디도 채 하지 않았는데. 겨우 교실을 헤메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니 나는 이미 혼자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외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만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믿고 행동했다. 쉬는 시간 10분을 처리할 수 없어 늘 쩔쩔맸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렸다. 꼭 가는 길에 여기저기 어깨를 부딪히거나, 왜 우리 학교에 온거야-따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더라도.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일시에 몰려드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눈동자들은 어떤 상상보다 가혹했다. 맨 앞 줄에 앉아, 등 뒤에서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흘려버리지도 뒤돌아보지도 못해 앞만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호칭은 차라리 나았다. 이름 대신 점수로 불러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수군거림의 주제가 나라는 것조차 몰랐다. 재미있는 가십이었겠지. 해결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혼자였다. 어쩌다 보니 먼저 옮겨와 묵었던 친척집.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를 하고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촌동생과 잠시 놀아주고 나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았다.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아침이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아. 원망할 대상이 없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각은 성실한 학생이었고 다정한 친구였다. 그들끼리는. 그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은 단점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몇몇의 기호와 몇몇의 불만과 다수의 무관심이 모이면.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물게 대강 얼굴만 아는 클래스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쟤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은 동정일까 호기심일까 비웃음일까 친절일까 무관심에 따른 반사일까. 사소한 것에도 안심하고 더 사소한 것에서 상처받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 울며 되뇌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강해지자. 내가 받았던 것에 감사하자. 나누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말자. 기회를 주자.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억하자. 그래서 여기서 배우자. 절대 이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 때의 서너 달은 무척이나 느리게 지나갔다. 딱 이맘 때였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소녀들은 쉽게 가했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이란 그런 법이다.
나도 많이 잊었다. 변했다. 이 변화가 적응을 위한 발버둥의 결과인지 그 부대낌 속에서 무엇인가 배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참이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처럼 어색하게 건네는 사과에 '글쎄,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그 날 밤 내가 그 짧은 사과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들추어진 상처들이 아파서 또 한 번 울었음을 그 애는 알까.
하지만 아직도 가끔 견딜 수 없게 아픈 때가 있다. 오늘처럼. 숙제 하기 전에 눈이나 붙여 볼까 하고 누웠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기억들에 결국은 베게를 부둥켜 안고 울먹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난 정말 많이 배웠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내가 많이 받은 만큼 나누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잊어버리지 않는 게 더 좋은거야. 그렇게 고생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얼마나 멍청해.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야.
......
더 늦기 전에 숙제 해야겠다.
수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별로......(긁적긁적)
갈 곳이 없으니, 뭐, 결국 도서관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
다음 수업은 라틴어. 라틴어 선생님은 앉은 순서대로 독해를 시키십니다.(이거 못 하면 진짜 무안합니다.-.-) 예습을 안 했던 지난 시간, 저는 확실히 아는 문제가 걸리거나, 선생님이 고전학 샛길로 새실 경우 아예 문제를 안 풀 수도 있는 자리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찾아 앉았더랬지요.
교수님 등장.
Prof. (휘익 둘러보심)
Jay (찌그러져 있음)
Prof. (씨익 웃으며) 오늘은 반대쪽부터 해볼까요.
Jay (...)
오늘은 꼭 예습을 할 겁니다. --;
(3년 전에 손수 쓴 글을 보며 내 자신이 너무 귀엽다고 생각하고 있어.orz)
.......역시,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희미해진 각오를 다질 글 몇 편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름 수확이다.
예시 1 : 2002-01-03 과소동 잡기장
네. 저 진실은 무엇인가 하니......독일문화원은 계급제 사회였던 것입니다..!
이 계급은 크게 "진급생"과 "재수강생(비더홀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는 1, 2, 3, 4점 | 5, 5.5점의 여섯 계층이지요. 5.5점은 불가촉 천민입니다.
이들은 게을러서 출석을 일곱 번 이상 빠진, 용서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5점은 부지런하긴 한데 성적이 나쁜 (-_-) 학생들입니다. 공부를 못해서 5점입니다.
1점은 최상위 계급으로, 당연히 아주 적은 수입니다. 3.5점에서 4점 사이에 대부분의 평민이 위치합니다.
이 계급 제도는 평소에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지만, 수강 신청이라는 전시 상황이 되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점이 제일 먼저 수강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2점...그렇게 해서 진급생 계급의 수강신청이 끝나면 이제 한 학기를 쉬고 들어오는 학생들(잠재적 진급생 계급)이 역시 계급에 따라 신청을 합니다. 그 다음은 5점, 그리고 남는 반들에 5.5점 학생들이 들어갑니다. 이쯤 되면 스케쥴이고 뭐고 없습니다. 그냥 원하는 시간대의 반이 남아 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수 밖에.
수강 신청을 할 때에는 계급 순서에 따라 이름을 부릅니다. 그러면 나가서 등록을 하지요. 하지만 비더홀러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_- 그냥 무더기로 나오라고 그럽니다. 비더홀러들에게 드디어 수강신청의 기회가 돌아오면, 이미 강당은 거의 텅 비어 있고 비더홀러들은 서로 민망해합니다. 드디어 신청이 끝나고 해가 중천을 넘어가면 상황은 종료되고, 독일문화원은 다음 학기의 계급을 정하기 위한 물밑준비 단계로 들어갑니다.
예시 2 : 2001-11-20 과소동 잡기장
특별히 부족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던 삶에서 앙금으로 남아있는 기억.
아직도 정확히 무엇이 내 잘못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무지했고, 그들도 그랬다.
누구도 악하지는 않았다. 잘못한 사람은 어쩌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예민했고, 학업 스트레스로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었고, 집안에서 소중하게 보호받던 딸들이었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누구도 나빴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집을 나서면 아는 얼굴 한 둘은 우습게 마주치던 작은 도시에 살았다. 기회라고 생각해서 선택했지만, 그런 종류의 낯설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서툴었기 때문에 침묵했다. 겨우 나흘. 하필이면 왜 그 때 그 학교가 시험을 쳤고. 하필이면 왜. 어쩌고 저쩌고. 시작은 너무나 사소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내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변명할 기회도 없었다. 나흘 동안 열 마디도 채 하지 않았는데. 겨우 교실을 헤메지 않고 찾을 수 있게 되고 나니 나는 이미 혼자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외치고 싶었다.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시도만이라도 해 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안다고 믿고 행동했다. 쉬는 시간 10분을 처리할 수 없어 늘 쩔쩔맸다. 화장실에 가기를 꺼렸다. 꼭 가는 길에 여기저기 어깨를 부딪히거나, 왜 우리 학교에 온거야-따위의 중얼거림을 듣지 않더라도. 교실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교실 문을 여는 순간 일시에 몰려드는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나를 외면하는 눈동자들은 어떤 상상보다 가혹했다. 맨 앞 줄에 앉아, 등 뒤에서 들으라고 하는 말들을 흘려버리지도 뒤돌아보지도 못해 앞만 보고 있었다.
내 이름은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전학생이라는 호칭은 차라리 나았다. 이름 대신 점수로 불러대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니까. 처음에는 그 수군거림의 주제가 나라는 것조차 몰랐다. 재미있는 가십이었겠지. 해결해보려 할 수록 상황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혼자였다. 어쩌다 보니 먼저 옮겨와 묵었던 친척집. 친절했다. 그러나 나를 도와줄 수는 없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식사를 하고 이제 갓 걷기 시작한 사촌동생과 잠시 놀아주고 나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찾았다. 내일 일은 내일 해결하자. 아침이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아직은 괜찮아. 원망할 대상이 없음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각각은 성실한 학생이었고 다정한 친구였다. 그들끼리는. 그것이 문제였다. 모두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작은 단점들이 모여서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된다. 몇몇의 기호와 몇몇의 불만과 다수의 무관심이 모이면.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드물게 대강 얼굴만 아는 클래스메이트의 인사를 받으면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쟤가 내게 인사를 한 것은 동정일까 호기심일까 비웃음일까 친절일까 무관심에 따른 반사일까. 사소한 것에도 안심하고 더 사소한 것에서 상처받았다. 그런 날이면 밤새 울며 되뇌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자. 더 강해지자. 내가 받았던 것에 감사하자. 나누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경솔하게 행동하지 말자.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듣지 말자. 기회를 주자.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기억하자. 그래서 여기서 배우자. 절대 이대로 잊어버리지 말자.
그 때의 서너 달은 무척이나 느리게 지나갔다. 딱 이맘 때였다. 특별히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 소녀들은 쉽게 가했던 만큼 쉽게 잊어버렸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 어차피 일이란 그런 법이다.
나도 많이 잊었다. 변했다. 이 변화가 적응을 위한 발버둥의 결과인지 그 부대낌 속에서 무엇인가 배운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한참이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처럼 어색하게 건네는 사과에 '글쎄,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라고 미소지을 수 있을 만큼은 변했다. 그 날 밤 내가 그 짧은 사과가 고마워서,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들추어진 상처들이 아파서 또 한 번 울었음을 그 애는 알까.
하지만 아직도 가끔 견딜 수 없게 아픈 때가 있다. 오늘처럼. 숙제 하기 전에 눈이나 붙여 볼까 하고 누웠다가 갑자기 쏟아지는 기억들에 결국은 베게를 부둥켜 안고 울먹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래도 난 정말 많이 배웠으니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니까, 내가 많이 받은 만큼 나누고 살겠다고 다짐했으니까. 고마워 할 줄 알게 되었으니까. 잊어버리지 않는 게 더 좋은거야. 그렇게 고생하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면 얼마나 멍청해. 기억하고, 되새기고, 그래서 정말 가치있는 시간으로 만드는 거야.
......
더 늦기 전에 숙제 해야겠다.
예시 3 : 2001-10-16 과소동 잡기장
수업이 일찍 끝났습니다. 별로......(긁적긁적)
갈 곳이 없으니, 뭐, 결국 도서관으로 데굴데굴 굴러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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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수업은 라틴어. 라틴어 선생님은 앉은 순서대로 독해를 시키십니다.(이거 못 하면 진짜 무안합니다.-.-) 예습을 안 했던 지난 시간, 저는 확실히 아는 문제가 걸리거나, 선생님이 고전학 샛길로 새실 경우 아예 문제를 안 풀 수도 있는 자리를 (치밀한 계산을 통해) 찾아 앉았더랬지요.
교수님 등장.
Prof. (휘익 둘러보심)
Jay (찌그러져 있음)
Prof. (씨익 웃으며) 오늘은 반대쪽부터 해볼까요.
Jay (...)
오늘은 꼭 예습을 할 겁니다. --;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바게트
아스파라거스 스프
해산물
오리
안심스테이크
석류 셔벳
서늘님, 동진님과 방배동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라뜰리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서늘님의 생일턱! :D 여름 즈음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서늘님을 오랜만에 만나고, 단골이시라는 아담하고 편안한 음식점을 새로이 알게 되어 기뻤다. 룰루랄라 즐겁게 식사를 하고, 동진님께서 출장가서 가져오신 초컬릿도 먹었다. 사자어(merlion)이 싱가포르의 상징인 줄 이번에 알았다. 어이쿠, 귀엽기도 하지.
저녁에는 초컬릿을 먹으며 연하장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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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12/25 알파빌 예매완료
2004년 12월 5일 일요일
2004년 12월 5일 일요일
스노우캣 웹사이트에 올라온 핫초컬릿 레서피를 보고 직접 핫초컬릿을 만들어 보았다. 오전에 시작해서 낮에 묵혀 두었다가 저녁에 계피가지를 넣어 마셨다. 뿌듯했다. 날씨가 추울 때 밖에 나갔다 들어와 한 잔 데워 마시면 그만이겠다.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 덧붙이자면:
(1) 우유+물+코코아는 은근한 불에.
(2) 레서피대로 만들면 양이 꽤 많다. 머그컵으로 너다섯 잔 정도가 나온다. 혼자 먹을 사람은 분량을 절반 정도로 줄이길 권한다.
(3) 밀크초컬릿과 다크초컬릿을 반씩 섞어 넣었더니 예상보다 좀 달았다. 나처럼 평소에 다크초컬릿을 즐겨 먹는 사람이라면 굳이 반씩 섞어 넣지 않아도 될 듯.
(4) 재료: 밀크/다크 초컬릿 커버춰(각각 4500/400g), 무가당 파우더(4000, 엄청 많다. 쿠키나 케익을 만들 때 마저 써야지.), 시나몬 스틱(4000, 없어도 무방.)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 2004 MusicAlp Festival in Seoul
고구마 피자
거울 진아님과 북토피아의 질피아님을 뵈었다. 분점임에도 기대 이상이라던 라리에또 홍대점에 가려고 했으나, 날이 궂어 길을 확실히 아는 치뽈리나로 약속을 바꿨다. 이달의 피자는 '달콤한 고구마 피자'더라. 치즈에 고구마를 얹은 단순하고 깔끔한 피자로, 고구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12월 중에 꼭 가서 먹어 보라고 권해야겠다 싶을 만큼 맛있었다. '고구미를 좋아라 하는'(아우님 표현) 아우님이 생각났다.
음식이 나오는 대로 열심히 먹으며 과소동/거울/국내 과학소설 이야기를 나누었다. 질피아님과는 온라인에서 대화를 나누어 본 적조차 없는데도, 과소동 분들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닉을 줄곧 보아 왔기 때문에 마치 원래 잘 아는 분 같았다. '혹시 컨벤션 때 뵈었던가요?'라고 묻기까지 했으니. 하하.
카푸치노
식후에는 카페 비하인드에 갔다. 치뽈리나에 갈 때 까지만 해도 그리 춥지 않았는데, 식사를 마친 오후 세 시 쯤에는 바람이 몹시 추웠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셨다. 이북(e-book) 시장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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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피아님: 밥 배, 커피 배는 다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제이: 맞아요! 밥은 밥이고 케익은 케익이고 커피는 커피. 다 먹게 되더라고요.
진아님: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요새는 먹으면 배가 부르더군요. 합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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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다 보니 어느 새 다섯 시. 진아님은 다음 약속 때문에 먼저 일어나시고, 나와 질피아님은 홍대입구역에서 헤어졌다.
-프로그램-
풀랑 - 피아노,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호른을 위한 6중주
이대욱(pf), 캐롤 윈센스(fl), ICMF 앙상블(cl 계희정, bn 곽정선, hn 이석준, ob 이윤정)
베토벤 - 7중주 내림 마 장조 Op.20
제임스 버즈웰(vn), 김성은(va), 게리 호프만(vc), 이호교(db), ICMF 앙상블(계희정, 곽정선, 이석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녁에는 호암아트홀에서 27일부터 진행된 '뮤직알프 페스티벌'의 리사이틀 프로그램, '바람과 함께 나타나다'에 갔다.
첫 곡은 풀랑의 6중주. 시작부에서 플루트가 대단히 불안정했다. 음반으로 들어 본 적이 없는 곡이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원곡이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잘 못 부는 것 아냐? 왜 소리는 제대로 안 나고 텅잉만 들려? 악기 손은 본 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플루트가 신경쓰였다. 피아니스트와 ICM 페스티벌 앙상블의 연주자들은 모두 노련했고, 특히 호른을 맡은 이석준 님의 연주가 돋보였다.
다음 곡을 같은 연주자들이 이어 할 줄 알고 플루트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박수를 안 쳤는데, [플루티스트와 함께] 피아니스트와 오보이스트가 들어가 버려 괜히 미안했다. 괜찮았는데.
얼떨떨한 마음으로 앉아 있는 사이에 시작된 베토벤 7중주는, 풀랑에 대한 불만을 모두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호연이었다. 주도하는 바이올린이 매끄러웠고 - 연주자 이름을 기억해 두자 - , 처음부터 끝까지 능숙한 연주자들이 잘 알고 있는 부담없는 곡을 기분 좋게 연주한다는 느낌이 완연해 더없이 즐거웠다. 의자에 기대 연주자들 사이로 음악이 흐르는 모습을 편안히 바라보며, '이게 바로 실내악이지' 하고 생각했다. 대 만족! 주제부를 신나게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2004년 12월 4일 토요일
아버지 생신. 묘사를 지내러 성주에 내려가신다기에 올해 생신은 음력으로 치르기로 했으나, 3일 저녁에 일정이 취소되어 늘 하던 대로 양력 생신 0시에 자정 파티를 했다. 비가 오고 구름이 낀다는 일기 예보를 보고 어른들 모시고 멀리까지 운전하시지 않았으면 했는데, 안 가시게 되어 다행이었다.
아우님이 골라온 '보리케익'. 위에는 보리 토핑, 안에는 보리 크림/빵이 들었다.(고구마 케익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듯 하다.)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맛이다. 매실차를 곁들여 두 조각이나 먹었다.
아버지 생신 선물로는 차에 다는 핸드폰 번호판을 골랐다.
2004년 12월 2일 목요일
2004년 12월 2일 : What Number Are You?
You Are the Investigator |
5 You're independent - and a logical analytical thinker. You love learning and ideas... and know things no one else does. Bored by small talk, you refuse to participate in boring conversations. You are open minded. A visionary. You understand the world and may change it. |
짤방
1. 베이글을 반으로 잘라 오븐에 넣는다.
2.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반은 말차를 넣고 반은 우유거품을 낸다.
3. 우유거품을 말차에 섞는다.
4. 베이글을 꺼내 우유와 먹는다.
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2004년 11월 27일 토요일
1. 오전 내내 잤다.
2. 오후 내내 잤다.
3. 자느라 KSCRC 심포지엄에 가지 못했다. 일어나 보려고 오후 한 시까지 [꿈 속에서] 발버둥쳤으나......
4. 6시쯤 일어나서 스타트렉 TNG를 보다가 저녁을 먹었다.
5. 후식으로 차를 마시려다 유리 주전자를 깨뜨렸다. 다치지는 않았다.
6. 스타트렉을 마저 봤다.
7. 스타트렉 VOY 노벨라이제이션, No Man's Land를 봤다.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읽다 말았다.
8. 지금은 스타트렉 TNG를 보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 'The Best of Both Worlds'!
2004년 11월 21일 일요일
2004년 11월 21일 일요일
깻잎전
육회
버섯전
인사동의 한식집 전에 지구정복비밀결사가 모였다. 참석자는 야롤님, 명철님, 에라오빠, 나인님, 루리루리님, 라슈펠님, 고양이님, 달팽이님, 아스님, 나는그네님, 나 이렇게 열한 명. (이 추세라면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갈 날도 멀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나인님과 루리루리님을 처음 뵈었다. 온라인 블로그나 웹사이트에서 닉으로만 뵙던 분들과 직접 인사를 나누는 일은 언제나 흥미진진하고 즐겁다. 루크님의 지인이시라는 BMW 바이커 명철님도 처음 만난 분. 소련 - 러시아가 아니다!- 에서 액체로켓 연구를 하셨단다. 그래, 역시 지구 정복에는 무기와 '즐'티가 필ㅇ......
등산용 용접기로 시거에 불 붙이기.(병철님) 시거에 불을 붙일 때 가장 좋은 도구가 자동차의 시거라이터이고, 그 다음이 이 용접기란다.
전이며 육회, 수제비 등을 배불리 먹고 나인님께서 가져오신 와인 한 병도 땄다. 주인아주머니께서 서비스라며 예쁜 병에 담긴 이화주도 주셨다. '전'은 음식이 정갈하고, 입구에 SBS 방송 어쩌고라고 쓰여 있어 불안했던 것에 비해 야단스럽거나 북적이지도 않는 깔끔한 한식집이었다. 이만하면 일단 합격. 사진을 잘 찍지 못해 아쉽다. 한식 사진은 참 어렵다. 자주 찍지 않아서 그런가.
식후에는 스타벅스로 우르르 몰려가, 에라오빠와 야롤님의 생신 선물 삼아 가져간 케익을 나누어 먹었다. 10시 조금 넘어 장강명님께서 에라오빠에게 연락하셨더라. 얼굴이라도 뵙고 돌아가고 싶었으나, 너무 늦은 시각이라 부득이 먼저 자리를 떴다.
피곤했지만 더없이 즐거웠던 하루.
2004년 11월 20일 토요일
2004년 11월 20일 : 브로드웨이 42번가
승민오빠와 팝콘하우스에서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봤다. 의상과 안무 모두 굉장히 화려했고, '이 부분은 볼거리 삼아 끼워넣었어요' 라고 쓰인 듯한 선정적인 장면도 여럿 있었다. 로맨스도 복잡한 드라마도 없는 기미(綺靡)한 성공담으로, 사전 정보 없이 간 덕분에 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여자 주인공 페기의 무대 장악력이 조연 도로시에 미치지 못한 점이 좀 아쉽긴 했지만, '보는 재미'가 워낙 확실한 뮤지컬이니 이만하면 대만족.
원래는 공연을 보고 성신여대 근처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뮤지컬이 예상보다 늦게 끝나 - 쉬는 시간을 합해 2시간 40분 공연이었다 - 가까운 홍대 쪽으로 갔다. 12월 폐점을 앞두고 할인 행사 중인 아티누스에 들러 이것 저것 구경을 한 다음, 카오산에서 커리볶음밥을 먹었다. 식후에는 승민오빠의 지인이 한다는 카페 앤에 가서 커다란 쿠션을 무릎 위에 쌓아 놓고 차 - 나는 국화차, 오빠는 장미차 - 를 마시며 흐늘거렸다. 하루가 금방 갔다.
-note
http://kscrc.org/queernow/
안경 20문 20답
01. 안경을 쓰고 있다.
그렇다.
02. 나의 안경 경력은?
초등학교 입학 하루 전부터 썼다. 당시 시력 0.5., 티비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유전적인 문제도 (아마) 없었기 때문에, 왜 이렇게 빨리 시력이 나빠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03. 어릴적 친구의 안경이 부러워서 빌려 써 본 적이 있다.
없다. 나를 부러워 하는 친구들은 있었다. -_- 아우님이 안경을 써 보고 싶어 했을 때 철이 없다며 혼낸 적은 있다.
04. 안경을 쓰고 잘 수 있다.
꼭 하려면 하겠지만......;
05. '안경잡이'란 놀림을 받아본 적 있다.
기억이 안 난다.
06.안경을 써서 얼굴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얼굴형이 잡히기도 전에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07. 안경이 어울리는 얼굴인가?
난 뭘 해도 어울린다.
08. 안경을 쓸 때랑 벗을 때, 둘 중 어느 때가 더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지?
얼마 전부터 콘택트 렌즈를 끼기 시작했는데, 평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에 눌리는 느낌이 없어 렌즈 쪽을 좋아한다.(놀 때만)
09. 안경에 관한 에피소드를 한 가지만.
초등학생 때, 추석 연휴 전날 밤 체육 실기평가인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하다 삐딱하게 쓰러져, 옆에 놓아 두었던 안경을 엉덩이로 깔아 망가뜨렸다. 당장 다음 날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다 연휴라 문을 연 안경점이 없어 - 당시 내 교정전 시력은 0.2 이하였다 - 꽤 곤란했었다.
10.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안경테는?
가벼운 무테.
11. 도수 없는 안경은 진정한 의미의 안경이라 볼 수 없다.
아니다.
12. 마찬가지로 콘택트 렌즈보다는 역시 안경이다!
이물감과 무게감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13. 선글래스를 안경의 범주에 넣는 건 고민된다.
고민되지 않는다.
14. 가끔은 시력 2.0의 세상이 궁금하긴 하다.(일반적인 교정시력은 1.0 정도)
무척 궁금하다.
15. 그래도,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이 필요없게 되면 어쩐지 섭섭할 것 같다.
전혀 서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16. 안경 캐릭터를 이 자리에서 바로 5명 이상 댈 수 있다.
생각나는 순서대로 써서 - 최유기의 '팔계', 엠마의 '엠마', 카드캡터 사쿠라의 '유키토', 스타트렉 TNG의 '라 포지'(....이 사람은 아닌가;), 아즈망가 대왕의 '유미'.
17. 안경을 쓴 사람이나 캐릭터를 보면 호감도가 올라간다.
아무 상관 없다.
18. 안경을 벗었을 때 미남,미녀가 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안경이 얼굴을 가리고 눈매를 달라 보이게 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인상을 확 바꾸어 놓기도 한다고 본다. 만화처럼 미남 미녀가 되긴 좀 어렵겠지만, 안경을 벗으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는 실제로 본 적이 있다.
19. 솔직히 말해서, 난 안경 펫치?
설마.;
20. 나에게 있어 안경이란 _____________________ 이다.
계륵
그렇다.
계속 읽기
02. 나의 안경 경력은?
초등학교 입학 하루 전부터 썼다. 당시 시력 0.5., 티비를 많이 보지도 않았고 유전적인 문제도 (아마) 없었기 때문에, 왜 이렇게 빨리 시력이 나빠졌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03. 어릴적 친구의 안경이 부러워서 빌려 써 본 적이 있다.
없다. 나를 부러워 하는 친구들은 있었다. -_- 아우님이 안경을 써 보고 싶어 했을 때 철이 없다며 혼낸 적은 있다.
04. 안경을 쓰고 잘 수 있다.
꼭 하려면 하겠지만......;
05. '안경잡이'란 놀림을 받아본 적 있다.
기억이 안 난다.
06.안경을 써서 얼굴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얼굴형이 잡히기도 전에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07. 안경이 어울리는 얼굴인가?
난 뭘 해도 어울린다.
08. 안경을 쓸 때랑 벗을 때, 둘 중 어느 때가 더 사람들의 평판이 좋은지?
얼마 전부터 콘택트 렌즈를 끼기 시작했는데, 평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는 코에 눌리는 느낌이 없어 렌즈 쪽을 좋아한다.(놀 때만)
09. 안경에 관한 에피소드를 한 가지만.
초등학생 때, 추석 연휴 전날 밤 체육 실기평가인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하다 삐딱하게 쓰러져, 옆에 놓아 두었던 안경을 엉덩이로 깔아 망가뜨렸다. 당장 다음 날 새벽에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데다 연휴라 문을 연 안경점이 없어 - 당시 내 교정전 시력은 0.2 이하였다 - 꽤 곤란했었다.
10.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안경테는?
가벼운 무테.
11. 도수 없는 안경은 진정한 의미의 안경이라 볼 수 없다.
아니다.
12. 마찬가지로 콘택트 렌즈보다는 역시 안경이다!
이물감과 무게감 중에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13. 선글래스를 안경의 범주에 넣는 건 고민된다.
고민되지 않는다.
14. 가끔은 시력 2.0의 세상이 궁금하긴 하다.(일반적인 교정시력은 1.0 정도)
무척 궁금하다.
15. 그래도, 시력이 좋아져서 안경이 필요없게 되면 어쩐지 섭섭할 것 같다.
전혀 서운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16. 안경 캐릭터를 이 자리에서 바로 5명 이상 댈 수 있다.
생각나는 순서대로 써서 - 최유기의 '팔계', 엠마의 '엠마', 카드캡터 사쿠라의 '유키토', 스타트렉 TNG의 '라 포지'(....이 사람은 아닌가;), 아즈망가 대왕의 '유미'.
17. 안경을 쓴 사람이나 캐릭터를 보면 호감도가 올라간다.
아무 상관 없다.
18. 안경을 벗었을 때 미남,미녀가 되는 건 만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안경이 얼굴을 가리고 눈매를 달라 보이게 하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서는 인상을 확 바꾸어 놓기도 한다고 본다. 만화처럼 미남 미녀가 되긴 좀 어렵겠지만, 안경을 벗으면 정말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경우는 실제로 본 적이 있다.
19. 솔직히 말해서, 난 안경 펫치?
설마.;
20. 나에게 있어 안경이란 _____________________ 이다.
계륵
2004년 11월 14일 일요일
2004년 11월 13일 토요일
2004년 11월 13일 토요일 : 천국의 웃음 -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 '내가 죽인 남자'
전션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에른스트 루비치의 1932년 반전영화, '내가 죽인 남자(The Man I Killed)'를 보았다.
1차 세계대전 중 전쟁터에서 독일군 발터를 죽였던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현직 폐인) 프랑스인 폴은 종전 이후에도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보아 외우고 있는 - 참호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발터는 마지막 편지를 쓰던 중이었다 - 발터의 집 주소로 직접 찾아가 사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스물 두 살 외아들/애인을 잃은 슬픔에 잠겨 간신히 살아가던 발터의 부모와 약혼녀 엘자는 '아드님 때문에 왔다'는 폴을 발터의 친구로 착각하여 마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양 반갑게 맞아들이고, 폴은 차마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발터의 가족과 어울리며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발터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애써 분위기를 돋우려 노력하는 엘자, 내키지 않는 수저를 드는 부모, 카메라가 배경처럼 잡은 빈 의자의 뒷모습.
유약하고 섬세한 젊은이를 연기한 필립스 홈즈도 돋보였다. 이 사람이 나온 다른 영화를 찾아 볼까 싶어 집에 와서 IMDb를 검색해 보았는데, 젊은 나이에 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루비치의 영화는 참 보기 편하구나.' 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굉장히 부담스럽고 비극적인 소재를 불필요한 무게감 없이 진지하게 다룬다. 단순히 나와 상성이 맞는 감독인 걸까?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싶은데 코드 3 디비디가 없다시피 하다. 코드 1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국내 출반을 기대해 볼까나.
일단 아쉬운 대로, 참고 1(Ernst Lubitsch's American Comedy), 참고 2(Ernst Lubitsch: Laughter in Paradise)를 기억해 두자.
영화를 본 후에는 전션과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늦게야 헤어짐.
1차 세계대전 중 전쟁터에서 독일군 발터를 죽였던 (전직 바이올리니스트, 현직 폐인) 프랑스인 폴은 종전 이후에도 그 때의 기억 때문에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보아 외우고 있는 - 참호에서 공격을 받았을 때, 발터는 마지막 편지를 쓰던 중이었다 - 발터의 집 주소로 직접 찾아가 사죄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스물 두 살 외아들/애인을 잃은 슬픔에 잠겨 간신히 살아가던 발터의 부모와 약혼녀 엘자는 '아드님 때문에 왔다'는 폴을 발터의 친구로 착각하여 마치 아들이 살아 돌아온 양 반갑게 맞아들이고, 폴은 차마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발터의 가족과 어울리며 그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발터 가족의 저녁 식사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애써 분위기를 돋우려 노력하는 엘자, 내키지 않는 수저를 드는 부모, 카메라가 배경처럼 잡은 빈 의자의 뒷모습.
유약하고 섬세한 젊은이를 연기한 필립스 홈즈도 돋보였다. 이 사람이 나온 다른 영화를 찾아 볼까 싶어 집에 와서 IMDb를 검색해 보았는데, 젊은 나이에 군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루비치의 영화는 참 보기 편하구나.' 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굉장히 부담스럽고 비극적인 소재를 불필요한 무게감 없이 진지하게 다룬다. 단순히 나와 상성이 맞는 감독인 걸까? 더 자세히 알아 보고 싶은데 코드 3 디비디가 없다시피 하다. 코드 1이 많이 나와 있으니 국내 출반을 기대해 볼까나.
일단 아쉬운 대로, 참고 1(Ernst Lubitsch's American Comedy), 참고 2(Ernst Lubitsch: Laughter in Paradise)를 기억해 두자.
영화를 본 후에는 전션과 카페 뎀셀브즈에서 차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녁 늦게야 헤어짐.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2004년 11월 7일 일요일
낮에는 오랜만에 뒹굴면서 티비를 봤다. 유로아메리칸 시네마를 소개(?)하는 주말 영화 프로그램을 보고, 이어서 '존 웨인의 셰퍼드 오브 더 힐'이라는 영화를 하기에 계속 봤다. 미 금주법 시대를 배경으로 한 1940년대 영화였다. 영화가 시작된지 20분도 지나지 않아, 존 웨인이 어머니의 무덤 앞에 서서 반항적인 눈을 빛내며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저녁에는 아스님과 치뽈리나에 가서 연인을 위한 세트♡를 먹었다.

치뽈리나의 스테이크. 형편없지도 특별히 맛있지도 않은 '그냥 뭐 이만하면.' 정도.
기분 좋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인클라우드로 자리를 옮겼다. 국화차를 마시며 용자와 용사와 용달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재미있어 낄낄도 아니고 힉힉거리며 웃다 보니 어느새 9시. 집에 돌아와 곧장 잤다. 이상하게 겨우 밤 열 시부터 마치 새벽 한두 시라도 된 듯 피곤하다 싶더니,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몹시 아파 하루를 앓았다.
저녁에는 아스님과 치뽈리나에 가서 연인을 위한 세트♡를 먹었다.
치뽈리나의 스테이크. 형편없지도 특별히 맛있지도 않은 '그냥 뭐 이만하면.' 정도.
기분 좋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인클라우드로 자리를 옮겼다. 국화차를 마시며 용자와 용사와 용달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무 재미있어 낄낄도 아니고 힉힉거리며 웃다 보니 어느새 9시. 집에 돌아와 곧장 잤다. 이상하게 겨우 밤 열 시부터 마치 새벽 한두 시라도 된 듯 피곤하다 싶더니, 월요일 아침에 갑자기 몹시 아파 하루를 앓았다.
2004년 11월 6일 토요일
2004년 11월 6일 토요일 : 천국의 웃음 - 에른스트 루비치 회고전 '미소짓는 중위'
오전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후 홍대 별다방에서 아스님과 접선, 따뜻한 커피와 티라미수를 먹으며 AJWB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뻥)

아스님과 헤어진 다음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에른스트 루비치의 1931년 작, '미소짓는 중위'를 보았다. 한참 전에 예매를 해 놓고 따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지 못했던 터라 (그래, 언제나처럼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다.) 주인공들이 영어를 써서 깜짝 놀랐다.; 귀가길에 팜플렛을 읽어 보니 루비치가 헐리우드에서 작업한 영화란다.
전후(戰後), 여자와 뒹구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던 오스트리아 군대의 중위 니키는 바이올린 연주자 프란지와 사랑에 빠진다. 오스트리아 왕과 사촌지간인 플라우젠트룸(never forget the H!)의 왕이 딸 안나와 함께 비엔나를 방문한다. 니키는 왕의 마차가 지나가는 길에 서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맞은 편 구경꾼 틈에 프란지가 서서 계속 손을 흔들고 웃자 무표정하고 경건하게 서 있지 못하고 그만 씨익 웃으며 윙크까지 날려버린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을 딱 맞춰 지나가던, 왕의 마차에 탄 공주 안나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다음 날, "모욕당한 왕족"이니, "중위가 공주를 비웃다"같은 헤드라인이 신문을 장식하고......
굉장히 즐겁게 보았다. 이런 영화라면 하루에 두세 편도 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부담이 없어 놀라기도 했다. 내용 자체가 가볍고 경쾌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루비치의 영화에 내재한 탁월한 '시간의 속도'에 그 공을 돌리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러나 한편 지루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잡아 늘이거나 잘라내어 이야기 진행에 놀라운 탄력을 부여했다. 여기에 톡톡 튀는 재치와 은근한 성적 유머가 더해지니 이것 정말 천하일품이로세. 특히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플라우젠트룸 왕과 안나가 주고 받는 대화, 신혼 초야를 치를 방에서 베개를 정리하는 장면('어? 이거 정말 성인형 유머 아닌가?'), '밖으로 나도는 남편'에 대한 안나와 왕의 대거리 같은 부분에서는 낄낄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엔딩이 지나치게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실제로 70년 전 영화이니 굳이 박하게 말할 부분은 아니겠다. 중심이 되는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는, 언제 만들어진 것이든 인상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사람 이야기니까, 결국은.
시네마테크 11월호에 실린 배창호 감독 인터뷰에서 특히 공감한 단락:
예술의 정확성은 본질적인 것에서 출발하거든요. 본질적인 정확성이 중요하죠. 예전 영화들은 사운드가 이상하고, 연출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정확성이 있었어요. 본질적인 정확성이란 인간을 바라보는 눈, 인간성 이런 것이죠. 그런 면에서 존 포드 영화가 낡았다지만, 그럼에도 향기가 있어요. 본질적인 인간을 다루는 면이 있기 때문인 거죠. 본질적인 정확성은 지금 사라지고, 현상적인 정확성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중략...) 왜 저 감독은 부감을 사용했는지, 왜 공간배치를 저렇게 했는지, 그런 질문들을 안 합니다. 워낙 장비 자체가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8미리 캠코더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영화가 되는 거예요. 기계적인 재현력이 있으니까. 거칠지만 장면을 자르지 않아도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버리고. 그러니 왜 커트가 나뉘어야 하는지, 왜 부감을 써야 하는지, 이러한 것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기계적인 힘에 소재적인 아이디어만 더해지면 그냥 한 편의 영화가 돼버리는 거예요. 영상언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거죠. (...후략...)
반드시 옛 영화는 본질적인 정확성을 가졌지만 요즘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고, 기계적인 힘과 소재적인 아이디어만으로 만든 영화가 꼭 부족하다는 법도 없지만, 영화언어와 본질적 정확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시대와 상관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출처: 서울아트시네마
아스님과 헤어진 다음에는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서 에른스트 루비치의 1931년 작, '미소짓는 중위'를 보았다. 한참 전에 예매를 해 놓고 따로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지 못했던 터라 (그래, 언제나처럼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에 헐레벌떡 뛰어들어갔다.) 주인공들이 영어를 써서 깜짝 놀랐다.; 귀가길에 팜플렛을 읽어 보니 루비치가 헐리우드에서 작업한 영화란다.
전후(戰後), 여자와 뒹구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던 오스트리아 군대의 중위 니키는 바이올린 연주자 프란지와 사랑에 빠진다. 오스트리아 왕과 사촌지간인 플라우젠트룸(never forget the H!)의 왕이 딸 안나와 함께 비엔나를 방문한다. 니키는 왕의 마차가 지나가는 길에 서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바로 맞은 편 구경꾼 틈에 프란지가 서서 계속 손을 흔들고 웃자 무표정하고 경건하게 서 있지 못하고 그만 씨익 웃으며 윙크까지 날려버린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 순간을 딱 맞춰 지나가던, 왕의 마차에 탄 공주 안나와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다. 다음 날, "모욕당한 왕족"이니, "중위가 공주를 비웃다"같은 헤드라인이 신문을 장식하고......
굉장히 즐겁게 보았다. 이런 영화라면 하루에 두세 편도 볼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부담이 없어 놀라기도 했다. 내용 자체가 가볍고 경쾌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루비치의 영화에 내재한 탁월한 '시간의 속도'에 그 공을 돌리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그러나 한편 지루하지 않을 만큼 시간을 잡아 늘이거나 잘라내어 이야기 진행에 놀라운 탄력을 부여했다. 여기에 톡톡 튀는 재치와 은근한 성적 유머가 더해지니 이것 정말 천하일품이로세. 특히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 안에서 플라우젠트룸 왕과 안나가 주고 받는 대화, 신혼 초야를 치를 방에서 베개를 정리하는 장면('어? 이거 정말 성인형 유머 아닌가?'), '밖으로 나도는 남편'에 대한 안나와 왕의 대거리 같은 부분에서는 낄낄 새어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엔딩이 지나치게 구식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실제로 70년 전 영화이니 굳이 박하게 말할 부분은 아니겠다. 중심이 되는 인간의 본질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영화는, 언제 만들어진 것이든 인상적인 힘을 갖는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사람 이야기니까, 결국은.
시네마테크 11월호에 실린 배창호 감독 인터뷰에서 특히 공감한 단락:
예술의 정확성은 본질적인 것에서 출발하거든요. 본질적인 정확성이 중요하죠. 예전 영화들은 사운드가 이상하고, 연출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본질적인 정확성이 있었어요. 본질적인 정확성이란 인간을 바라보는 눈, 인간성 이런 것이죠. 그런 면에서 존 포드 영화가 낡았다지만, 그럼에도 향기가 있어요. 본질적인 인간을 다루는 면이 있기 때문인 거죠. 본질적인 정확성은 지금 사라지고, 현상적인 정확성만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중략...) 왜 저 감독은 부감을 사용했는지, 왜 공간배치를 저렇게 했는지, 그런 질문들을 안 합니다. 워낙 장비 자체가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니까요. 8미리 캠코더로 아무렇게나 찍어도 영화가 되는 거예요. 기계적인 재현력이 있으니까. 거칠지만 장면을 자르지 않아도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버리고. 그러니 왜 커트가 나뉘어야 하는지, 왜 부감을 써야 하는지, 이러한 것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기계적인 힘에 소재적인 아이디어만 더해지면 그냥 한 편의 영화가 돼버리는 거예요. 영상언어를 공부할 필요가 없는 거죠. (...후략...)
반드시 옛 영화는 본질적인 정확성을 가졌지만 요즘 영화는 그렇지 않은 것은 아니고, 기계적인 힘과 소재적인 아이디어만으로 만든 영화가 꼭 부족하다는 법도 없지만, 영화언어와 본질적 정확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시대와 상관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004년 11월 6일 : 캐러나비 & 어떤 블로거?
1. 몇 번이나 했던 것 같지만 유행을 타고 새삼스레 또 한 번-
http://www.loveyou.pe.kr/character/index.asp
Jay님의 캐릭터인 침착한 페가수스에 대한 설명입니다.
장난기의 애교있는 좋은 인상
겉모습은 장난기가 있어 애교가 있고 붙임성이 좋은 인상을 준다. 별것도 아닌 일에 감격하여 운다든지 감동하는 등 감정표현이 풍부하다. 사교가로서 사귀는 것도 좋아하지만 신경질적이며 경계심도 강하다. 일단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심할 줄 모르며 실제로는 호인이다. 다재다능하며 활동적이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투기적인 재능이 있어 큰 돈을 벌 가능성이 있다.(앗싸) 변화가 풍부한 생활에 활력을 느끼면서도 안정과 향상을 목표로 삼는다. 사고방식이 안전하다고 과신하면 큰 실수를 저지르지만 성공하기 쉬운 타입. 좋아하는 남성은 온화한 가운데 엄격함을 지니고 있는 섬세한 사람. 변덕스러운 면이 폭주하면 정나미를 떨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할 것.
침착한 페가수스에 대하여
늘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감성만으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으로 생각하며 여행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천재형이므로 지도받기를 싫어하고 억누르면 반발하므로 풀어두는 것이 제일이다.
->
기분파에 변덕쟁이지만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기분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심하다.
장점은 매우 특출나지만 나머지는 평범.
번득이는 감성이 대단하다.
포인트는 한마디로 족하다.
하나하나 지시받기를 싫어한다.
속박당하는 환경에 약하다.
제멋대로다.
근거없는 생각을 잘한다.
습관적으로 과장된 몸짓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귀찮은 것을 가장 싫어하는 타입.
거절당하기 전에 거절한다.
본인도 자신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옆을 지나간 것만으로 신경이 쓰인다.
사교적 발언의 천재!
사람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딴생각을 한다.
최고의 파트너는 사랑에 약한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신념이 강합니다. 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하지요. 이런 점 때문에 페가수스와는 정반대의 보완관계를 이룹니다. 페가수스는 사라에 약한 호랑이의 따스한 마음에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을 몇배로 발휘할 것입니다.
최악의 파트너는 호감가는 늑대입니다.
침착한 페가수스에게 호감 가는 늑대는 대화를 나눌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해 가는 늑대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수 없다고 생각하기 깨문입니다.
2. 당신은 어떤 블로거?
http://heygom.com/whatblogger/

당신의 블로그는 삶의 일화가 담긴 생생한 일기장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글로 남기세요. 가능한 한 재미있게!
http://www.loveyou.pe.kr/character/index.asp
결과보기: 침착한 페가수스
Jay님의 캐릭터인 침착한 페가수스에 대한 설명입니다.
장난기의 애교있는 좋은 인상
겉모습은 장난기가 있어 애교가 있고 붙임성이 좋은 인상을 준다. 별것도 아닌 일에 감격하여 운다든지 감동하는 등 감정표현이 풍부하다. 사교가로서 사귀는 것도 좋아하지만 신경질적이며 경계심도 강하다. 일단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심할 줄 모르며 실제로는 호인이다. 다재다능하며 활동적이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투기적인 재능이 있어 큰 돈을 벌 가능성이 있다.(앗싸) 변화가 풍부한 생활에 활력을 느끼면서도 안정과 향상을 목표로 삼는다. 사고방식이 안전하다고 과신하면 큰 실수를 저지르지만 성공하기 쉬운 타입. 좋아하는 남성은 온화한 가운데 엄격함을 지니고 있는 섬세한 사람. 변덕스러운 면이 폭주하면 정나미를 떨어지게 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할 것.
침착한 페가수스에 대하여
늘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감성만으로 살아가는 사람. 스스로를 코스모폴리탄으로 생각하며 여행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천재형이므로 지도받기를 싫어하고 억누르면 반발하므로 풀어두는 것이 제일이다.
->
기분파에 변덕쟁이지만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기분 좋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심하다.
장점은 매우 특출나지만 나머지는 평범.
번득이는 감성이 대단하다.
포인트는 한마디로 족하다.
하나하나 지시받기를 싫어한다.
속박당하는 환경에 약하다.
제멋대로다.
근거없는 생각을 잘한다.
습관적으로 과장된 몸짓이나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귀찮은 것을 가장 싫어하는 타입.
거절당하기 전에 거절한다.
본인도 자신을 모른다.
다른 사람이 옆을 지나간 것만으로 신경이 쓰인다.
사교적 발언의 천재!
사람 다루는 일에 능숙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딴생각을 한다.
최고의 파트너는 사랑에 약한 호랑이입니다.
호랑이는 신념이 강합니다. 하지만 융통성이 부족하지요. 이런 점 때문에 페가수스와는 정반대의 보완관계를 이룹니다. 페가수스는 사라에 약한 호랑이의 따스한 마음에 편안함을 느끼고 자신의 능력을 몇배로 발휘할 것입니다.
최악의 파트너는 호감가는 늑대입니다.
침착한 페가수스에게 호감 가는 늑대는 대화를 나눌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해서 목표를 달성해 가는 늑대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수 없다고 생각하기 깨문입니다.
2. 당신은 어떤 블로거?
http://heygom.com/whatblogger/
결과보기: 삶을 사랑하는 블로거
당신은 삶을 사랑하는 블로거입니다!
당신의 블로그는 삶의 일화가 담긴 생생한 일기장입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일들을 글로 남기세요. 가능한 한 재미있게!
2004년 11월 1일 월요일
2004년 10월 31일 일요일
2004년 10월 31일 일요일
쇼콜라 케익
차
오후 늦게 재영이와 이대 앞에서 잠시 만났다. 곁길로 조금 가서 있는 깔끔한 찻집 트리니티(Trinitea)에서 차를 마셨다. 내 취향보다 조금 큰 가게이긴 해도 테이블 사이가 멀고 층이 나뉘어 있어 별로 시끄럽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천장이 비스듬한 '다락'이 있었다!
마농에서 수능을 코앞에 둔 사촌동생에게 선물할 초컬릿을 사려 했으나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더라. 평일에 다시 가야겠네. 대신(?) 별다방에 잠깐 들러 내가 먹을 초컬릿을 하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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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토) 미소짓는 중위 (1:30) 예매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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